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는 곳 2 (David Hume과 Oliver Sacks) where we are going 2 2019.3.26
Hume의 본명은 Home이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스스로 개명을 했다.
내가 보기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스토리는 한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 즉사람의 이야기 personal history이다. 역경을 딛고 또는 관습적 사고를 뛰어넘어 업적을 이룬 사람들의 개인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재미있다.
인류를 세균감염의 공포로부터 구해낸 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나 당시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주변의 엄청난 반향과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고 새로운 이론을 발표한 찰스 다윈이나 아인슈타인 그리고 위대한 철학자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 시대조류에 편승하여 안일하게 지위를 즐기며 생을 마감하는 것은 모두가 할 수 있는 비교적 쉬운 일 것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시대조류에 반동적인 사상과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out standing 하는 자들은 더 용감하고 그래서 훨씬 더 존경할만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100년쯤 지난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에 태어난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 철학자인 David Hume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영국 경험주의 철학자의 주요 인물로 나중에 제임스 스튜어트 밀들의 공리주의와 독일의 철학자 에마뉴엘 칸트에게 영향을 준다.
그런데, 뉴욕타임스에 부정기 칼럼을 제공하고 작가로서의 재능 또한 뛰어났던 신경과 의사였던 Oliver Sacks(1933~2015) 교수는 암으로 시한부선고를 받게 되자 자서전을 쓰고 싶어 하는데 그가 흉내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 David Hume이다.
Sacks교수는 자기의 죽음이 가까왔음을 알고 매우 짧은 21 paragraphs로 이루어진 약 5 페이지의 자서전을 쓴 흄처럼 자기도 자랑으로 장식되기 쉬운 장황하고 긴 자서전보다는 Hume 스타일의 자서전을 써보겠다고 하면서 단문의 autobiography를 작성을 한다.
데이비드 흄은 65세에 내장기관 bowels에 stroke로 죽게 되는데 28세에 나중에 심리학등의 학문의 확립에 영향을 준 '인간본성에 대하여 Treatise of human nature'라는 첫 번째 책을 쓰지만 처음 2년 동안 책은 45부 밖에 팔리지 않고 수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책내용이 모호하고 이해할 수 없는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며 혹독한 비평을 받으며 처절하게 실패한다.
데이비드는 자서전에서 자기가 워낙에 성격이 느긋한 편이라 상처를 크게 받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그가 쓴 여러 권의 책들은 단 한 권 만을 제외하고는 계속적으로 엄청난 비판과 실패를 겪는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었으므로 Hume은 귀족의 개인교사로 초빙을 받기도 하고 인생의 후반부에는 프랑스대사관의 대리공사까지도 되어 부를 이룬다. 외면당하던 그의 책들도 나중에는 인정을 받고 그가 그렇게 바라던 부와 명성을 얻는다. 평생 그는 독신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데이비드 흄은 자서전에 초미에 자기가 허풍이나 자랑을 늘어놓지 않겠다고 말한 것과 같이 자기 자랑도 없고 Sacks교수의 자서전과 달리 지나치게 누구누구에게 감사한다는 식의 언급도 없다.
흄의 자서전을 정말 읽어보면 명료하고 간단하고 지나치게 묘사함이 없다.
자기의 삶 중에 발생한 사건 events들에 대한 일단의 사실들 facts과 자기 생각들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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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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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Oliver Sacks교수는 성공한 삶을 산 사람의 전형이다. 고학력과 평생 고소득을 이루고 살았다.
영국에서 신경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거의 평생 결혼하지 않고 그러므로 누구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자기만의 삶을 즐겼다.
문학적 재주도 뛰어나 뉴욕타임스지 등에 많은 칼럼을 제공하기도 하고 책도 저술하며 여러 상도 받게 된다.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회적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서였는지 죽기 직전 최후의 순간에야 커밍아웃 coming out을 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처세술로 세상을 살았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기가 얼마나 인생을 즐기고 영위하며 살았는지에 대해 회고하며 세상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을 늘리기 위한 여행을 더 많이 가보고 싶고 친구관계도 더 깊이 하고 싶다는 희망을 마지막 순간까지도 말한다.
그는 가까운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뉴욕의 자택에서 생을 마감한다.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 친구들이 있다는 게.
2. 문학에 빠졌던 데이비드 흄은 삭스 교수와는 상당히 반대되는 즉 관습적인 삶보다는 자기가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대학교수들로부터는 배울 것이 없다며 성공의 디딤돌인 대학교육을 포기하고 자기 스스로 10여 년간 미칠 정도로 많은 책을 읽으며 독학을 한다.
Hume흄은 50대에 들어서 자기가 지은 책들도 느지막이 인정을 받아 잘 팔리고 돈도 많이 모았다고 하지만 인정받기 전까지 얼마나 주위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비난을 받고 욕을 먹었던지 자서전에 그것에 대해 여러 번을 언급을 한다. 삶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세상이 디자인되었다는 유신론에 동의하기가 힘들었는데 그런 그의 의견 때문에 나중에 에든버러대학이나 글레스고우 대학에 학장으로 지원을 하지만 임명을 받지 못한다.
<<’ 죽음의 부정‘으로 퓰리쳐상을 받았지만 무신론적 의견을 견지한 죄로 남가주의 미국대학교수에서 쫓겨나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Simon Fraser Universty에서 암으로 죽을 때까지 교수직을 이어간 어니스트 베커 Ernest Becker도 그랬다.
쇼펜하우어와 스피노자를 좋아했고 자기의 유명한 저서‘What is life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물리학자에서 생물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DNA를 Watson박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입자의 파동설을 주장한 그리고 ‘슈레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양자역학의 아버지 슈레딩거도 영국의 철학자 버틀란트 러셀처럼 우파니샤드철학을 말하다가 기독교를 중시하는 미국의 대학에서 쫓겨나 아일랜드 더블린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한다.>>
평생을 자기 의견에 반대하고 비난하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못이 박히도록 callous욕을 먹었던지 흄은 자서전의 끝말에 비유적으로 자기는 성격이 워낙에 무딘 사람이라 그나마 참을 수 있었다고 재차 언급을 하며 자기가 평생 받은 모욕과 고통에 대해 반어적으로 말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비난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3. 흄은 나중에 주변의 천거로 규모가 매우 큰 도서관장으로 임명이 되는데 300여 년 전에 이미 유럽에는 조선이나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 할 많은 책을 소장한 도서관이 있었다니 놀랍다.
오래전부터 선도적으로 지식으로 쌓아 올린 유럽인들의 힘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