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베트남여행에서 느낀 점

by 이종구Burnaby South

중국과 베트남여행에서 느낀 점 2019.10.13

1. 거의 20년 만에 다시 방문한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루어낸 실질적으로 자본주의화한 중국을 보면서 한마디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전 상해 베이징 장춘 광조우등을 출장 다닐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이 나라의 대국으로서의 규모에 대해 이번에는 몇 개의 큰 도시를 거리와 골목길을 걸으며, 말도 안 되는 13억 인구의 중국인들을 몸으로 부딪히며 실감을 하게 된다.

2. 베트남은 처음이었지만 호찌민시(구 사이공시 Saigon)에서 본 활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경제활성화에 애쓰고 노력하는 베트남의 에너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생각이 정체되고 몸과 마음을 바쳐 노력하지 않으면 국가 간 경쟁에서 도태되고 무시당하고 소멸된다라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들었던 여행이었다.


목차

1. 베트남 여행에서 느낀 점

2. 중국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

3. 결국 돈이 문제다. money matters


베트남여행에서 느낀 점 2019.10.11

1. 우리가 베트남에 머문 시간은 4일간으로 짧았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젊지 않은 우리 부부는 힘 있고 젊은 자식들과 여행을 하게 되니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젊은이의 시점에서 보게 되고 움직이게 된다. 특히나 늦은 밤 또는 자정이 넘어 까지 술집이나 accoustic bar나 젊은이들의 거리를 구경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나도 따라 젊어지고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박자도 맞추고 몸을 흔들기도 하니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2. 베트남은 내게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유튜브 등을 통해 여러 나라를 이미 많이 보아 왔으므로 단지 접촉이 없었을 뿐 사실상 visual측면으로는 새로울 것도 없다. 탄손나트공항(호찌민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매우 더웠다. 옛날 김포공항이 생각났다. 베트남은 50년 전인 1969년 사이공이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콩 viet cong에 의해 함락된 이후로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이다. 나는 이전에 전체주의국가, 공산국가를 방문한 적이 없으므로 공산주의 국가의 외형과 분위기를 잘 모른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오래전 아들이 초등생 저학년 때 수박 겉할기식인 북한의 금강산을 가족이 함께 가본 적이 있을 뿐이다.

3. 북베트남 즉 베트남 공산주의의 원조인 하노이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사이공(현 호찌민 city)을 4일간 머물고 구경하고 아들과 내가 오토바이 2대를 렌트해서 와이프와 딸을 뒤에 태워 종일 오토바이를 타고 관광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녀 보고 애들이 인터넷에서 검색한 맛집에도 여러 곳 가보고 공원도 가보고 택시도 타보고 동남아시아판 우버인 Grab택시, Grab오토바이도 타보고 돌아다녀 보고 나서 느낀 점은, 여기는 이제 전체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니고 여기는 잔혹한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최상위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보다도 훨씬 더 자본주의 국가스러운, 단지 우아한 자본주의적 절차 procedure를 아직 갖추지 못했을 뿐 , 길거리 시장경제에 의해 지배받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중국과 베트남에 와서 "칼막스는 완전히 죽었다 Karl Marx is completely dead"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현 자연계에서 실현가능하지 못한 운명을 가졌던 이론상 가솔린엔진보다 열효율이 훨씬 더 높았지만 실질적인 냉각이 불가능해서 실패한 운명을 가졌던 로터리엔진(rotary engine/Vankell engine)을 개발한 독일의 과학자이자 엔지니어였던 반켈과 같은 단지 천재, 사상가, 결과적으로 몽상가 genius, thinker, dreamer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현상의 본질을 바꿀 수 없어서 실패한 로터리 엔진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물질추구본능과 보다 나은 행복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성 nature을 거스름 으르서 성공하지 못한 이상주의 idealogy를 내 눈으로 보았다.

3. 베트남의 전쟁박물관은 생각보다 작았고 초라했다. 자료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고 베트콩의 전승에 대한 커다란 추켜세움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미군과 한국군의 양민학살도 우회적으로 부드럽게 이렇게 표현을 했다."미군과 한국군은 nice했다. 다만 전쟁의 특정한 스트레스하에서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호찌민시에 호찌민은 없었고 옛날 이름인 사이공만이 있었다. 외세로부터 남 베트남을 해방시킨 영웅 호찌민의 얼굴은 베트남 지폐에만 남아 있는 듯하다. 자기들을 해방시켜 준 영웅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거리의 모든 음식점등 거의 모든 간판 상호들이 옛 사이공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공식명칭이 호찌민인 국제공항에도 옛날 명칭인 탄손낙이라는 명패가 더 눈에 띄었다.

