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결혼을 23년 전에 했으니, 아마도 기억은 24년 전쯤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부부가 그렇듯, 그래도 그때는 애타는 마음도 있었고, 상대방에게 서로 잘 보여야 한다는, 이왕이면 보다 더 의젓하고 예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만남에서 끝날 줄 알았던 만남이 두 번째로 이어진 그날-아마도 이 날은 아내가 두고두고 후회하던 하루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날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가 되면 다음에 제대로 한 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제게는 아내와 두 번째로 만남을 갖는 자리였으니 첫 만남에 못지않을 정도로 신경이 쓰였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속칭 '원판 불변의 법칙'이라고 하던가요? 아무리 때 빼고 광 낸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는 걸, 그때의 제 모습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약속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거울 앞에서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던 머리 스타일도 눈에 거슬렸고, 기껏 차려입은 옷은 후줄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하다 못해 그날따라 눈썹은 왜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요? 기본적인 로션과 스킨을 바르고, 평소에는 뿌리지 않던 향수까지 두세 방울 귀밑으로 찍어 바르기까지 했습니다. 거울 앞에 선 저에게 누군가가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어이, 그 몰골로 나갈 거야?"
"좀 그렇긴 하지?"
"그래! 그녀가 네 꼴을 보면 아마 그 자리에 나온 걸 후회할 걸?"
"머리 스타일 좀 고쳐볼까? 지금이라도 미용실에 들렀다 갈까?"
"야! 그러면 약속 시간에 늦지 않아?"
"아, 그렇겠네. 그러면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오늘은 도저히 바빠서 안 될 것 같으니 다음에 보자고 따로 약속을 잡아. 그러고는 곧장 미용실로 가서 그 어수선한 머리부터 좀 어떻게 해봐."
제 마음속의 저와 현실의 제가 끊임없이 설전을 벌이는 동안 시간은 하릴없이 흘러갑니다. 이러다가는 애프터는커녕 두 번째 만남을 갖기도 전에 퇴짜를 맞을 것 같습니다.
"시끄러워. 내 머리가 어때서! 그냥 이대로 나갈 거야!"
귀에 이명처럼 남아 떠들어 대는 녀석의 조언을 무시하고야 저는 집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결국은 용기를 내어 나간 그 자리에서 서로에게 좋은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결과가 어쨌건 간에 두 번째 만남이 있었으니 아내와 저는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난데없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뭘까요? 바로 글을 쓸 때, 언제 발행하면 될까, 하고 고민하는 그 순간이 마치 제가 아내와 두 번째 만남을 갖던 그날,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던 순간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글을 쓰다 보면 이왕이면 더 잘 쓰고 싶고, 더 좋은 표현을 사용하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고민은 의외로 간단히 해결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0m 단거리 선수를 떠올려 봅시다. 그는 100m를 10초 대에 주파합니다. 오늘 연습을 하면서 출발 자세나 타이밍을 고친다고 해서, 혹은 오늘 새로 산 신발을 신고 달렸다고 해서, 혹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컨디션이 최상이라고 해서, 늘 10초 대에 100m를 주파하던 그가 갑자기 9초 대 안으로 진입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런 예를 들면 어떻게 글쓰기와 달리기를 비교하느냐고 하겠지만, 당장 어떻게 한다고 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질의 글이 탄생할 리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 방금 전 한 편의 글을 완성했습니다. 일단 한 번은 쭉 읽어 볼 것입니다. 표현이 어색한 부분을 고치고, 잘 읽히지 않는 부분은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 것입니다. 빼야 할 부분은 과감하게 빼고, 설명 혹은 보충이 더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보태기도 할 것입니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면 발행하기 전 마지막에 맞닥뜨리게 되는 맞춤법 검사가 있습니다. 맞춤법에 오류가 없다는 메시지까지 뜨면 기분은 조금 더 좋아집니다. 발행하려고 탭을 누릅니다. 관련 검색어 3개를 넣고 발행을 누르기 직전입니다. 클릭만 하면 이제 제가 쓴 글은 여러 작가님들이 읽을 수 있는 순간이 됩니다. 자, 이때 24년 전 저와 제 아내를 생이별하게 만들 뻔했던 녀석이 또 한 번 등장합니다. 어떤 식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는지 한 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어이, 이 상태로 글 발행하려고?"
"좀 그런가?"
"그래! 사람들이 네 글을 보면 이것도 글이라고 썼냐고 아마 욕할 걸?"
"그래, 어딜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더 읽어보고 발행할까?"
"야! 그러면 다른 일은 할 수 있어? 언제까지 그렇게 글만 쓰고 있을 거야?"
"아, 그렇겠네. 그러면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오늘 글은 도저히 읽어 봐 줄만 한 것 같지 않으니 다음에 발행해. 그리고 그게 뭐야. 겨우 그 정도의 실력으로 글을 쓴다고 그래. 공부도 좀 더 하고 다른 사람이 쓴 글도 읽어보고, 어느 정도 감당할 자신이 있을 때 다시 글쓰기에 도전하는 게 낫지 않겠어?"
녀석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저의 글의 자유로운 발행을 방해합니다. 물론 녀석이 방해하는 이유라는 게 반드시 저에게 해로운 결과만 가져온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중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또 글이라는 것이 묵히면 묵힐수록 더 근사한 글이 나올 가능성 또한 충분히 높으니까요. 따지고 보면 녀석의 그런 계략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해도 녀석의 그런 질책을 하나하나 듣다 보면 단 한 편의 글도 발행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글이라는 게 어디 있을까요?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우리 생의 마지막 글이 아닌 다음에야 한 편 한 편의 글은 어쩌면, 보다 더 나은 다음의 글을 위한 연습이고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녀석이 옆에서 이렇게 계속 구시렁거릴 때에는 이렇게 한 마디 내지르고 클릭하면 됩니다.
"시끄러워. 내 글이 어때서! 그냥 이대로 발행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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