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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an 21. 2024

폰으로 쓰기

이백 마흔다섯 번째 글: 시대의 추세에 맞춰…….

사진 속의 모습처럼 저는 원래 손으로 쓰는 글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건 제가 글을 그만 쓰게 되는 그날까지 그러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여기서 잠깐 핑계 아닌 핑계를 대야겠습니다. 물론 글이라는 게 쓰고 싶다고 해서 언제든 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해도, 손으로 글을 쓸 때에는 꽤 제약 조건이 많더군요. 우선은 어느 정도의 넉넉한 시간이 확보되어 있어야 하고, 최소한 노트를 받쳐줄 만한 지지대가 있어야 하더군요. 즉 쉽게 얘기해서 선 자세로, 혹은 누운 자세로는 쓸 수 없더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튼튼한 책상과 의자가 있어야 하고,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이나 아이디어들을 붙잡아 줄 만한 메모지도 일일이 준비해야 합니다. 엉덩이를 붙이고 어딘가에 앉지 않는 한은 글을 쓸 수 없는 환경이라고나 할까요?


제 스타일은 이렇습니다. 만반의 준비가 되기 전에 일단 출발하고 본다는 것입니다. 철저히 준비를 마치고 어떤 일을 시작하면 그만큼 시행착오도 줄어들고, 보다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 브런치스토리에 와서 제가 느낀 점은, 적어도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마냥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는 어렵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만반의 준비가 된 어떤 날은 정작 무슨 소재로 글을 써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고, 다른 날에 비해 글감이 마구 샘솟는 그런 날은 환경적인 요건이 뒷받침해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만반의 준비라는 것 자체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앉은자리에서, 혹은 선 자리에서, 심지어는 눕거나 엎드린 자세에서도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더라는 얘기입니다. 바로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무척이나 불편했습니다. 열 개의 손가락으로 글자를 휙휙 쳐대는 것과 기껏 해 봤자 두세 손가락으로 글을 치는 것이 효율성 면에서 비슷한 효과를 거두긴 어려운 법이지요. 이때 저는 글을 쓰는 속도나 효율성 측면보다는 언제 어디에서든 쓸 수 있다는 그 편의성에 주목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글을 쓰는 가장 편리한 방법인 노트북으로 글쓰기를 하면 제한적인 상황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제 앞에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트북으로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또 전체 교직원 협의회 시간에도 버젓이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버스나 기차에서도 노트북으로 글쓰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당연히 걸어 다니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밖에 서 있을 때에도 글을 쓸 수 없습니다. 이 모든 맹점을 보완하고도 남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휴대폰으로 글쓰기였습니다.


800여 편이 넘는 글을 써온 그동안 확실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80% 이상의 글을 휴대폰으로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끔은 글을 쓰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보다 느려 속에 천불이 일어날 때도 없지는 않지만, 조금만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면 이 맹점 또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뭔가 기억이 났다가도 금세 날아가 버리고 말지만, 그게 뭘까 하며 미련을 가진 채 붙잡으려는 어리석은 짓만 하지 않는다면 휴대폰으로 글을 쓰는 것만큼 편리한 방법이 또 있겠나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제가 MZ 세대는 아니지만, 글쓰기도 시대의 추세에 맞춰 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전적인 스타일을 너무도 좋아하나, 언제까지 그것만 고집하는 건 현명하지 못하니까요. 하루에 서너 편 이상의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하여 글을 쓰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글쓰기라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이 방법이 제겐 가장 적합한 방법일 테니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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