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날들 6 -퇴직, 같은 듯 다른 삶

또 다른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시간

by 자야



그동안 몸 담아왔던 직장에서 퇴직을 했다. 누구에게나 오는 은퇴가 나에게도 온 것이다.

이제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아야지 하는 해방감과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해 일해 온 것에 대한

허망함이 함께 뒤섞인 마음이다.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퇴직 이후에 어떻게 살까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낼 공간도 만들고, 놀 거리도 만들고, 하고 싶은 리스트도 만들며 나름 준비하며 살았는데, 젊은 친구들과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이랑 지내다 보니 정작 내가 늙어간다는 것은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송별회를 마치고 돌아와서 직원들과 방과후 쪼꼬미 아이들이 써준 작별의 글들을 오래 들여다 보았다.

마음이 따뜻하기도 하고 찡하기도 하다. 이 직원들과 아이들 덕분에 나는 내 그릇보다 더 큰 일들을 감당하고 해낼 수 있었다. 복이 많아 좋은 직원들과 오래 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담담히 손 흔들고 이제 또 다른 나의 길을 갈 시간이다.



오랫만에 깊은 잠을 잔다. 죽은듯이 잔다.

간헐적 불면으로 꽤 오래동안 고생해왔는데 이렇게 잘 자다니 신기한 일이다.

알람을 켜놓지 않아도 눈은 출근 시간에 맞춰 떠지는데

창밖을 내다보면 아이들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고 거리는 분주하다.

그러나 나는 아침에 서둘러야 할 일이 없다.


느긋하게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과일과 요거트로 간단한 아침을 먹는다.

시간에 쫓기는 일은 아니지만 다이어리 일정은 꽉 차있다.

퇴직을 축하하거나 위로해준다고 잡힌 식사, 차모임, 미뤘던 여행, 헐렁한 시간을 낚아채는 번개 모임, 문학행사, 출판 원고 정리 등등

백수과로사는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두 달 동안 시간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휩쓸려 나돌다가

원고 정리를 하려고 칩거에 들어가니 겨울이 오고 있다.

미루고 미뤘던 숙제, 파일 속에 묻힌 시들을 꺼내서 탈고를 시작한다.

매일 숲 속 작은 집으로 출근해서 시를 고르고, 고치고, 버린다.

140편에서 120편, 80편, 60편, 마지막 59편. 쓰는 것도 힘들지만 버리는 것은 더 힘들다.

시집내는 것이 시집 가는 것 보다 더 힘들다는 농담의 뼈를 실감하는 날들이다.


퇴직 허니문 시간이 지나고 시집 출판이 끝나면 널널해진 시간의 자유가 가져다 주는 충만함과

많지 않은 퇴직금과 연금을 들여다보면서

불안함을 함께 겪겠지만

여백의 길을 걸어가는 이 시간을 환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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