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시골길 3시간을 걸어서

by 이종구Burnaby South

Marimegmeg비치에서 Lio비치까지 걸어서(팔라완 섬)

IMG_4094.HEIC 이 친구는 와이프가 옷을 사는 사이에 옷가게 앞 계단에 앉아 잠시 쉬는 사이 마치 내가 주인인 것처럼 내 앞에 걸어와 앉았다. 여기는 개들도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은 자유영혼이다.

2026.02.27


오늘 필라완의 Marimegmeg비치에서 리오비치까지 걸었다.

거리가 11킬로미터 시간은 2시간 30분이 걸린다고 구글맵이 알려주었다.


딸부부, 사돈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 6명이 함께하는 필리핀 여행이 막바지에 달하고 있다. 내일모레면 2주간의 필리핀 방문을 마치게 된다.


스노클링과 카야킹을 포함한 바다 당일투어를 마치고 Marimegmeg비치에서 상당히 늦은 점심을 먹고 난 3시가 넘은 시점이었지만 나는 걷고 싶어 오늘 하루 우리를 인도했던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안전하고 가능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혼자 걸으려 했지만 처음에는 말리던 와이프가 마지막 순간 같이 걷겠다고 해서 둘이 걷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혼자 걷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다.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명상도 하고 이어폰을 끼고 음악도 듣고 책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식당 뒤로 걸어 나가니 조그만 상점들이 이어졌고 맥도널드가 길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턴을 하면 우리가 묶는 Huni호텔로 향하게 된다.

마닐라에는 오토바이가 별로 보이지 않았지만 시골인 이곳 팔라완에는 상황이 달랐고 교통수단은 오토바이가 주였다. 매연이 엄청나서 몇 년 전 여행했던 호찌민시(옛 사이공)와 다를 게 없었다.


가난한 시골길가엔 허름한 건물과 집들이 이어져 있었고 옷가게 구멍가게등 많은 소매점들이 줄이어 나타나곤 했다.

당연히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있지 않아 걷기에 불편했다. 마을에서는 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고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는 젊은이와 어린이들이 더 많이 보였다.


한참을 걷다가 동네 시장통이 보여 들어가 보니 상점들이 많이 있었다. 사과 마니아인 나는 여기에서 사과 3개를 100페소(약 2500원)를 주고 샀다. 맛은 강렬하지 않지만 나쁘지 않았다.


중간크기의 사과였는데 걸어오면서 세 개를 다 먹었다. 바다에서 관광을 하니 조리 샌들을 신고 있었던 나는 운동화를 신고 있지 않아서 걷기에 조금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았다.


다만 오른쪽 엄지발가락과 두 번째 발가락 사이가 미찰로 통증이 생겨 힘들다. 조리 샌들을 신고 세 시간을 걸어보긴 처음이다. 오토바이에서 나오는 매연으로 숨쉬기가 불편했다.


***보너스 스토리***

1.회사에서 동경출장을 갔을 때 숙소에서 동경타워를 구경하러 간 적이 있었다.

함께 간 동료들은 직선거리로는 그리 멀지 않은 타워까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야 했다.


달리기를 좋아했고 동경시내를 느리게 구경하고 싶었던 나는 동경타워를 향해 기억에 30-40분을 달려서 갔다.

내가 먼저 목적지에 도착해서 동료들을 맞이했다.


2. 멕시코 몬테레이는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고 멕시코의 양대 마약카르텔이 지배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한 번은 담당 중역들과 여기를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기억에 수십 층으로 아마도 Monterrey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호텔에 묵었고 여기서도 조깅을 해서 부자들이 어마어마하게 큰 집을 짓고 몰려사는 산 언덕 위의 마을로 조깅을 나간 적이 있었다.

재미난 건 집의 담장높이가 아마도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고 교도소만큼 높았고 집들마다 정문옆에 경비 초소가 있었다.


거리의 상점주인들은 조깅을 하는 나를 보며 한결같이 안녕하면서 인사를 해주고 얼굴도 모르는 이방인을 다정하게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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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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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을 하면서 필리핀 시골사람들은 정말 스스로가 가난하다 생각하면서 불행할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내가 불행하고 내가 가난하다고 하는 생각은 절대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잘 웃었고 편안해 보였다.


