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죽음트릴로지]

<날개 환상통> <찬란했음 해> <여자의 여자>

by 자야


열흘 이상을 붙들고 읽었다, 완독이 아니라 겨우겨우 읽어냈다

죽음이라는 주제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은유의 폭이 상상을 뛰어넘어 어디로 튀는지

따라가다 길을 잃고 서면 낭떠러지였다.

시집을 읽는 동안 던진 질문은 시는 어디까지 달려가야 하나였다

의문을 품으며 수업 받는 학생이 숙제하듯 읽었지만 돌아서면 아득한 시집.


때로는 모호해서

때로는 피처럼 붉어서

때로는 칼끝에 베이는 것 같아서

애써 외면한 어떤 감정을 끝까지 밀고 나가

살아움직이는 생명체로 보여주는 문장이 섬뜩해서... ...


'새하다'는 낯선 어법으로 자유로움과 주체성을

억압되고 갇힌 여성성에 날개를 달아준 시인.


새들이 함께 날아 오를 때 새와 새 사이도 날개가 되는 것 같다는, 새와 새 사이와 마찬가지로 나와 타자가 만났을 때 그 사이 공간에서도 무언가가 생기기 시작한다고 느꼈고 그런 것들을 '새'라고 표현했다는 시인의 말을 읽고서 시편들을 관통하고 있는 새의 이미지가 조금 이해가 되었다.


이 시에서 새를 모두 여자로 바꾸어 읽으면

시가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아프지 않는데도 아픈것처럼 느껴지는 환상통

그 깊은 곳에는 남성 중심사회에서 여성이므로 겪어야 했던 억압과 폭력이 내재된 것의 상징이 아닐까


'저 새는 땅에서 내동댕이쳐져

공중에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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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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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은 날개를 들어 올리듯

마스카라로 눈썹을 들어 올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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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를 내려 놓을 곳 없는 이 밤에





김혜순 시인은 자기만의 어법을 만들어가는 시인이다. 이질적인 단어와 단어의 연결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를 새처럼 날아가기도 한다. 기존 어법을 벗어나면서 가져오는 낯섬이 주는 묘한 해방감이 사유의 길을 만들어낸다. 생명체가 되어 자유롭게 유영한다.


만져졌음, 해

채워졌음, 해

안달했음, 해

타올랐음, 해

찬란했음, 해


한 존재가 한 세계를 관통하며 자신을 증명해 나가듯 쓰다듬는 언어들이 집약된 문장,

만지고-채워지고-안달하고-타오르고-찬란해지기를

엄마의 엄마로부터 엄마의 딸, 딸의 딸에게 주술처럼 이어질 주문

이 시어들을 내 딸들에게도 부적처럼 주고 싶다.




" 시 한 편 한 편은 장례다. 불가능한 애도다. 나는 장례를 계속해서 시도한다. 나는 엄마의 죽음은 글쓰기로밖에는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죽음, 죽음의 엄마는 글쓰기 안에 좌정한다.

......

나는 나의 엄마가 호스피스에 입원해 있는 동안 수많은 죽음을 목도했다.

......

엄마는 나를 탄생시킴으로써 나에게서 엄마를 끊은 적이 있었다.

......

엄마는 엄마에게서 나를 두번째로 끊은 다음 나를 안고 검은 젖을 먹였다. 그 다음 나는 엄마에게서 죽음을 상속받았다. 나는 또다시 작별의 상처를 상속받았다. 그러고보니 태어날 때부터 죽음은 나의 엄마였다. 죽음은 여성형이었다. 나의 상처도 여성형일 거다. 죽음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고 부사다. 죽은 이들은 죽어서 명사가 되지 않는다. 형용사나 부사나 접속사가 된다. 엄마의 죽음에 안기고서야 비로소 나는 시인이 된 기분이다. 죽음의 분만으로 나는 시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형용사와 부사와 접속사에 둘러싸였다. 나의 시 쓰기의 기반은 죽음이다. 부재가 반, 존재가 반인 그런 시 쓰기, 존재를 부재에, 부재를 존재에 투척하는 시 쓰기, 그리하여 죽음에 안겨 있는 시인, 아무것도 아닌 것에 안긴 아무것도 아닌 시인, 엄마가 사라진 다음 그 사라진 집으로 시인이 들어간다. 그 집에 시 언어로만 구제할 수 있는 죽어버린 관계의 낱낱의 분리가 있기나 한 것처럼, 모래가 가득하기라도 한 것처럼, 시인의 손길 속에서 모래비가 내린다, 엄마에게 사막의 빛을! 그 광활한 빛을! 이제 소녀가 된 엄마를. 이제 아기가 된 엄마를. 이제 여럿이 된 엄마를. 나는 단수의 엄마에서 복수의 엄마를 추출한다.

...... " <죽음의 엄마 中 > 604P ~ 605P


마지막 <산문- 죽음의 엄마>를 읽으며 시인의 내면이 조금 이해 되었다.

시편을 읽을 때 낯선 이미지의 조각들이 한 장의 사진으로 인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붉은 시편들을 정리하고 창밖을 내다보니 눈이 내린다.

흰... 흰... 가볍게... 흩어지는...

이 버거웠던 시편들이 저 눈발처럼 흩어져 내 안에서 녹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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