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여행 중 만난 잊지 못할 두 남자

by 이종구Burnaby South

오늘(2024.10.14) 뉴스를 보니 DNA검사로 500년 만에 콜럼버스가 유대계 스페인사람이라는 것이 확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헨리왕자와 바톨로뮤등과 함께 대발견/대항해시대를 연 탐험가 콜럼버스를 자랑스러운 선조로 여기는 스페인 사람들은 콜럼버스를 이탈리아사람들이 자기 나라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인 적이 한 번도 없다.


Barcelona바르셀로나에 가보면 그걸 알게 된다.


스페인여행 중 만난 잊지 못할 두 남자 2019.01.07

참조:Wikipedia 외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아이들과 함께 가족여행 중 2018.12.22~2019.01.06 나는 시공간(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두 남자를 만나고 돌아오게 되었다.


한 사람은 모험가이자 항해가인 콜럼버스(1450-1506 56세 스페인명:크리스토발 콜론)이고 다른 한 사람은 건축가이자 카탈루니아 모더니즘의 선구자인 안토니 가우디(1852-1926)였다.


1. 바르셀로나는 부산이나 동경과 같이 바다와 항구를 끼고 있는 도시인데 바르셀로나 해변가에는 60미터 모뉴먼트 꼭대기에 올려져 있는 콜럼버스의 동상이 바다를 향해 손을 가리키며 서있다. 콜럼버스와 가우디 두 사람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콜럼버스는 남성호르몬이 넘쳐나는 공격적이고 모험적인 항해가였고 다른 한 사람인 가우디는 섬세하지만 대담한 자신만의 장르를 연 건축가이자 예술가였다.


신대륙에 상륙한 칼럼부스는 현지에 fort(요새)를 지어서 스페인에서 함께 간 부하선원 중 38명을 현지에 내려놓고 자신은 일단의 현지 원주민을 포로로 잡아서 스페인으로 데리고 와서 이사벨라 여왕에게 보여주며 자기가 한 항해결과에 대해 시위를 한다.


콜럼버스가 다시 아메리카를 찾았을 때 fort(요새)에 있던 38명의 부하들이 죽거나 실종된 것을 알게 되자 격분한 칼럼부스는 14세 이상의 수없이 많은 현지인들에게 많은 양의 금을 가지고 오라며 불가능한 임무를 주고, 그 벌로 팔을 잘라 피를 흘리게 하여 죽게 하는 등 잔혹하게 학살을 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사벨라 여왕은 분노하여 다른 식민지 책임자를 현지에 보내 칼럼부스를 체포하여 스페인으로 압송을 하게 된다.

스페인으로 잡혀온 칼럼부스는 스페인에 많은 힘 있는 친구들 덕분에 감옥살이는 면하지만 그 후로 힘을 쓰지 못하고 아직은 젊은 나이인 56세에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다.


2. 가우디는 조금은 소심한 부끄럼을 타는 성격으로 주변사람들로부터 거만하고 접근하기 힘든 사람이라고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가우디가 친절하고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가우디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73세에 아침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다가 대중교통수단인 트램 tram에 치어 죽게 된다. 가우디가 좋아했던 여성이 한 명 있었으나 서로 만나는 교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가우디는 직선디자인을 기피하고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곡선디자인으로 가난한 자를 위한 성당인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sagrida familia(9년 전인 2010년에 봉헌됨, sagrida familia=holy family신성한 가족)


조셉, 성모마리아, 예수로 구성된, 가우디가 지은 성당(Sagrida familia; 요셉, 마리아, 예수로 구성된 가족)의 한 기둥에 Josep이라고 글이 새겨져 있었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건축 중 성당 한편 방에서 살면서 죽을 때까지 짓다가 완성을 보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는 성당의 건축 책임자로 지정되자마자 전임 책임건축가가 설계한 도면을 폐기하고 지금의 모습의 성당으로 짓기 시작하게 되는데 독신이었던 그는 설계도면이 없이 성당 구석방에서 살면서 자기 머릿속의 교회모습에 대한 생각을 건물을 짓는 사람에게 간물을 지어가면서 직접 매 순간 매일 지시하며 지었다고 한다. 가우디는 평생에 도면이나 생각을 글이나 그림으로 옮긴 기록이나 글을 거의 남긴 것이 없다.


