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힘. Power Of A Nation

Rise of China by Education

by 이종구Burnaby South

거의 30년 전에 방문했던 미국 Ann Arbor에 있는 Michigan미시간주립대학교 교정에서 구내버스를 탔을 때 압도적으로 내 귀에 들리던 언어는 영어가 아니라 젊은 중국유학생들이 말하는 중국어였다.


국가의 힘. Power Of A Nation

2021.3.4

참조: 안중근 평전 외


일제는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인에 의해 총살당한 것에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일제는 안중근을 회유하며 “이토를 죽인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라는 한마디만 하면 사형을 면해 살 수 있을 것이고 세상에 다시 나가 타고난 능력과 재주를 펼치라 유혹한다.


안중근의 유언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여순감옥)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여한이 없겠노라”


안중근의 어머니는 안중근의 사형판결 소식을 듣고 수의(죽은 자에 입히는 옷)를 만들어 중근의 동생들을 여순감옥에 면회를 보내면서 이렇게 말한다.

“중근아, 우리 모자의 상면은 이승에서는 없기로 하자.

네가 혹시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살아서 민족에게 욕이 될 때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라”

저 세상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니 구차히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속히 하느님 곁으로 가거라”



<<김구의 어머니도 안중근의 어머니와 닮았다.

김구가 일본경찰을 때려죽인 뒤 사형선고를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갇혔을 때 그의 어머니는 감옥을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구야, 나는 네가 경기감사가 된 것 보다도 더 기쁘게 생각한다”>>



1. 엊그제가 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 3월 1일 10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안중근의사에 대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안중근의사는 황해도에서 매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제였고 그의 아버지 안태훈도 지식이 높고 개화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독립운동가 김구 가문과는 자식들이(김구의 딸이 안 씨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간다) 혼인으로 엮인 사돈관계에 있다.


가진계급이었기 때문에 공격대상이 되었던 아버지 안태훈과 아들 안중근은 동학혁명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고 정부관리와 부호 등 기득권층을 공격하던 동학군에 맞서 가진 자였던 안중군은 집안을 지키기 위해 동학군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개화사상을 가진 안중근의 부모와 집안사람들 대부분은 당시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출신의 니콜라스 빌렘신부(1860-1938 78세 Nicolas Joseph Marie Wilhelm 한국명 홍석구, 1889-1914의 25년간 한국에서 선교사로 일함)로부터 세례를 받고 천주교인이 되었다. 안중근은 죽기 직전 안중근의 요청으로 급히 여순감옥을 찾아온 빌렘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한다.


빌렘신부는 이후 서한에서 안중근 의사의 고해성사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나는 냉정한 모습을 보일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마(안중근)가 간수 2명과 함께 방으로 들어와서는 두 무릎을 꿇고 저에게 한국식으로 큰 절을 하자,

저는 참지 못하고 아버지처럼 도마의 두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아, 불쌍한 도마야, 내가 너를 여기서 만나다니!'

면담은 길고도 화기애애했습니다."



<<빌렘신부 또한 독일 프로이센제국에 합병된 프랑스 알자스로렌지방 출신으로 독일국적을 프랑스로 다시 바꿔야 했던 처지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안중근과 비슷한 처지로 서로는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그러나 일제 한국 침탈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빌렘 신부는 일제침탈을 한국이 근대화 혜택을 누리게 될 계기로 보았던 당시 외국인 서구 선진국출신 선교사들의 보편적 입장과 다를 바 없었다>>


안중근은 자기와 자기 집안사람들을 세례를 해준 빌렘신부를 도와 전교를 돕던중 많은 백성들이 배우지 못함으로 인해 세상에 대해 매우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안중근은 빌렘신부에게 천주교 대학교를 설립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빌렘신부를 포함하여 당시 조선에 있던 서양의 신부들은 백성들이 교육을 받으면 전교가 어려워지고 천주교 신앙심을 키워나가기가 어려워진다며 크게 반대한다.

이후 안중근의 신앙심은 계속 이어지지만 외국인 신부들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사라진다.


2. 어제 나는 한국에서 국내기술로 개발 중인 국산전투기를 직장동료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내게 묻는다.”한국에는 능력 있는 엔지니어 engineer들이 많구나”하며 부러워하듯 묻는다.


<<몇 년 전 보잉사 시애틀 인근 에버렛 Everett공장 견학을 갔던 나는 공장벽에 보잉사를 도와주는 납품업체 명단에 비행기 날개를 납품하는 한국업체가 있어서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3. 내가 위에 두 가지 사례를 적은 이유는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고 싶어서다.


어떤 이에게는 아마도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할 일은 만인지상의 황제나 독재자가 되는 일일 것이다.


내가 백성 모두를 내 마음대로 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들은 백성이 배워 깨우치고 깨닫게 되는 것을 제일 두려워한다.

세상이치를 알고 배우게 된 사람들은 ‘질문 questions’즉 왜? why?

하고 따져 물으며 왜 황제 당신은 그 자리에서 내게 왜 이러라 저러라 통제하고 조종하나? 라며 황제가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해댈 것이기 때문이다.


안중근이나 유관순이나 만약에 배우지(교육받지) 못한 자였었다면 일제에 대한 저항감도 없었을 것이고 더욱이 목숨을 내놓을 의거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1. 노예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도록 학교에 보내는 노예 소유주 master은 없다.


2. 그러나 국가의 힘은 그 정 반대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많이 배우고 많이 아는 국민이 많은 나라일수록 강해진다.

나를 괴롭히는 적에 대항할 전투기도 만들 수 있고 효율적인 국가 시스템을 구축해서 국가의 생산성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열이 높고 평균적인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가 잘 사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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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세계적인 천재들이 배출되고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끄는 순다 피차이 등 새계적인 CEO들을 배출하는 인도 India지만 교육열이 훨씬 더 높은 중국이 지금 현재 더 부강한 나라인 이유가 교육열 때문이고 미래에 인도보다 중국이 훨씬 더 두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의 30년 전에 찾아갔던 미국 Ann Arbor에 있는 Michigan미시간대학교 교정에서 버스를 탔을 때 압도적으로 내 귀에 들리던 언어는 영어가 아니라 젊은 중국유학생들이 말하는 중국어였다.


이런 교육의 힘은 30년 뒤인 지금 현실로 그들에게 다가와 당시 몹시 가난했던 중국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제는 경제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맞서려는 중국의 대들보가 되었음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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