기독교는 한때 부유함과 부자를 죄악시한 적도 있었다. 캘빈이 그에 반대하고 반박이론을 제공하고 교회가 이를 수용하게 되면서 부자는 죄에서 벗어난다.


2. 이곳의 개들은 철저히 자유롭다. 해변가 비치에 있는 식당이던 산악지대 관광지 식당이던 개들은 자유로이 돌아다녔고 손님이 밥 먹는 식탁밑으로 들어와 먹을 것을 달라고 요구했다. 산악지방 시골길에는 개들이 도로에서 누워서 자거나 돌아다녔다. 묶여있는 개는 보름동안 딱 한 마리를 보았다. 개도 이렇게 자유로운데 사람들은 타의던 자의던 왜 묶여 있을까? 생각했다.




****내 질문과 재미나이의 답변 ****


질문 ;기독교는 왜 부자를 죄악시했나요

캘빈은 왜 그에 반대했나요


답변 ;전통적인 기독교 관점과 칼뱅(Jean Calvin)의 사상은 '부(富)'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큰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중세까지의 기독교가 부를 경계했던 이유와 칼뱅이 이를 어떻게 뒤집었는지 정리해 드립니다.


1. 전통적 기독교가 부를 경계한 이유

초기 및 중세 기독교가 부를 부정적으로, 혹은 위험하게 여긴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신학적·윤리적 배경이 있습니다.

• 성경적 경고: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우니라" 마태복음 19:24})와 같은 구절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부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우선시하게 만드는 '우상숭배'의 위험이 크다고 보았습니다.

• 금욕주의적 전통: 초기 교회와 수도원 전통에서는 현세의 쾌락을 멀리하고 영적인 삶에 집중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습니다. 축재(재산을 쌓는 것)는 탐욕의 결과로 간주되었습니다.

• 경제관의 차이: 중세는 '제로섬(Zero-sum)' 사회였습니다. 한 사람이 부를 독점하면 다른 누군가는 가난해진다는 인식이 강했기에, 과도한 이익 취득(고리대금 등)을 공동체의 사랑을 해치는 죄로 보았습니다.


2. 칼뱅의 반론과 관점의 전환

종교개혁가 칼뱅은 부 자체가 죄가 아니라, **'부의 사용 방식과 마음가짐'**이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의 사상은 현대 자본주의 윤리의 기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직업 소명설 (The Calling)

칼뱅은 성직자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직업이 하나님께 받은 '성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직업에서 성실히 일해 이윤을 남기는 것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과정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부는 하나님의 축복이자 은총

그는 부를 무조건적인 악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당한 노동과 정직한 거래를 통해 얻은 부는 **하나님의 은복(Blessing)**이며, 이를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청지기' 정신과 절제

칼뱅이 부를 긍정한 조건은 '방탕함'이 아닙니다.

• 청지기 의식: 재산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인간은 잠시 맡아 관리하는 관리자(청지기) 일뿐입니다.

• 금욕적 생활: 돈을 버는 것은 허용하되, 그 돈을 사치와 향락에 쓰는 것은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번 돈을 다시 사업에 투자하거나 구제에 사용하는 '세속적 금욕주의'를 강조했습니다.

이자 수용

당시 교회법은 이자 수취를 엄격히 금지했으나, 칼뱅은 상업적인 목적의 대출에서 적정한 이자를 받는 것을 현실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이는 상공업자들에게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획기적인 변화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칼뱅은 부를 '죄'의 영역에서 '책임'의 영역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덕분에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이 신앙적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게 된 것이죠.





50d045c8-91d0-4258-a3f4-81eb9e9e9857.jpg 일행이 점심을 먹은 커피숍 식당. 주인여자가 마닐라에 살다가 이곳으로 와서 정착했다. 첫날 젊은 남자 가이드도 마닐라에서 이곳 시골로 두 달 전에 여자친구와 어린 딸을 데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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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을 해안가 도로를 걸으며 만난 시골 버스. 팔라완은 저렴한 비용의 관광을 즐기는 주로 젊은 서양인 관광객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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