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필리핀청년의 짧았던 인생사. 2026.02.20

by 이종구Burnaby South

어느 필리핀청년의 짧았던 인생사. 2026.02.20


1. 처음으로 찾은 필리핀은 기존의 내가 가진 선입견과 비슷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국민의 대다수가 가난한 나라라는 생각을 머리에 가지고 마닐라 Ninoy Aquino 국제공항 니노이 아퀴노 공항에 도착하니 4년 전에 찾았던 호찌민(사이공) 공항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더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입국수속은 심지어 김포공항 국내선 보다 빨랐고 물어보는 것도 하나도 없이 입국수속대를 지나갔다. 한국+캐나다 국가의 힘이 느껴졌다. 모든 인간은 단 두 명도 똑같이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는 출생조차 특권이 된 느낌이 들었다.


딸부부 사돈부부 그리고 우리 모두 6명은 마닐라에서 자동차로 순수운전시간만 10시간 가까이 걸리는 Sagada로 향했다.

여기서 우리는 수마깅Sumaguing 동굴탐험과 말보로 peak 그리고 합친 논두렁길이가 20,000km라고 하는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계단식 논을 볼 예정이다.

수마깅동굴은 제주도 동굴과 달리 아래로 몇백 미터를 내려간다. 선녀탕과 같은 욕조도 많다.


2. 사가다는 해발 1000미터가 훨씬 넘는 산악지역 마을이다.

마닐라에서 390km 거리지만 고속도로가 절반이고 꼬불꼬불 좁은 산악도로가 이어지는 험난한 지형의 길이었다. 도중에 산사태가 나서 길이 망가져도 수리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도착한 다음날 우리는 2차 대전 중 일본군이 숨어있었다는 동굴을 통과하는 약 4-5km 거리가 되는 트레일을 하이킹하게 되었다.

트래일의 시작은 도로에 인접한 국가가 세운 공동묘지를 지나게 되어있다.


묘지 초입에 한 묘지를 트레일을 안내하는 현지가이드가 한국동란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필리핀군인의 묘지를 보여주었다.

제일 눈에 띄는 자리에 있는 75년 전에 전사한 한국전 참전 필리핀 병사의 묘는 대한민국 국립묘지에 묻혀있는 병사의 무덤보다 더 잘 꾸며져 있었다.


시간이 없으므로 급히 묘비석을 촬영을 하고 트레일을 걸어 내려갔다.

나중에 읽어보니 이 젊은이는 1951년 2월에 지평리전투에서 교전 중 전사한다.

그의 시신은 재가 되어 고국의 산에 돌아오게 된다


트레일을 걸어내려가면서 청년의 생각이 내 머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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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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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고 궁금했던 것들

1. 산골마을 청년은 목숨을 잃을 확률이 매우 높은 걸 알았을 텐데 왜 한국을 갔을까?

2. 돈을 벌려고?

그렇다면 청년의 부모의 승낙을 받았을까?

3. 결혼은 했었을까?


재미나이에게 물어보았다.


질문;

필리핀 산악마을인 사가다 공동묘지에 묻힌 한국전 참전용사 알버트 왓킨스의 묘를 보았습니다. 왜 갔는지 그에 대해 알려주세요


재미나이의 대답;

사가다의 성 마리아 처녀 교회(Church of Saint Mary the Virgin) 묘역인 **캄포 산토(Campo Santo)**에 잠든 알버트 왓킨스(Albert Watkins) 일병에 대해 확인된 정보를 정리해 드립니다.

1. 신원과 참전 배경

알버트 왓킨스는 1925년 1월 10일 필리핀 마운틴 주(Mountain Province) 트리니다드(Trinidad)에서 태어난 필리핀인입니다.

그의 참전 과정에는 독특한 점이 있는데, 그는 필리핀 파병군(PEFTOK) 소속이 아니라 미 육군(제1기병사단 제5기병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조카인 레치 그랜트 살바도르(Retchie Grant Salvador)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본명인 알버트 왓킨스라는 이름으로 미군에 입대했습니다. 당시 필리핀 청년들 중에는 더 나은 기회나 급여, 혹은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미군에 직접 입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2. 한국전쟁에서의 행적

• 소속: 미 육군 제1기병사단 제5기병연대 2대대 E중대

• 전사 기록: 1951년 2월 23일, 경기도 지평리 인근에서 전개된 '킬러 작전(Operation Killer)' 도중 전사(KIA)했습니다.

• 묘소: 그의 유해는 고향인 사가다로 돌아와 현재 사가다 공동묘지인 캄포 산토에 안치되었습니다.


3. 질문하신 구체적 내용에 대하여

• 결혼 여부: 현재 공개된 군 기록이나 유족(조카, 자매 등)의 추모 글에는 배우자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주로 그의 자매(Mariana Capuyan Ano)와 조카들이 그를 기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젊은 나이(26세)에 전사할 당시 미혼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나 확정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 보수를 바라고 자원했는지 여부:

그의 개인적인 내면 동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당시 상황에 비추어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 경제적 동기: 당시 미군에 입대하는 것은 필리핀 현지 부대(PEFTOK)에 입대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급여와 혜택(미국 시민권 기회 등)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경로였습니다. 따라서 가족을 부양하거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에게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 사회적 배경: 사가다를 포함한 이고롯(Igorot) 부족 사회는 전사로서의 명예를 중시하는 전통이 강했습니다.


알버트 왓킨스의 묘비는 사가다를 찾는 한국인들에게 필리핀과 한국의 깊은 인연을 상기시켜 주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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