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과 악(惡)

by 이종구Burnaby South


역대 로마교황들이 세기에 걸쳐 칭송했던 기독교 신학의 아버지라 불릴만한 천재 theologist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를 평생 괴롭힌 것이 ‘인간에게 과연 자유의지가 있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자유의지의 유무는 크게 보면 인간이 신 God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요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의 운명을 내가 결정할 자유의지가 없다면 선악에 따른 심판 judgement을 할 수 없게 된다>>


어찌 보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양단의 결정을 해야 하는 그 어려운 문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신학대전 3권을 쓰던 도중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글쓰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선(善)과 악(惡) (2018.9.13)


나는 얼마 전 약 달포 전에 OTA(Over The Air공중파) 안테나를 얻게 되어 TV를 보기 시작했다. 거실에서도 보고 컴퓨터에서도 보고 차고(garage)에 있는 러닝머신(treadmill)을 달릴 때도 본다.


캐나다 밴쿠버는 14개 정도의 미국과 캐나다 방송국의 공중파를 수신할 수 있다. 나는 처음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는데 몇 개 정도는 내가 너무 좋아했던 옛날 추억의 TV드라마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MeTV, Decade TV 등에서는 내가 어렸을 때 대한민국 방송국에서 많이 보아 와서 친숙한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보난자, 로하이드, 법정드라마인 Perry Mason과 스타트랙 같은 40~50년 전 옛날 미국의 방송이나 드라마를 다시 접하니 TV가 어린 시절 과거로 나를 데려다주는 느낌이다.


그것들 중에 내가 대한민국에서 즐겨보던 전쟁영화가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 손더스중사가 나오는 육군전투 ’Combat’과 전투비행단의 무용담을 그린 한국명 ‘출격’이라는 드라마였는데 그 드라마들은 방송이 되질 않아 조금은 섭섭했다.


독일정부에서 미국정부에 항의를 해서 오래전부터 방송을 못하게 됐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 TV 드라마‘Combat’을 보면서 미군이 독일군을 쏴서 죽이는 장면에서 기뻐하고 박수도 치곤 했던 기억이 있다.


미국인의 입장에서 미국은 good(선)이고 독일은 악(evil)인 것이었다.

총 맞고 죽어가는 독일군도 자기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부모가 있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기들도 있었을 것이다. 왜 그 젊고 푸른 눈의 금발 청년인 독일군은 evil로 정의되어야 했을까?


Bonanza에서는 아버지 Ben Cartwright와 덩치 큰 뚱보 아들인 Hose와 Joe Cartwright(마이클 랜든 분)가 자기 마을에 들어와 악행을 저지르는 외부자를 물리치거나 처단하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드라마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침입자는 예를 들면 땅을 사고파는 부동산업자들도 포함이 된다. 따지고 보면 부동산업자도 장기적으로 보면 마을을 부흥시킬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는 코란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16억의 신도들이 그 율법을 하늘처럼 받들고 있다. 어느 철학자는 코란이 조잡하고 수준이 낮은 글이라고 폄하하기도 하며 어떻게 그 많은 배우고 똑똑한 이슬람들 교도들이 그 조잡하고 허황된 글로 쓰인 경전에 목을 매고 있는지 의아해한다. 다시 돌아가서 코란은 선과 악에 대하여 단순하지만 직설적으로 규정해 놓았음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도둑질한 자는 도둑질에 이르는 과정과 원인에 상관없이 악인이므로 두 손을 자르고 살인한 자도 지금의 미국법이 1급, 2급 이런 식으로 정의하고 있듯이 그것이 의도적이던 아니었던 모두 상응하게 가해자의 목숨을 앗아가도록 되어있다고 알고 있다.


영국인들이 화폐가치로 따지면 비교조차 되지 않을 값이 나갈 땅덩어리인 인도(India)를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다고 했던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한다.

“There is nothing either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 (원래 선과 악이라는 것은 없다. 그건 바로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이다.)”


세상사는 게 힘들고 고단한 인간이 힘들게 일하거나 기쁠 때 노래를 만들어 내고 부르듯이 그리고 늦은 무료한 저녁시간에 읽을 소설을 쓰고 읽듯이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뜻이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관습을 뒤엎는 매우 급진적인 생각으로 보일지 모르나 우리가 매일 당연하게 생각하고 먹는 쌀밥과 같이 쉽게 생각하고 정의했던 선과 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글이다.


