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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19. 2023

문제아, 그는 누구인가?

024: 박기범의 『문제아』를 읽고……

창비에서 주관하는 제3회 좋은 어린이책 창작부문 대상을 수여하면서 동화 작가로 세상에 나온 박기범의『문제아』. 다소 오래전이긴 하나, 사실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제법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누구나 다 그런 생각들을 다들 하고 있었지만, 문제아라고 규정된 아이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정립을 촉구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라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10편의 단편 동화들로 이루어진 작품집을 두고 평론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단편들의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 작품에 대한 몰입도가 좋고 은연중에 깊은 감동과 메시지가 함축된 동화집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에 대해서, 사회적인 여러 가지 모순적인 모습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들이 처한 문제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동화집


그래서 전체적으로 이 책은, 어린이에게는 공감대 형성을 통한 위로를, 어른에게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후한 점수를 받았다면 뭐, 더 이상 재고의 여지가 없는 작품이긴 할 것입니다.


이 얘기 속의 문제아, "하창수"는 그저 남들이 생각하는 골 때리는 아이로서, 늘 문제를 몰고 다니며 사고를 치는 그런 아이로서의 하창수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하며 가정의 평안을 위해 힘쓰는 그런 소박하고 꿈 있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창수에게 있었던 게 아니라 창수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저자는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한 번 문제아로 비친 이후로는 창수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더 이상은 문제아의 탈을 벗을 수 없게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수는 스스로 고백하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문제아라는 딱지를 떼어 낼 수 없겠다고 생각한 이상, 점점 그 딱지를 이용하는 쪽으로 변했다.'라고…….

     

시간이 지나 창수가 새로운 학년이 되어 모든 것이 새로워질 기대를 하며 등교를 한 첫날부터 그 기대는 헛된 것이었음이 드러납니다. 담임선생님이 바뀌면서 다른 선생님들의 일그러진 시각까지 고스란히 넘겨받으신 새로운 담임선생님, 이제 학년도 바뀌고 선생님도 바뀌고 했으니 작년까지의 꼬리표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정말 멋지게 생활해 보자고 하던 다짐들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어떻게 해도 문제아의 탈을 벗을 수 없다는 허탈감과 해가 바뀌었는데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웃음 밖에 나지 않는 상황에서 창수의 모습은 분명 일선 학교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를 문제아로 보는 사람한테는 영원히 문제아로만 있게 될 거다. 아무도 그걸 모른다. 내가 왜 문제아가 되었는지, 나를 보통 아이들처럼 대해 주면 나도 아주 평범한 보통 애라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 본 책, 89쪽      


비교적 고생 덜 하고 곱게 자란 데다 책상에 앉아 책장이나 넘기고 있는 제 입장에선, 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불우한 이웃들과 함께 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의 편에서 수많은 봉사 활동을 하는 저자의 글에 대해 가타부타할 자격이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말고는 그 어느 것도 나은 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분들에서 저자의 생각에 공감이 가지만, 일단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증명해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저자의 문제아에 대한 시각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수많은 경우의 수들 중의 하나를 분명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제가 보는 현재의 문제아의 개념은 분명히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는 것처럼, 문제아라고 낙인이 찍힌 아이들은 다 그만한 이유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요즘 세대들은 지극히 이기적인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앞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정도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도 모르고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 등은 더더욱 모릅니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것입니다. 심지어는 배워야겠다는 마음조차도 없습니다. 진정한 사회화의 과정에서 이런 것들을 가르쳐 줘야 할 기성세대의 역할이 부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아이들은 실수도 잦은 편이지만, 반복되는 실수 속에서도 그걸 왜 하면 안 되는지, 다음엔 다시 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이 왜 필요한지 조차도 모르는 아이들이 태반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학습에서 도태되는 아이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초·기본 학력 학생의 제로화를 위해 저렇게 난리를 치고 있을까요? 이건 별개의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마저도 다 눈 가리고 아웅입니다. 학년말엔 학습부진아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과 학년초만 되면 학급당 2~3명 정도의 학습부진아가 생긴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잠시 옆길로 얘기가 샜습니다. 제가 본 문제아는 잘못된 인식을 가진 교사가 조장한 경우보다 맞벌이로 인해 방치되고, 조부모의 손에서 길러져 어떤 행위를 해도 다 허용이 되는 그런 개념 없는 사회 구성원으로 길러질 게 눈에 보이는 그런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굳이 이 시점에서 강조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 말은 일선 학교 교사들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교사는 교사들대로 잘못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학년과 교실을 인수인계하면서 아이들의 정보나 습성들도 자연스레 그런 절차를 밟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생각처럼 작년에 꼴통인 아이는 뭔가를 해 보기도 전에 올해에도 어김없이 꼴통이란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의 맹점을 갖고 있긴 합니다.


진정 어린 마음을 갖고 아이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나서면, 법적인 제재는 물론이고 그 마음 때문에 물질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중대한 타격을 입기도 하는 세월이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무조건 처벌은 안 된다-심지어 훈육조차도 지금은 불가능합니다-는 대안 없는 대안으로 인해 교실이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매를 들지 못하니 어떤 말도 먹히지 않고, 아무리 얼르고 달래 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분위기가 되어 버리니, 그나마 열정을 가지고 있는 교사도 이제는 한 걸음 물러서기 마련입니다. 그 속에서 과연 ‘문제아’들이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저 막 떠오르는 대로 얘기하다 보니, 너무 본론에서 많이 벗어나 버렸지만 개인적인 경험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을까 합니다. 이 책 속의 창수와 같은 아이를, 문제아는 아닌데 교사들이 문제아라고 낙인찍어 버린 아이를, 교직에 있는 24년 동안 저는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영락없이 누가 봐도 문제아라고 할 만한 아이들만 있을 뿐이었고, 행동 교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아이에겐 꼭 그만큼의 문제를 품은 부모님이나 가정이 뒤에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이 몹시도 거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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