4. 치자면 돈 때문에 미국의 용병으로 월남에 파병된, 있다면 나의 10여 년 연상의 큰 형님 벌 때쯤 되는 청룡부대, 백마부대전투병 한국군 5,000여 명이 전사하고 미군 수만 명이 전투 중 월맹군의 총탄, 포탄 그리고 부비트랩 bubby trap 등으로 목숨을 잃고 북베트남군과 민간인등 전체 4백만 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한 약 10년 동안의 베트남전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글 중에 미국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No man is good enough to be another man's master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지 않다"이는 어느 인종도 다른 인종에 우월할 수 없고 아무리 더 교육받은 사람도 못 배웠다고 해서 남을 무시해서도 안되고 돈이 아무리 많고 지위가 높아도 돈이 없고 지위가 낮은 사람을 낮이 봐서는 안된다고 확대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웃나라 다른 나라의 재물과 이권을 빼앗으려는 참혹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모든 전쟁은 약탈이고 죄악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생각났다.

4. 중국에도 오토바이가 많았지만 베트남에는 그보다 10배는 더 많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노이에는 오토바이가 2백만 대가 도로를 메운다고 하니 규모가 더 큰 도시인 사이공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베트남에는 중국과 달리 지하철이 없었고 대중교통도 발달하지 못한 듯했다. 거의 모든 개인 운송이 오토바이로 이루어지는 듯하게 보였다. 아들과 나는 오토바이를 빌려서 딸과 아내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3일간을 오토바이로 바글바글한 관광지와 시내를 돌아다녔다. 왕년에 나도 한 오토바이를 하던 사람이었지만 몇십 년 만에 다시 타보는지라 감각회복이 더뎠고 오토바이가 사방팔방에서 나타나고 교차하고 cut off를 당하거나 내가 그리 하면서 다녀야 하는 사이공시내는 며칠을 full time으로 오토바이를 타도 쉽사리 적응이 되지 않았다. 수백 대의 오토바이가 돌면서 교차하는 로터리를 통과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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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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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트남은 정말 습하고 더웠다. 어떤 때는 불쾌지수가 너무 높아서 고문의 고통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2. 베트남에는 오토바이가 많았다. 교통신호등이 시내에 없는 곳이 더 많은 것 같이 보였고 로터리가 많아서 오토바이로 가로지르거나 통과하기가 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어려웠다. 겉보기에 무질서해보이는 오토바이들은 실제로는 매우 질서가 있게 양보하고 달린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4일을 시내와 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리고 또는 거리를 걸으면서 교통사고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외견상의 무질서안에서 완벽한 질서를 보았다. 오토바이끼리 서로 추월하고 진행하고 양보하는 묵시적 신호가 있음을 배웠다. 오토바이들이 절대 과속하거나 무리하게 빨리 달리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던 이동을 해야 하므로 치마를 입은 여자들도 모두 오토바이를 몰고 다닌다. 오토바이운전자의 절반은 여자인 것 같았다.

3. 월남 사람들은 일상에서 행복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얼굴에서도 화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직은 가난하지만 서로 아귀다툼하지 않고 삶을 살아내는 듯한 live out 어찌 보면 느긋하고 달관한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매일 어데를 갈 때마다 slow 하게 오토바이로 남녀노소가 바람을 가르며 joy ride를 즐길 수 있는 것도 그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보편적으로 가난하니 부가 편중된 부자 나라의 사람들처럼 가진 자를 질시하거나 미워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부자와 낙타바늘구멍을 비유한 글 구절이 생각났다.

4. 상가의 물품가격은 정가제가 없다. 자본주의의 물결을 받아들이는 아직은 초기 단계이므로 과거의 우리 인류의 조상들의 물물교환 bartering과 같이 흥정을 해야 한다. 과거 동대문 남대문시장에서 우리의 부모들이 하던 거래와 흥정을 여기서 다시 볼 수 있어 재미있기도 했지만 시간을 많이 소비해야 하므로 서로가 시간, 에너지소모적이고 피곤했다.

