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문학동네
번지는 산빛
저 색을 뭐라고 불러줘야 하나
연두빛이 번지고, 초록이 번지고, 붉음이 번지고.
갈빛이 번져 열 두달 끝에서 번지는 눈보라
계절마다 다르게 번지는 산 빛
그 풍경을 툇마루에서 바라보는 노인의 등 뒤에
짧았다 길어지는 그림자의 하루 하루들
가만히 앉은 채로 저를 넘어가는 산빛이
어느 날은 노인이 묻힌 산그림자가 들판을 쓰다듬으며 오듯이 시 한편이 나를 쓰다듬으며 온다
아버지 가신지 한 해가 지났다.
아버지가 앉아 계시던 등나무 회전의자는
갈 때마다 텅 비어 있다.
늘 그 의자에 앉아 동네 어귀의 사장나무와 산자락 옆으로 여다지 바다를 내다보던 의자,
지금은 주인이 없다.
가끔 친정에 들리면 그 의자에 잠깐 앉아 밖을 내다본다.
아버지가 그랬던것 처럼.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리며 까치발로 내다보던
내 어린날의 그림자와
노년의 아버지가 자식들을 기다렸을 황혼의 그림자가 겹쳐 있는 시골집 의자
요즘은 아버지 누워 계신 산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거나
산 그림자를 끌면서 작은 숲속 집으로 간다
틀림없는 저 빛깔을
저 색을 뭐라 불러줘야 하나
나이 먹어가는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머니
등굽은 노인의 뒷 모습
우리 모두의 부모들이 문득 눈에 밟히는 시
가슴밑이 뭉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