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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Dec 04. 2024

직장에서의 첫 해

주제: 강렬했던 시작의 추억

현재 제 직업에 대한 회의감 혹은 만족감이 어떻든 간에 누군가가 제게 가장 강렬하게 시작했던 기억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교직에 처음 나가던 때를 떠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막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그때의 기분과 떨림이 2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지금 그렇게 하라고 했으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때는 참 많이 부딪치고 깨지던 시간들이긴 했습니다.

"이 선생! 다 그러면서 커가는 거야. 누구는 뭐 처음부터 잘했을까?"

당시 제게 그렇게 말씀해 주셨던 교장선생님의 배려 덕분인지 그나마 그 대혼란의 상황을 수습하며 교사로서의 기본을 다져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정확히 말하자면 2000년 3월 2일에 저는 고령군의 한 학교에 초임 발령을 받았습니다. 제가 사는 대구에서 기껏 해 봤자 30km 남짓 된다는 고령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제 첫 학교는 읍내에서 16km를 더 달려야 하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학교 전 구역을 통틀어 휴대폰이 터지던 장소가 딱 세 군데 있었으니 그야말로 오지 중의 오지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나오고 나니 그 학교를 근무한 경력이 벽지 학교 근무로 인정이 되더군요.


전교생이 겨우 68명에, 관리자까지 포함한 선생님이 대충 열 세 분 정도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의 넓이에 비해 아이들의 수가 지나치게 적다 보니 전반적으로 학교는 한산한 편이었습니다. 아무리 떠들어도 표가 안 날 정도였다고나 할까요? 제가 맡았던 당시의 5학년은 68명 중 14명이나 되는 가장 인원수가 많은 학년에 속했습니다. 전체의 20%가 넘었으니까요. 사실 5학년이면 거의 중학생에 가까운 나이입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생치고는 조숙한 면이 있어 마냥 어린아이 취급만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조금은 큰 아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을 대하면 여지없이 불협화음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좌충우돌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던 것 같습니다. 아는 것도 하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결혼한 뒤에 자식을 낳고 기른 경험도 없으니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헤매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왜 아는 게 하나도 없냐'라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교대에서 열성을 들여 4년 동안 배운 모든 지식과 기능들이 죄다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이상은 엄연히 다르다는 걸 일선 현장에 나가보고 처절하게 깨닫게 된 셈입니다.


매일매일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칼퇴근을 해서 남은 시간은 여가 활동을 하며 보낸다는 그런 호사스러운 생각은 할 수조차 없던 때였습니다. 하루하루가 제게는 장거리 경주였습니다. 낮 동안은 처음 만난 아이들과 수업을 하느라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각이 대략 3시쯤, 그 이후는 행정 업무에 푹 파묻혀 지내야 했습니다. 오죽하면 다음 해에 결혼하자마자 서류를 집으로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제 모습을 보면서, 학교 교사는 행정 일은 안 하는 걸로 알았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맞습니다. 어떻게 되었건 간에 시간은 지나가더군요. 벽지에서의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고, 다음 부임지는 관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학교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벽지에서의 근무 점수가 크게 작용한 탓이었습니다.


각자의 성격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 작은 학교를 선호하는 선생님이 있는 반면에 큰 학교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학교를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큰 학교에 가면 거의 업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그 정도롤 비교하자면 작은 학교는 큰 학교보다 업무의 가짓수나 양이 다섯 배 이상 많다고 보면 됩니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러 학교에 왔지, 서류 업무나 하려고 왔나?'

그럴 때면 으레 그런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24년이 지난 지금도 행정적인 업무에서 교사들이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하교한 뒤의 시간을 교재 연구나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문서에 치이고 치이다 못해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고 생각이 한두 번 든 게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거의 모든 업무에 있어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면 저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버벅거리던 그때의 기억이 결국엔 지금의 저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셈이지만, 그래도 그 많은 고생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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