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인 (아인슈타인과 마이클 페러데이) 2017.5.27

by 이종구Burnaby South

사람이 살면서 평생 두 번 恩人을 만난다고 한다. 앞으로 만날 나의 은인은 누구일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지나간 은인은 누구였을까?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은인 (아인슈타인과 마이클 페러데이)*** 2017.5.27


아인슈타인(1879~1955; 76세) 은 학창 시절 따지기 좋아하고 권위에 대항하는 말하자면 Rebel 기질이 많은 학생이었다. 대학생 시절에는 강의내용등 학사운영에 불만(단순 암기과목을 정말로 싫어했다고 한다)을 표현하여 교수들에게 눈총을 엄청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 옛날에는 지금처럼 입사시험을 보고 취직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나 친지의 추천으로 취직을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을 실업자로 지내던 아인슈타인은 얼마나 힘들었던지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에 그 심정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랑하는 부모님, 저는 지금 취직을 못하고 돈도 없고 너무 힘이 들고 부모님께 면목이 없습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인 것 같아 정말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던 그에게 스위스 특허국에 다니던 친구의 주선으로 특허국의 특허 심사관으로 안정적인 일을 시작하게 된다. 워낙에 학창 시절에 물리와 수학에 뛰어났던 아인슈타인은 당일에 정해진 특허심사를 빨리 마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윗사람 눈치 보아가면서 그는 그 유명한 특수 상대성이론을 준비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친구가 가능하게 만들어 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 친구가 恩人이었던 것이다.


그 뒤에 일반상대성 이론까지 완성한 아인슈타인은 빛의 입자론을 주장하며 빛도 중력의 영향을 받아 경로가 구부러 질 수 있다고 예언을 한다.

일단의 물리학자들이 그의 예측을 검증하고자 일식 때를 기다려 평상시에는 강렬한 태양빛에 가려 안 보이는 태양을 살짝 비껴 가려있는 별을 관측하려 했지만 번번이 여러 번 실패한다.


유태인이었던 아인슈타인은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고 많은 독일의 과학자들이 독일의 전쟁에 찬성하고 동조하는데 반대하며 또한 유태인로서 목숨의 위협을 느낀 독일에서 탈출하게 된다. 동시에 지식인들과 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전쟁반대 결의문(Manifesto)에 일단의 과학자들과 함께 서명을 하게 된다.



그래서 독일과 전쟁을 하는 영국의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에게 동질감 또는 측은 감(sympathy)을 갖게 되는데 그중의 한 명이 당시 젊고 유능한 영국의 천체물리학자인 아서 에딩턴 경(Sir Arthur Eddington)이었다.

1919년 5월 19일 그는 개기일식이 관측가능한 아프리카 서쪽의 프린시페(principe) 섬에 가서 아인슈타인의 예측(빛도 입자처럼 중력에 의해 경로가 휠 수 있다는)을 확인하는 데 성공한다.



이로서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되었다. 300년을 이어온 물리학의 절대 지존인 뉴톤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지구 밖에서의 자연운행법칙을 확립하고 설명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노벨상을 받게 되고 상금 200만 불도 받게 된다.

참고로 그 옛날 200만 불은 지금의 200만 불 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의 화폐가치가 높았을 것이다.


그 상금 200만 불은 수상하게 되면 돈을 모두 주겠다고 약속한 前妻(스위스 Polytech공과대학 동창생: 그녀는 수학학점을 따지 못해 아인슈타인처럼 졸업은 하지 못함, 당시 같은 학과 학생이 단지 6명이었다고 한다. 옛날 대학교는 정말 실력이 있는 학생만 받은 것 같다) 에게 두 아이들의 양육비 명목으로 주게 되지만.. (아인슈타인은 노벨상을 받을 것을 확신했는지 이혼한 와이프에게 노벨상 꼭 받을 테니 애들 양육비는 걱정 말라고 했다고 한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Astrophysicist)인 아서 에딩턴 겨은 아인슈타인의 또 다른 恩人이 된 것이었다.




전기모터를 발명하고 자기장을 발견한 영국의 실험 물리학자 마이클 페러데이(Michal Faraday 1791~1867 ;76세 )의 업적도 영국의 위대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제임스멕스웰(James Clark Maxwell 1831~1879 ;48세 )이 수학적으로 해석하여 자기 유도방정식(Faraday-Maxwell equation)으로 설명하고 확립하게 된다. 멕스웰은 그의 논문을 발표하기 전에 논문을 사전에 페러데이에게 보내 나이가 훨씬 많은 40살 더 연로한 선배 물리학자 페러데이에게 예의를 갖추게 된다.


페러데이는 어린 시절 언어 발음을 잘 못하는 등의 언어장애로 학교 선생님에게 자주 꾸중을 듣게 되자 그의 어머니는 그런 페러데이를 불쌍히 여겨 더 이상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가르치게 된다. 정규 학교를 다니지 못한 페러데이는 평생을 수학에 발목을 잡혀 주변 동료나 물리학자들에게 비웃음을 받고 조롱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발견과 발명을 그림이나 실험으로 다른 과학자나 대중에게 보여 줄 수는 있었지만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해서 수학과 물리학의 언어를 몰랐기 때문에 방정식으로 도큐먼트화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손으로 그린 그림으로 된 설명서 책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페러데이의 자기장, 모터작동원리등 물리법칙발견의 업적을 잘 알아본 어려서부터 부유하게 자라고 엘리트코스를 밟은 젊은 천재 수학자 멕스웰이 그의 恩人이 된 것이었다. 천재 수학자 멕스웰(Maxwell) 덕분에 페러데이는 위대한 물리학자의 반열에 오르게 될 수 있었다.


P.S: 사람이 살면서 평생 두 번 恩人을 만난다고 한다. 앞으로 만날 나의 은인은 누구일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지나간 은인은 누구였을까?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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