73세의 노구인 허름한 옷차림의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거리를 운행하던 tram버스에 치여 의식을 잃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의 허름한 차림을 보고 거지인 줄 알고 빨리 병원에 옮기지 않아 치료기회를 놓치게 되어 그는 결국 병원에서 죽게 된다. 평생독신의 외로웠던 가우디는 평생의 후원자이자 절친인 구엘 Guell 등의 친구들에게 의지하고 서로 돕는다.


가우디가 나이 60여 세 정도에 자기의 가장 큰 고객이자 친구였던 구엘 Guell(가우디는 부유한 절친 구엘의 요청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외곽에 구엘공원을 만들어준다. 귀여운 버섯머리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화영화 개구쟁이스머프는 아마도 이 구엘공원에서 따온듯하다.


구엘이 죽고 가까운 친구들이 죽어가고 외로워지게 되자 가우디는 슬퍼하며 목숨을 다할 때까지 성당건축에만 전념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사그리다 성당은 100여 년 전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건축비용의 전체를 헌금으로 지었고 앞으로도 헌금으로만 비용을 충당하여지을 것이라고 한다.


현지인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가우디가 죽은 1926년 이후 100주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성당은 18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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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은 다 죽고 나는 더 이상 고객도 없다. 재산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이제 나는 교회(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축)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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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가 친구들을 모두 잃고 말한 윗글은 위대한 건축가의, 그러나 결국은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읽을 수 있다.


'Maestro, you are the Dante of architecture, ' said Monsignor Ragonesi, the Papal Nuncio in 1915. 'Your magnificent work is a Christian poem carved in stone.'


1915년 당시교황은 바르셀로나의 가우디성당을 찾아 이렇게 말한다.

“가우디 그대는 건축의 단테입니다. 당신의 훌륭한 건축은 바로 돌에 새겨진 기독교의 시입니다”


나도 성당을 지은 석공들의 피와 땀이 어린 매우 정교한 가우디성당의 조각상들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너스 스토리


3. 스페인 남부의 무슬림에게 수백 년간 점령당했던 영토인 그라나다에 있던 마지막 이슬람왕을 전쟁을 통해 물리쳐 항복을 받아내고 우리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스페인의 그라나다 Granada에서 아프리카의 모로코로 쫓아낸 스페인의 현명하고 외모도 매우 아름답기까지 했던 이사벨라여왕은,


이슬람양식으로 지어진 알람브라궁전을 부수고 가톨릭방식의 건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신하들을 향해 그 왕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번 가서 보고나 말하라며 설득하여 무슬림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궁전을 보전시킨다.


<알람브라궁전이 여타 유럽의 궁전과 외양과 내부구조가 매우 다른 모습인걸 거기에 가본 사람들은 차이를 금방 느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에는 수도 없이 많은 관광객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와 지역경제는 물론 스페인의 살림살이에도 도움을 준다고 하니 이를 배울 필요가 있다.

관광객수 2023 기준 프랑스;1억 명 스페인 8200만 명 미국 6600만 이탈리아 5700만 일본 3200만 한국 1750만


스페인은 1억 명인 프랑스에 이어 연간 관광객이 8,200만 명에 이르는 세계최대의 관광대국이다. 일본에는 3200만 명 온다. 한국은 1700만 명이 방문한다.


많은 관광객 중에 또는 스페인사람 중에 무슬림의 잔재인 알람브라궁전을 없애지 못했다고 이사벨라 여왕을 욕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스페인영토의 상당 부분이 수백 년을 이슬람에 점령을 당하고 산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궁전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칭송하고 보전을 명한 이사벨라여왕이 아니었더라면 궁전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폐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반대의 경우가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지금은 이슬람 사원이 된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 지어진 소피아대성당이다.


Side story:

내가 은퇴하기 전 일했던 Volkswagen Canada 동료직원 중에 남미에서 온 산체스라는 친구가 있었다. 나보다 5년 이래였지만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고 journalist 즉 신문사 기자출신이었는데 갱단의 위협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망명을 했다고 했다.


수백 년간 스페인의 식민지가 된 그래서 스페인말이 국어가 된 그 친구에게 스페인의 식민지배에 대해 중남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스페인에 대한 반감이 있거나 미워하나? 물어보니 무슨 소리하나? 는 식으로 웃으면서 그런 거 모른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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