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샤인볼트2021.06.01화요일
매주 수요일은 버나비시에서 yard waste 즉 잔디를 깍거나 나무를 정리하면 생겨나는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날이다.
보통 2주나 3주에 한번 잔디를 깍고 수거통에 담아 집앞 마당에 내 놓으면 아침에 시에서 특수하게 제작한 쓰레기통 덤프 청소차가 돌면서 수거해 간다.
오늘 잔디를 깍고 큰 플라스틱 통에 담아 짚앞 마당 도로가에 내 놓는데 앞집에 사는 검은피부의 청년이 하얀색 승용차에서 내린다.
지난번에도 한번 눈인사를 했는데 그는 이곳에 rent를 산지가 오래되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먼저 다가가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했다.
어차피 월세를 사는 친구는 이웃으로 오래 살것은 아니지만 흑인이 매우 드문 벤쿠버에서 그것도 우리집앞에 사는 흑인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간단하게 “내가 이곳에 온지 19년째인데” 하며 내 소개를 하고 “너의 스토리를 듣고 싶다”하니 35세의 젊은 자메이카 출신의 Mercel 이라는 흑인 청년은 하고싶은얘기를 참았다는듯,
거침없이 거의 2시간 가까이 길가에 서서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얘기를 청한 나는 당연히 듣고만 있다.
그는 자메이카농장에 끌려온 아프리카 출신 흑인노예중 도망하여 산속으로 들어가 자급자족하던 원주민이던 마룬Maroon의 후손이다.
자메이카를 프랑스가 먼저 식민지화했고 다음에 스페인 다음에 영국이 들어와 식민지화 했다.
<<유럽인들의 침략근성은 참 대단하다>>
매르셀은 2011년 즉 10년전 25살때 캐나다에 왔다. 자메이카에 관광여행을 온적이 있었던 캐나다 백인여성과 인연을 이어나가 캐나다에서 결혼을 해서 6살짜리 딸과 4살짜리 아들이 있다.
(Mercel은 자메이카에서 생활의 도움을 위해 관광 가이드를 한적도 있었다)
그는 불과 한달보름전에 이혼을 했다. 장인어른은 토론토 인근의 작은 도시에서 경찰서장police chief이었는데 얼마전에 병으로 돌아가셨다.
자메이카에 있을때는 100미터 세계기록 보유자였던 우샤인 볼트와 같이 트랙훈련을 했다.
매르셀은 400m 육상선수였다. 자기기록은 세계기록에 3초정도 뒤진 47초대였다.
이혼후 자기는 혼자 살고 있고 와이프가 아이들을 데리고 토론토로 갔다. 그는 매달 두 아이들의 양육비를 보내야 한다.
여자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은 도시여성city girl이었고 자기는 시골이어도 마당이 있는 하우스에서 살고 싶은 시골청년country boy였다.
그녀가 자기의 야망ambition에 맞추지 못하는 스타일이이었고 그래서 그녀가 이혼을 요구 했을때 싸우지 않고 순순히 이혼절차를 돕고 응했다.
이제는 토론토로 간 와이프가 오히려 자기에게 자주 전화를 걸며 그리워 한다.
Mercel은 지금 여기서 인테리어 공사 기술자로 일하며 산다.
더운 나라에서 온 친구 아니랄까봐 춥지않은 날씨에도 후드를 계속 쓰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거냐?고 물으니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흐른뒤 재혼을 하게 될것 같다고 한다.혼자 사는 것 보다 그게 좋을거 같다고 내가 말했다.
이 친구 이야기를 더 들을수 있었는데 와이프가 집앞마당에서 핸드폰을 들고 나를 부르며 다가오며 말한다.
“여보, 장모님이 화상통화 연락이 왔어. 당신 얼굴 보고싶데..”
몇달만에 보는 장모님 모습이 머리가 더 하야지신 것 같다. 장모님 곁에는 처형님과 처조카의 모습도 보인다.
내일모래 90이시니 내가 와이프하고 첫만남뒤 인사 드리러 갈때 아직 50대 후반 이셨는데 그새 34년이 흘렀다.
“ 내년에는 한국에 한번 와야지”라고 말씀하신다.
내년 2022년이면 내가 이곳에 온지도 햇수로 20년째가 된다.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에는 한번도 가질 않았다.그러고 보니 여기 온지가 좀 됐다.
집에 들어와 이 글을 작성하면서,
오후지만 그래도 햇볕이 따가운 길거리에서 서서 장장 두시간 동안이나 얘기를 들었던 마르고 날렵한 몸매의 흑인청년 Mercel의 35년간 생의 스토리를 머리속에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