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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Jan 28. 2024

글 쓰기 어려운 날

이런 날도 있지만, 그래도 씁니다.

유난히 글쓰기가 어려운 날이 있습니다. 제게는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지금도 몇 번이나 글을 썼다가 지웠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있는 여유로운 시간, 글을 쓰려고 따로 떼 놓은 시간인데 한참이나 책상에 앉아서 긴긴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무한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빈 화면은 오늘은 어째서인지 저를 막막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각배 신세가 된 것 같습니다.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얼마나 가야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검은색 화면에 흰 글씨를 한 두 글자 적으며 조각배를 움직여 보려고 하지만 몇 자 적고는 금세 다시 지워버립니다. 


역시 글은 자주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평일엔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생각도 좀 묵히고, 시간을 여유롭게 떼서 글을 쓰면 더 높은 품질의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얼마나 글이 더 나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왜인지 부작용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일주일 내내 벼르다가 쓰는 것이니 더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합니다. 꽤 괜찮은 글이 나올 것인데도 몇 자 쓰다 말고 이내 지워버리고 맙니다. 내면의 검열관의 공격에 더 취약한 형태가 되는 것이지요. 


시간이 있다고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좋은 글은 쌓인 글에서 나옵니다. 글을 차곡차곡 쌓다 보면 차츰 글이 나아질 텐데, 처음부터 좋은 글을 꺼내려고 하니 글은 쌓이지 않고 좋은 글을 써낼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줄어듭니다. 글을 좀 더 자주 써야겠다 다짐합니다. 딱 제가 써낼 수 있는 만큼 쓰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인데, 욕심을 부리려다 보니 자꾸 검열관에게 허점을 내보이고 맙니다.


거의 한 시간이 넘게 글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한 시간 내내 검열관의 공격에 말려든 셈이지요. 검열관 녀석은 제가 글을 쓰지 않게 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니 오늘 공격은 꽤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마터면 한 시간쯤 되어갈 무렵에 오늘의 글쓰기를 포기할 뻔했습니다. ‘오늘은 안 되는 날인가 보다.’ 하고 말이지요.


오늘 검열관이 사용한 방해 전략을 여러분께 공개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같은 수법에 당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검열관은 빈 화면을 응시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로 이런 말들을 하면서 말이지요.


‘자 생각을 좀 해보자, 네 속에 쓸만한 게 뭐가 있는지 말이야.’

‘매일 반복되는 시시한 일상을 쓰기엔 벼뤄왔던 이 지면이 아깝지 않아?’

‘좀 더 특별한 것, 좀 더 새로운 것, 그럴싸한 것을 써야 하지 않겠어?’


언뜻 검열관의 말은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꺼낼 수가 없습니다. 검열관은 계속 ‘NO’를 연발할 것이고, 내가 꺼낸 생각들은 전부 채택되지 못한 글감이 되어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색을 깊이 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쓸지 고민하느라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면 검열관에게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검열관은 그럴싸한 일상, 특별한 경험을 요구하지만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의 일상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각자가 매일 반복되는 것 같아서 쓰지 않는 흔하디 흔한 일상 이야기도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그날의 일입니다. 누구나 겪었을 만한 공통의 경험도 글로 쓰는 순간 다른 경험이 됩니다. 글의 특별함은 소재에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모든 일상은 특별하며, 빛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생각과 삶도 특별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삶을 거쳐 나온 여러분만의 것이기 때문이고, 어려움을 뚫고 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속지 마십시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것을 글로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 지극히 평범해 보였던 일상도 어느새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검열관이 사용하는 수법은 글을 쓰면서 지난 글을 다시 읽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글을 쓰는 중에도, 검열관은 잠시 멈추고 저로 하여금 방금 전에 쓴 단락을 읽게 합니다. 지난 글을 읽으면 읽느라 멈추게 되고, 멈추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금세 글을 고치게 됩니다. 


검열관은 글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빈 화면을 바라보며 ‘쓸만한 것’을 계속 가져오라고 닦달하고, 겨우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에게 다시 돌아가 전 단락을 읽으며 수정하라고 말합니다. 여기까지 휘말리면 그날 글을 쓰지 않을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집니다. 저도 이 공세에 휘말려 거의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썼다가 지웠다가 반복하기를 한참을 하고, 아 오늘은 이 녀석의 계략을 까발려야겠다 싶어 글을 썼습니다.


결국 글을 썼으니 제가 이긴 셈입니다. 검열관 녀석의 승리는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놓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의 눈치를 보게 만들고,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자신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남이 원하는 자신이 되고, 그리하여 적당히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검열관의 승리입니다.


유난히 검열관의 힘이 세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 날은 정말 괴롭습니다. 글을 써야 하는데, 쓸만한 건 없고 써놓은 글조차 어디 내놓기가 창피합니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하고, 발행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글이 엉망일 수는 있지만, 이런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글을 쓰기가 더 어려워질 테니 말입니다.


어쨌든 글을 쓰긴 썼습니다. 손가락이 무겁게 방해하는 검열관 녀석의 손을 뿌리치고 무의식적으로 누르는 백스페이스를 의식적으로 참아 가며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런 날도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도 썼으니 한 걸음 더 내디딘 셈이고, 검열관과의 싸움에서 한 번 더 이긴 셈입니다. 다음에는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좀 더 일찍 알아차리고 글쓰기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글을 쓰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검열관의 삐딱한 말들도 참아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제 여러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도 신경 쓰게 됩니다. 모두에게 좋은 글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최소한 글을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라도 제대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도록 글을 써야 합니다. 시간도 따로 내야 하고, 돈 한 푼 생기는 일도 아닙니다. 


그래도 글 쓰는 일이 참 좋습니다. 아무도 제게 글을 쓰라고 시키지 않습니다. 어떤 글을 쓰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빈 화면 앞에 앉아 저는 저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자를 쌓아 성을 만들고 있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이 삶을 살아줄 수 없는 것처럼, 제가 쓰는 이 글도 누구도 대신 써 줄 수 없다는 사실에 벅찬 감격을 느낍니다. 글을 쓸 때만큼은 저는 온전히 제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점점 더 제 자신이 되기 위해서 씁니다. 


얼마나 글을 쓰게 될지, 제가 써야 할 페이지는 언제쯤 나오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때를 만나기 위해서는 글을 써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저는 오랫동안 글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단기간에 승부가 날만큼 확실한 글솜씨는 없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때가 될 때까지 쓸 것입니다. 무엇을 쓰게 될지, 얼마나 많은 글을 남기게 될지 기대됩니다. 


사진 출처 : www.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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