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의 모습처럼 저는 원래 손으로 쓰는 글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건 제가 글을 그만 쓰게 되는 그날까지 그러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여기서 잠깐 핑계 아닌 핑계를 대야겠습니다. 물론 글이라는 게 쓰고 싶다고 해서 언제든 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해도, 손으로 글을 쓸 때에는 꽤 제약 조건이 많더군요. 우선은 어느 정도의 넉넉한 시간이 확보되어 있어야 하고, 최소한 노트를 받쳐줄 만한 지지대가 있어야 하더군요. 즉 쉽게 얘기해서 선 자세로, 혹은 누운 자세로는 쓸 수 없더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튼튼한 책상과 의자가 있어야 하고,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이나 아이디어들을 붙잡아 줄 만한 메모지도 일일이 준비해야 합니다. 엉덩이를 붙이고 어딘가에 앉지 않는 한은 글을 쓸 수 없는 환경이라고나 할까요?
제 스타일은 이렇습니다. 만반의 준비가 되기 전에 일단 출발하고 본다는 것입니다. 철저히 준비를 마치고 어떤 일을 시작하면 그만큼 시행착오도 줄어들고, 보다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 브런치스토리에 와서 제가 느낀 점은, 적어도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마냥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는 어렵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만반의 준비가 된 어떤 날은 정작 무슨 소재로 글을 써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고, 다른 날에 비해 글감이 마구 샘솟는 그런 날은 환경적인 요건이 뒷받침해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만반의 준비라는 것 자체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앉은자리에서, 혹은 선 자리에서, 심지어는 눕거나 엎드린 자세에서도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더라는 얘기입니다. 바로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무척이나 불편했습니다. 열 개의 손가락으로 글자를 휙휙 쳐대는 것과 기껏 해 봤자 두세 손가락으로 글을 치는 것이 효율성 면에서 비슷한 효과를 거두긴 어려운 법이지요. 이때 저는 글을 쓰는 속도나 효율성 측면보다는 언제 어디에서든 쓸 수 있다는 그 편의성에 주목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글을 쓰는 가장 편리한 방법인 노트북으로 글쓰기를 하면 제한적인 상황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제 앞에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트북으로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또 전체 교직원 협의회 시간에도 버젓이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버스나 기차에서도 노트북으로 글쓰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당연히 걸어 다니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밖에 서 있을 때에도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이 모든 맹점을 보완하고도 남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휴대폰으로 글쓰기였습니다.
800여 편이 넘는 글을 써온 그동안 확실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80% 이상의 글을 휴대폰으로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끔은 글을 쓰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보다 느려 속에 천불이 일어날 때도 없지는 않지만, 조금만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면 이 맹점 또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뭔가 기억이 났다가도 금세 날아가 버리고 말지만, 그게 뭘까 하며 미련을 가진 채 붙잡으려는 어리석은 짓만 하지 않는다면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 것만큼 편리한 방법이 또 있겠나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제가 MZ 세대는 아니지만, 글쓰기도 시대의 추세에 맞춰 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전적인 스타일을 너무도 좋아하나, 언제까지 그것만 고집하는 건 현명하지 못하니까요. 하루에 서너 편 이상의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 글을 쓰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글쓰기라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이 방법이 제겐 가장 적합한 방법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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