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막 일지
1. 집을 배달받다
3년 전 바다가 보이는 산속에 조그마한 땅을 샀다. 퇴직하면 소소하게 일상을 보내고 싶어서다. 이곳은 주인장이 오랫동안 숲을 가꿔온 곳이어서 300평 남짓 내 땅만 가꾸면 좋은 뜨락이 될 수 있는 곳이다. 다람쥐 드나들듯 세 번의 계절을 지나왔다.
땅을 반으로 나누어 길가 쪽은 작약을 심었다. 안쪽 땅은 다시 반으로 나누어 위쪽은 터로 다지고 아래쪽은 텃밭을 만들었다. 저수지 아래쪽으로 펼쳐진 율포 바다 풍경을 어떻게 하면 다 담을 수 있을까
매번 밭의 가장자리를 맴돌며 가늠해보곤 했다. 될 수 있으면 땅의 지형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여름에 숲이 우거지면 시야가 막힐 것 같아 경사면을 조금 높여서 땅을 다졌다.
드디어 집이 배달되는 날이다. 시공과정을 사진으로만 체크했던 농막, 300km가 넘는 길을 달려와서 숲에 안착될 집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밭으로 달려간다. 전날 저녁에 출발했다는 집은 저상 트레일러에 실려서 동네 어귀에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저상트레일러는 도로 폭이 s자로 구부러져 있는 숲 안쪽 도로를 갈 수 없기 때문이다. 5톤 트럭으로 다시 옮겨 싣고 숲으로 들어와야 한다. 층고 때문에 나뭇가지들이 걸리는 것을 예상해서 전날 오후에 작업자들이 미리 와서 어느 정도 가지치기를 했지만 코너 쪽 나무가 걸리는 것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다. 결국 숲 주인장의 허락을 얻어 나무를 통째 잘라냈다. 5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점심때가 되어서야 자리에 안착한다. 청소하고 정리하고 나니 깊은 밤이다.
'하나더 숲'에서 첫밤이 깊어간다.
2. 숲과 하나 되어 가기
집 둘레를 정리하면서 4월이 다 지나간다. 땅을 샀던 첫 해에 심은 복숭아나무에 도화꽃이 한창이다. 곳곳에서 움튼 싹들이 산의 색감을 연초록으로 바꾸고 있다. 산빛이 가장 예쁜 계절이다. 초록 나무에 둘러싸인 집이 편안해 보인다.
이 숲에 땅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다. 3년 전 여름, 율포에서 천포 쪽 해안도로를 지나다가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붉은 배롱나무로 쭉 이어지고, 차밭이 동네 뒤편으로 펼쳐져 참 아늑하고 이뻐서 동네 구경이나 하자고 들어 온 적이 있다. 길을 잘못 들어 숲길로 접어들었는데 사유지인 듯해서 차를 돌리다가 숲 주인장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었다.
이 숲 주인장은 자연생태에 신념이 강한 분으로 2만 평의 산에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어 온 곳이라 인위적인 것이 이 숲에는 없다. 산 둘레에는 편백나무. 목련. 벚나무 등이 서로 맞닿은 숲 길이고 산책로를 따라 봄에는 동백꽃,개나리, 진달래, 라일락을 비롯해 제비꽃. 민들레, 용담꽃, 애기똥풀, 현호색 등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고 여름에는 산딸나무, 나리꽃, 꽃무릇이 가을에는 단풍나무 맥문동이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작은 집을 앉히고 첫 번째 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숲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다. 올해는 너무 가물어 산책로 중간에 있는 호수가 말라서 벚꽃의 물그림자와 물에 떨어진 흰 벚꽃 사이로 저어 가는 뗏목의 절경을 볼 수가 없다. 쩍쩍 갈라진 호수의 검은 밑바닥에 앉은 꽃잎들이 아쉽다.
호수가 이렇게 바닥까지 마른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호수에서 살던 새우들이 파닥 거리다 모두 죽었다고하니 가뭄이 재난인 상황이다. 그래도 숲 속 나무들은 어떻게든 새순을 틔우고 꽃을 피워낸다. 제 안에 있는 수분을 다 끌어올려 이 봄을 건너간다. 이제 조금씩 내 공간도 숲의 일부가 되어가는 중이다.
3. 종이 속의 뜰을 땅에 옮기다
밭에 심을 작물과 틈틈이 메모했던 꽃지도를 꺼내 나무와 꽃의 위치를 농막을 중심으로 수정하고 땅의 형태를 도면대로 만들어 간다. 주말 마다 한 부분씩...
꽃씨를 주문해서 발아 시키고 모종이 크는 동안 꽃들이 뿌리내릴 공간을 만들며 주말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한달이 금새 찬다 모종을 다 옮기고 나니 봄이 화르르 피어난다
그러나 마음만큼 쉽지가 않다.
풀들은 내가 뿌린 씨앗보다 먼저 나오고
구입한 모종보다 더 실하게 쑥쑥 자란다.
속 타는 것은 초보 텃밭지기의 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