선과 악을 경계를 둘 수 있는 수학적 사고로 생각해 보면 49.999999999과 50.000000001과는 경계를 정하기 전에는 차이가 없다고 지난번 내 글에서 나는 생각을 피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수학과 철학은 결국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칸트의 말처럼 그리 쉽게 다룰 일도 아니고 이원론적으로 선의 Band 악의 Band로 무 자르듯 하는 것은 더 나쁜 방법일지도 모른다.


나와 부부싸움을 할 때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하는 나의 와이프는 악(evil)인가? 아니면 금방 사이가 좋아져 다시 웃으며 사랑할 때의 나의 와이프는 선(good)인가?


그렇다면 그녀는 우리가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에 나오는 양의 탈을 쓴 늑대(evil)란 말인가? 생각을 조금 깊게 가져가 보면 선과 악을 단순하고 쉽게 정의 내릴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미국의 관습주위적인 삶을 고집하는 Amish people처럼 시골에 살면서 배우지 못하고 고립되어서 생각할 수 있는 폭이 제한된 인종차별주의자(Racist) 일지도 모를 백인들이 뽑아준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evil이라면 지금이라도 기소를 해서 처벌을 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유색인종들에게 그는 evil이지만 그를 지지하는 백인들은 그를 good man이라고 부를 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트럼프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 good man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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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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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장기 시절 미션스쿨에 다니던 나는 일본인들이 극악(extreme evil)이라고 배웠으므로 그네들을 하늘이 알아서 벌을 내릴 것으로 굳게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한때 2차 대전을 일으키고 많은 전쟁터에서 만행을 일으킨 그 악의 축이었던 일본인들의 후손과 이곳에서 누구보다도 가깝게 지내고 있다.(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저녁에도 그 부부가 우리 집에 놀러 온다) 그리고 일본은 망하지 않고 심판도 받지 않고 잘살고 있다.


누군가는 ‘언젠가는...’이라는 말을 하고 싶겠지만 그 말은 너무 추상적이고 비합리적 말일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무책임한 비과학적 예언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흐르는 물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의 표면은 파도가 치면 치솟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때뿐이고 바람이 잦아들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항상 평평하고 칼로 자를 수 없기 때문이다.

선과 악은 항상 쌍으로 한 몸처럼 존재하며 막대한 에너지를 들여서 잘라내도 잘라내도 다시 항상 쌍으로 존재하는 양자역학의 입자 쿼크(quark)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즉 원초적으로 그 둘은 분리해서 없애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부부싸움을 해도 서로 항상 용서를 해주는 우리 부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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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칸트는 매우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머리는 뛰어나지 않았지만 정말로 열심히 노력을 하여 입신을 했다고 한다.

돈이 없었지만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대학에 들어가서 철학을 공부하게 된다. 늦은 나이인 47살에 대학교수가 되어 철학 강의를 하면서 그동안 죽어라고 또 공부를 하여 당시로 치면 정말 늦은 나이인 57세에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저술을 세상에 내놓으며 당시 학계에서 거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늦깎이에 공부에 빠져 10년 동안을 관련분야의 저명한 거의 모든 책을 독파할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너무 많은 생각들과 공부에 의해 머리가 돌 정도(mentally ill)였다고 한다.

정신병원을 찾은 그를 진단한 정신과의사는 칸트의 병이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생길 수 있는 책벌레증후군이라고 진단을 했다고 한다.


칸트는 차치하고라도 지금 현시대처럼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고 대량커뮤니케이션 시대에 그리고 가치의 혼돈이 넘쳐나는 시대에 진리를 알고 싶어 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답을 구하는 칸트와 같이 생각이 많은 사람은 살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선과 악을 단순하게 구분하고 사는 이슬람교도처럼 심플하게 코란에 대해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평생을 성지를 향해 아무 생각 없이 매일 5번 시간 맞춰 절하며 사는 삶이 더 행복한 삶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러면 그건 생각 없이 본능을 사는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만큼은 나는 분명히 안다"라고 말한 그리고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소크라테스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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