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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16. 2023

내게 낭만이 부족한 탓일까?

019: 에쿠니 가오리 외,『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고…….

어떤 지인의 조언에 따라 『냉정과 열정 사이 Blu』(주인공은 쥰세이)와『냉정과 열정 사이 Rosso』(주인공은 아오이)를 한 챕터씩 번갈아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조금 정신없긴 했습니다. 이 책 읽었다가 저 책 읽고, 다시 저 책 들었다가 이 책 들고……. 뭐, 이 방법도 사실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책 속의 주인공인 아오이와 쥰세이의 마음을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극찬하고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여자 무라카미 하루키로 불린다는 에쿠니 가오리와 아쿠타가와 상 수상이란 후광을 업은 츠지 히토나리가 한 주제 아래에서 써낸 두 권의 책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시도는 쉽지 않습니다. 작가 후기에서도 밝힌 것처럼, 작가라는 족속들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세상에서 글을 제일 잘 쓰는 사람이라고 믿기에, 그와 같은 협동 체제에서의 작품 생산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 책을 극찬하는 또 다른 이유는, 두 남녀가 서로가 뜨겁게 사랑할 때 나눈 약속을 두고, 그 약속을 이행하려는 의지-사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갈망에 지나지 않지만-를 불태우는 그 모습들이 작품 속에서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로가 각각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서로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와 서로에 대한 기억들을 놓지 않았던 그 열정적인 마음들이 아름답게 와닿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시린 사랑의 이야기들로 기억되는, 때로는 그 사랑의 의지와 열정을 그 어떤 것도 가로막을 수 없게 하는 절절한 사랑의 이야기들로 기억되는 이 작품은,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습니다. 두 권의 책을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겠습니다.


- 약속할 수 있니?
- 무슨?
- 내 서른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 쿠폴라 위에서 만나기로, 어때?
- 피렌체의 두오모? 왜 그런 곳에서? 밀라노의 두오모는 안 되니?
……(중략)……
- 그렇다고 딱히 거기서 만날 약속은 안 해도 되잖아. 서른 살 네 생일 때, 우리 같이 가도록 해.
- 응, 우리가 헤어지지 않는다면.
- 그런 소리 하지도 마. 꼭 우리가 헤어질 것처럼 말하네. 네가 무슨 예언자니?
- 모르잖니, 미래 일은. 그러니까, 오늘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약속해 줘. 오늘의 이 마음을 언제까지고 간직하고 싶으니까 약속하는 거야. 내 서른 살 생일날, 쿠폴라에서 기다려 주는 거야.
- 네가 먼저 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 아니, 영원히 날 마음에 간직한다면 자기가 먼저 가서 기다려 줘야 해.
- 서른 살, 앞으로 10년 후의 일인데……. ☞『냉정과 열정 사이 Blu』, 98~99쪽


