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콧물 흘리며 파 다듬는 밤
마을 반장 할아버지께서 쪽파를 주셨다.
애써 키우셨는데 양념에 쓸거 한 주먹만 주시고 파시라고 해도 막무가내
" 와따~ 이런 것이 시골 인심이여! 많으면 이웃들하고 나눠묵으믄 되제~"
하시면서 막 수확한 쪽파 한 박스를 차에 실어주신 것이다.
정말 나는 딱 한 주먹, 양념으로 쓸것만 있으면 되는데 ~
더 이상 사양도 못하고 얼결에 잘 먹겠다고 인사를 하고 쪽파 한 박스를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서너 명 지인집에 들러 덜어주고 왔어도 꽤 많은 양이 남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렇게 많은 파를 다듬어 본적이 없다. 마트에서 손질된 양념파를 사먹거나
엄마가 담궈준 파김치를 낼름낼름 받아와 먹기만 했을 뿐이다.
주말에 비운 집을 정리하고 씻고 나니 밤이 깊었다.
싱싱한 파를 그대로 두고 자면 내일은 시들어질 것 같은데
여든이 넘은 나이에 농사 지어 나눠주시는 할아버지 정성과 마음이 무엇보다 더 따뜻해서
파를 다듬어 냉장고에 넣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포기 다듬자 벌써 콧물이 나기 시작한다. 조금 있으니 재치기, 그 다음에는 눈물이 찔끔찔끔.
슬픈 드라마를 보다 훌쩍이는 것처럼 늦은 밤 식탁에 앉아 훌쩍이며 파를 다듬는다.
숲으로 집이 들어오는 날, 마을 입구까지 온 저상 트레일러에서 5톤 트럭으로 집을 옮겨 실으면서 마을로 들어오는 전선을 건드려 온 마을이 정전이 되는 사고가 있었다. 그 때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소리 소리 지르면서
화를 내셨던 분이 바로 마을 반장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간 다정해지셨다.
시골 마을은 공동체 성격이 강해서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오는 것에 처음에는 대체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다 조금씩 익숙해지고 소통이 되면 혈육처럼 가깝게 여기기도 한다.
추석 때면 수확한 참깨로 만든 볶은깨, 참기름, 송편을 가져다 주시고 설날에는 꼭 떡국을 한 봉지씩 가져다 주신다.
눈물 콧물 흘리며 파를 다듬다가 반장 할아버지와의 지나 온 시간을 잠깐 떠올리는 밤.
사는 것, 사는 맛이라는게 특별하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일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것을 조금씩 나누고 마음을 내 주는 것이 살아가는 일이고, 살아가는 맛이라는 것을
마을 어르신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게 된다.
파 다듬는 것을 끝내고 나니 저정이 넘는다. 아고고~ 허리가 펴지지 않는다.
시골 어르신들은 이런 노동을 하루 종일 어떻게 하고 사실까?
굽은 허리와 무너지는 관절은 이 끝없는 노동으로 자식들을 키워낸 증거인 것이다.
엄마의 휘어진 소나무 등걸 같은 손도 눈 앞에 아른거린다.
내일은 다듬어 놓은 파 한 봉지를 데쳐서 나물로 무쳐 점심 반찬으로 사무실에 가져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