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열렬한 공산주의자를 더 잘 산다고 뽐내는 남한의 자본주의자가 쉽사리 설득하고 논쟁에 이길 수 없듯이, 충실한 이슬람교도는 아무리 충실한 기독교도가 설득을 하더라도 개종이 불가능하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대학교가 내게 가르쳐준 것 두 가지 (2018. 8. 3)
<<<3년 군복무후 다시 예비고사를 보고 들어간 늦깎이 신입생인 내게 입학식장에서 총장님이 하시는 말씀은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총장님 말씀 중에 "공대생도 딱딱하게 공학서적만 보지 말고 인문학을 공부하고 소설과 시도 읽어야 한다"가 있었다. 이 말씀은 내 평생의 지침이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네가 배운 것이 무엇이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크게 두 가지를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첫째는 우리의 친구 중에 총학생회 부총학생장에 출마하겠다는 친구가 있었다. 임기가 1년 그리고 3학년 때 근무를 한다.
그는 말이 적고 매우 조용한 친구였으므로 우리는 조금은 놀랐다.
나는 복학생은 아니었지만 군복무를 마치고 입학을 했으므로 공과대학 복학생 그룹 13인회에 합류했던 터였다.
우리는 그에게 이왕에 출마하면 부총학생장이 아니라 총학생회장에 출마하라고 권하고 식사자리에서 그를 추대하고 선거운동을 도와주기로 의기투합하고 결의를 한다.
당시 선거는 직접선거가 아닌 150명의 대의원이 투표하는 간접 선거였다.
거의 두 달간 진행된 선거 운동 기간 중 우리 13인은 매일아침 모여 선거운동 작전회의를 하고 두세 개의 조를 짜서 대의원들을 일일이 만나 우리 후보를 선전하고 그들을 설득한다.
물론 우리는 대의원들을 만나기 위해 상당수의 수업을 빼먹으며 친구를 위해 학교성적이 떨어지는 스스로의 희생을 하며 선거운동을 한다.
결국 우리가 밀던 그 친구는 친구들의 강력한 도움으로 어렵게 2차 결선투표까지 가는 끝에 선거에 이기고 총학생장이 되었다. 우리는 너무도 기뻐서 서로를 얼싸안았다.
자신들을 희생하며 선거를 도왔던 나를 포함한 12명 거의 모두가 선거가 끝난 후 야인으로 돌아가게 된다.
뒤늦게 공부에 재미가 붙은 나는 선거운동을 하기 전 대학 첫 2년 동안 3번의 장학금을 받을 만큼 학업성적이 꽤 높았었다.
그러나 두 달간의 선거운동으로 학업을 많이 놓침으로써 성적이 상당히 떨어지게 되고 그 뒤로는 졸업을 할 때까지 장학금 수혜자로부터는 멀어져 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내게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친구를 위해 나의 일부를 잃더라도 희생을 해 줄 수 있었다는 기쁨과 큰 자부심이 가슴속에 자리 잡게 되었고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 13인 중 1명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행방을 알지 못하는 2명을 빼고 11명은 그 이후로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모임을 정기적으로 하고 야유회 골프모임 등을 하며 만나고 부부동반으로 친교를 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1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한국사 강의였다.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배웠던 한국사는 누구나 다 배웠던 것과 같이 단군신화, 고대사, 조선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특별히 자랑스럽지도 그렇다고 굴욕스럽다고 볼 수도 없는 한국 역사를 학교에서 배웠던 기억이 있었던 내게 젊은 한국사 교수님의 한 학기 강의의 주제는 ‘식민사관’이었다.
한마디로 설명하면 식민사관은 한국의 역사를 일본인 학자들이 그들 일본민족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편리하고 그들 민족이 더 우월하고 한국민족은 열등하다는 것을 찾아내려 하고 어떤 면으로는 그렇게 꾸며내려고 노력한 그들 관점의 역사관인 것이다.
내가 식민사관을 배우면서 놀랐던 것은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이렇게 몰아갈 수도 있을 만큼 사악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란 기술하는 사람이 얼마나 마음껏 주조를 할 수 있는 것인가를 알게 되니 경악을 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영국인들의 인도인들에 대한 분리, 이간 책동으로부터 배웠을 법한 그러한 일본인들의 정교하고 조작적인 타민족에 대한 세뇌에 놀라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때부터 사람의 의견이나 생각은 의도적이던 아니던 다분히 주관적이고 일방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한편으로는 답답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교수님의 식민사관 강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한 곳에 고정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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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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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돌이켜 봐도 20~30대 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도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볼 때 모두 훨씬 더 탄력성(elasticity)이 있었던 것 같다.
웬만한 일에는 잘 화도 나지 않았고 화내지도 않았고, 누가 약속장소에 늦게 나와도 웃으면서 기다리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인지 아니면 굳이 핑계를 대자면 세파에 시달려서 인지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참을성도 줄어들어가는 느낌이다.
탄력성이 줄어들고 완충이 어려우니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흡수가 안 되고 바로 돌아나가게 되는 느낌이다.
학점까지 까먹어가며 무보수로 동창 친구 녀석의 선거운동을 기꺼이 도와주었던 내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제 내게는 1+1=2이라는 경직된 마음이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
2.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식민 사관만을 듣고 배운 사람에게 조선인 즉 한국인은 무능하고 바보 같은 민족이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금문교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일 수도 있고, 세상에서 가장 Ugly 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바라보는 모든 이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북한의 열렬한 공산주의자를 더 잘 산다고 뽐내는 남한의 자본주의자가 쉽사리 설득하고 논쟁에 이길 수 없듯이, 충실한 이슬람교도는 아무리 충실한 기독교도가 설득을 하더라도 개종이 불가능하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면 그 이슬람교도는 이미 충실한 무슬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상 종교 철학 즉 관점도 어느 다른 관점보다 우월하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아들과 보름 전 4일간의 요세미티국립공원 부자 로드트립여행중에 나눈 얘기 중에 우리 아이가 아빠가 한 말 중에 가장 듣기 좋은 말 용어라고 하며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 좋아했던 말이 바로 ‘탄력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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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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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3도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좀 더 너그러워지고 관대해지자.
그러기 위해서 자극에 대해 곧바로 반응하지 말고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한 뒤에 반응하자.
2. 나이 먹어 근육과 뼈는 어쩔 수 없이 경직되더라도 적어도 생각만큼은 ‘탄력성’을 키워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