열아홉이라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나이에 서로 만나, 아오이가 인정하는 것처럼 무모할 정도로, 광폭할 정도로 서로를 탐하면서 사랑해 왔던 두 남녀, 아오이와 쥰세이는 자신들이 헤어질 것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 스무 살의 그 어느 날, 이런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진 서로의 대화에 과연 아오이가 기억이나 하고 있을지를 두려워하며 그때를 하루하루 기다리는 쥰세이와, 겉으로는 일상에서 너무도 담담하게 살아가는 아오이의 생활, 그리고 그때그때의 감정들을 다룬 이야기가 바로 마치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이 전개됩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사랑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그 정의를 누군가에게 심각하게 묻기라도 한다면 각양각색의 대답들이 나오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것은 사랑이고 저런 것은 사랑이라 할 수 없고, 내가 하는 것은 사랑이고 네가 하는 것은 불륜이고 따위의……. 그렇다면 정답은 없다는 얘기가 되는 셈인데,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들이미는 잣대를 바탕으로 본다면 사랑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이들 아오이와 쥰세이의 사랑 방식에 대해서는 꼭 짚고 넘어가 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라도 사랑을 크게 보면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어떤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느냐를 따지는 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육체적인 사랑이 뜨거워도 서로의 존재감이 각인되지 못하면 허망할 것이고, 정신적으로 서로가 충만한 사랑을 한다고 해도 육체에 대한 감각이 없다면 그 사랑 역시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겠습니다. 멀리 볼 필요 없이 부부 관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리적인 테두리 내에서 합법적으로 인증된 짝짓기 파트너로서의 남편과 아내라는 존재는, 언제든 어디서든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일에 있어서 비난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성심리학에선 모든 남성에게 깃들어 있는 강간 본능을 법적으로 강력히 제어하게 된 제도가 남녀의 결혼이라고까지 일컬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부라는 것이 늘 육체관계에만 탐닉하진 않습니다.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면서 좋을 때는 좋은 대로 그렇지 못할 때는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 그들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서로의 정신을 끝없이 갈망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아오이와 쥰세이는 작품의 표면상으로 보면,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케 만든 서로의 정신을 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갈구하며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작품 내내 보이는 일상생활 속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한 마디로-이렇게 표현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그런 모습들이 너무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오이의 말과 행동들은 아무리 관대한 마음으로 이해하려 해도, 적어도 제 상식의 선에서 한참이나 비껴 나 있었다.     


물론 여기엔 적지 않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리뷰를 쓰고 있는 제 자신이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빌미 하에, 남자인 쥰세이의 모습에 더 후한 점수를 주었다는, 혹은 남자 작가인 츠지 히토나리의 작품 구성력에 손을 들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겠습니다. 하지만 몇 번을 곰곰이 생각해 봐도, 에쿠니 가오리의 구성력에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역시 두 작가의 문장력이라는 측면만 놓고 생각해 본다면, 확실히 문장에 대한 절제력이나 함축적인 표현들은 에쿠니 가오리가 한 수 위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면에 츠지 히토나리의 문장력은 어쩌면 너저분하기 이를 데 없을 만큼 상세히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읽고 있으면 마치 무슨 살풀이나 하는 듯 여겨질 정도입니다. 보통 이와 같은 식으로 작품이 구성된다면 으레 츠지 히토나리의 작품이 더 너저분해야 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런데 절제미를 살려 깔끔하게 표현한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에서 그 너저분한 냄새가 더 짙게 배어 나오는 건 왜일까요?


서로에 대한 끓어오르는 열정을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서도 그 열정을 평상시엔 차가울 정도로 냉정함을 되찾아가며 살아가는 아오이의 모습 속에서 마치 어떨 때엔 그게 남의 일이라도 되는 양, 덤덤하게 그려 가는 모습들에서 뭔가가 가슴 찡하고, '아! 이런 것이 가슴 시린 사랑이구나!' 하는 느낌을 주어야 할 텐데, 실상은 조금도 그렇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쥰세이가 그토록 다시 만나 사랑하길 갈망하는 아오이는, 늘 독서와 목욕을 즐기며 살아가는 여성입니다. 자신을 가꾸는 데 있어서 그것들만큼 좋은 것도 없겠지만, 그래서인지 그녀는 몹시 고상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적어도 제가 보기엔 위선자입니다.     


마빈과의 섹스는 행복하다. 충족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 22쪽
마빈의 두 손이 어깨에서 가슴으로 내려온다. 귓전에서 속삭여, 나는 몸을 틀고 마빈의 입술을 찾는다. 탄탄하게 근육이 발달한 허벅지에서 무릎으로 손을 미끄러뜨린다. 물을 잠그고, 우리는 그대로 침실에 가 사랑을 나누었다. ☞ 41쪽
섹스 후,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혼자서 커피를 마셨다. ☞ 55쪽
어제저녁, 섹스 후에 마빈이 말했다. ☞ 71쪽
샤워를 한 마빈의 몸에서 좋은 냄새가 풍겨, 나는 고통스러웠다. 마빈의 굵은 목, 근육으로 탄탄한 어깨, 그리고 허벅지. ☞ 92쪽
우리는 짧은 키스를 나누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서 뒤엉켜 서로의 온몸에 뜨겁고 긴 키스를 하였다. 언제나처럼 천천히-마빈의 혀는 마법의 혀다- 껴안고, 숨을 토하며……. ☞ 103쪽
출발하기 전날 밤, 섹스를 한 후에 마빈은 언제까지고 나를 품 안에 안고 있으려 했다. ☞ 117쪽
 ☞ 모두『냉정과 열정 사이 Rosso』에서 인용함      


