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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Dec 08. 2024

글을 써야 할 자격 따위는 없을 겁니다

2024.12.8.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이 정도 경험으로 누군가를 위로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세상이 무너지거나 온몸이 찢겨나가는 고통을 겪지도 않은 내가 그래도 될까? 독서, 글쓰기, 새벽 기상, 만 보 걷기, 감사 일기 모두 단 2~3년의 짧은 경험 푼인데 무언가를 안다고 글을 쓸 자격이 있나?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내가 글을 써도 될까? 고작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이야기를 쓰게 되지 않을까? 과연 글쓰기 재능이 있기나 할까? 또, 빈 수레가 요란한 꼴이지 않을까?   ☞ 유미, 『글쓰기에 진심입니다』, 치읓, 58쪽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수시로 저를 괴롭혀 왔던 질문들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책에서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는 건 제가 한 고민과 염려들이 저만 한 게 아니라는 얘기가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질문들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 어느 누구라도 피해 갈 수 없는지도 모릅니다. 아닙니다. 단호히 말해야겠습니다. 피해 갈 수 없는지 모르는 게 아니라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이 책의 작가나 제가, 혹은 여러분들이 걱정하는 점은 바로, '내가 글을 쓸 자격이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생각들이 기우가 아니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즉 글을 쓸 때 누군가는 글을 쓸 자격이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자격이 없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말은 곧 글을 써야 할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들이 글을 쓸 자격을 얻게 되는 걸까요?


여기에서 일단 본 책의 저자의 생각을 한 번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생각들은, 지금은 떨쳐냈지만 한때는 글쓰기를 망설일 정도로 그를 괴롭힌 것들이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이 일천하다고 말합니다. 인생 자체를 뒤흔들 만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창 진행하고 있는 것들도 고작 몇 년 지속한 게 다인데, 그걸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냐고 합니다. 게다가 글쓰기를 제대로 학습한 적도 없으니 생각한 걸 제대로 글로 풀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걱정합니다. 그러다 결국은 재능의 영역까지 거론합니다.


사실 그녀의 걱정이 전혀 무의미하거나 어쩌면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경험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 또 최소한 십수 년 이상 유의미한 행위를 반복해 온 사람이, 거기에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배워 본 사람이 글쓰기를 했을 때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잘 쓰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여기에 재능까지 가미된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저자가 언급했던 저 많은 유형 모두에 해당되는 사람입니다. 가령 그녀가 글을 쓸 때마다 했던 그 걱정들이 충분한 타당성을 갖게 된다면 저 같은 사람이 가장 먼저 글쓰기를 접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작 글을 쓴 지 22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주로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스토리에 들어온 것도 1년 반 전이며, 저 역시 창작의 과정을 그 어디에서도 배워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글쓰기'와 '재능'을 동일선상에 놓았을 때 그 속에 제 자리가 없다는 건 저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가수라고 해서 모든 가수가 노래를 잘하는 건 아닙니다. 또 월드클래스의 반열에 드는 운동선수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지금도 벤치에 앉아 경기를 눈으로만 보고 있어야 하는 선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 가지도 못한 누군가는 지금도 땀 흘리며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에 오를 수 없는 가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래를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니듯, A 매치 경기에 직접 뛰지 못하는 기량이라고 해서 운동을 때려치워야 하는 건 아닌 것입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신춘문예에 등단하지 못했거나 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다고 해서, 혹은 어떤 루트로든 책을 출간하지 못했다고 해서, 글쓰기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누군가가 당장 절필을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이런 결론을 내려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을 쓸 자격이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라고 말입니다.


빈 수레가 요란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요란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웅크리고만 있다거나 물건을 실어 나르려는 최소한의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면 그 수레는 더는 수레가 아닌 것이 됩니다.


비록 지금은 빈수레라고 해도 언젠가는 물건을 가득 실어 나르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그 요란한 소리는 어쩌면 제가 묵묵히 감당해야 하는 부분인지도 모릅니다. 좋아하는 것을 이왕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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