이 외에도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아오이는 섹스에 탐닉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섹스를 싫어하는 이들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섹스라는 것에 대해 조금의 혐오감도 없는 제가 읽었을 때에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웠습니다. 마치 섹스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적어도 아오이는 생활은 그렇게 잘 절제하며 살면서도 섹스만큼은 조금도 절제하지 못합니다. 적어도 기억 속에, 그리고 가슴속에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한 사람을 심어 놓은 사람으로 보기엔 그녀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너무 극단적인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어찌 그녀의 이런 생각과 행동들을 두고 아름다운 사랑을 운운할 수 있겠나 싶습니다.

     

이것은 남녀 차별적인 발상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뭐, 남자이기 때문에 가능하고 여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충족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섹스를 나눠 온 마빈은 그렇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 존재일까요? 만약 이런 아오이의 행동을 두고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한다면 제가 너무 구태의연한 것일까요?

매일매일을 다른 남자와 살을 섞어가면서, 게다가 다름 아닌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하며 언제 자신에게서 떠날지 늘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는 한 남자를 곁에 두고 당당하게 사랑한다고까지 말하는 아오이가, 자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쥰세이는 내가 처음으로 섹스를 한 남자는 아니었지만, 이런 식의 표현이 허용된다면, 진심으로 몸을 허락한-모든 것을 허락한- 첫 남자다. 처음이고, 그리고 유일한.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98쪽     


어떤 난관이 있든 개의치 않고 오직 미래에 이행될 약속만을 염두에 두면서 사는 두 남녀의 어쩌면 지극히도 아름다운 순애보를, 무지한 제가 너무도 호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정말 그 사랑이 책을 읽는 제게, '아, 사랑이란 이런 것이구나!', '서로 헤어져 있어도 사람으로 태어나 이처럼 서로를 갈망하면서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사는 보람 또한 작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좋으려면 수단 혹은 과정 역시 좋은 것이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적어도 쥰세이와 아오이의 경우엔 그만큼의 후한 점수를 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내내 도마에 오르게 된 아오이의 행동은 정말이지 이해의 선을 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인 일본의 두 남녀의 얘기이기 때문에 그냥 간과하고 넘어갈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랑하는 것도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게 되는 사랑 이야기의 한 유형이구나, 싶은 이해를 하려 해도, 너무도 다른 성 정체성에서 오는 적어도 제겐 적지 않은 혼란을, 작품을 다 읽은 지금 이 순간에도 쉬이 극복할 여력이 없습니다.


성적으로 우리와는 지극히 상반되는 입장을 보이는 일본, 그 나라의 두 남녀,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며 어디에 있든 무얼 하든 10년 뒤의 재회를 늘 상기하며 그날을 기다리는 그 모습엔 조금의 공감을 할 수 있겠지만, 그 열정으로 가는 길 속에서의 냉정한 현실에서 보이는 삶의 모습은 지극히 너저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아름다운 사랑 얘기도 좋고, 먼 후일에 한 약속을 향해 현재를 관통하며 달려가는 두 남녀의 구구절절한 얘기도 좋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도 없고 많은 사람들에게 무책임하며 타인에게 죄를 지으면서까지 충분히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쥰세이와 아오이의 사랑놀음엔 도무지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절제미를 살려 간결한 문장을 통해 더욱더 아련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는 에쿠니 가오리의 글도 솔직히 더더욱 이 작품을 혐오스럽게(?)하는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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