5. 생활비가 중국에 비해서 훨씬 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Grab택시가 한국이나 캐나다 택시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고 아들이 말을 한다. 시내에서 공항까지 grab(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의 우버택시)을 30분 가까이 타고 낸 택시비가 한국돈으로 백오십 원 150원이었다고 한다.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6. 강압으로 이루어진 공산 베트남의 통일은 과거 수십 년간 베트남의 발전을 막아왔음이 분명해 보인다. 과거 중국공산당의 주석이었던 등소평의 검은 고양이 한고양이 정책과 같이 도이모이정책을 표방하고 자본주의의 돈을 끌어들인 결과 베트남은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베트남사람들을 존경한다. 왜냐하면 그네들은 굴복을 할 줄 모르는 위대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처럼 베트남왕국도 외세의 침범을 많이 받아왔고 근래에 와서는 강력한 제국주의 프랑스의 침략 미국의 침략을 물리친 저력이 있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살아 있으면 모든 것이 살아 있는 것과 같다.

7. 독립한 나라는 언젠가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우게 되었다. 노예나 노예상태의 국가와 달리 독립된 국가는 언제든지 노력하면 다시 쌓아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에 중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느꼈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노예가 되거나 구속되지 않은 개인이나 국가는 누구나 어느 나라던지 노력하면 자기만의, 자기들만을 위한 기회가 주어지고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베트남이 역동적이고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진하게 받았다. 작년 겨울 연말의 포르투갈 스페인여행에서 받았던 노쇄하고 정체된 나라의 느낌과 매우 달랐다.

8. 베트남도 옛날에는 중국의 한자를 사용했었다. 100년 전쯤 어느 서양인이 표음문자인 영문자를 표기어로 제안했고 월남의 왕이 이를 받아들였고 대한민국이 그랬던 것처럼 한자는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베트남의 '남'은 한자의 남쪽 남이고 한국의 남대문의 남과 같이 발음을 한다.



중국여행에서 느낀 점 2019.10.8

1. 일주일정도 머물면서 한 나라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인상 impression을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강산이 거의 두 번 정도 바뀔만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찾은 중국은 예전에 내가 주로 회사업무 출장목적으로 찾았던 중국과는 매우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시에는 관광은 거의 할 수가 없었고 그러므로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사용해 볼 수가 없었고 100% 회사 업무용 차량으로 이동을 했었으므로 길을 걸으며 또는 식당등에서 보통의 중국인들과 스치거나 마주할 시간이 없었다.

2. 이번에 상하이에 머물면서 인근도시인 수조우와 항조우를 쾌속기차를 타고 다녀왔다. 과거 일본여행에서 느꼈던 정시출발을 이곳 기차도 정시에 출발을 했다. 문명도시, 문명인의 첫걸음인 punctuality, trust가 공공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3. 상해에서 머무는 일주일 동안 주로 딸이 장기간 업무출장으로 머무는 호텔과 다운타운 직장의 반경 20~30분 정도의 공간만을 주로 구경하고 돌아다녔으므로 고층빌딩이 매우 많고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도 세련된 모습이었다. 내가 대한민국을 떠난 지가 매우 오래되었으므로 서울등 대도시의 느낌은 과거에 머물러 있고 기억도 거의 사라졌으므로 한국의 현재의 대도시의 모습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중국의 그것들과 비교할 수가 없게 되었다.

4. 도시는 인산인해의 사람들로 넘쳐났고 도심과 지하철 구내에서는 길을 걷기가 힘들었다. 나는 이제 캐나다의 적은 인구밀도의 공간에 익숙해져 있으므로 수많은 사람들과 공기가 깨끗하지 않은 상해의 분위기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5. 지하철역 구내에 입장하면 공항에서와 같이 엑스레이 투시기로 짐검사를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도심 곳곳이나 유명 관광지에는 공안(경찰)과 무장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6. 상해의 수돗물은 그냥 먹을 수가 없었고 세탁이나 설거지를 할 경우에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묵던 호텔에서 나오는 수돗물에서 냄새가 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쥬디도 동의를 했다.

7. 상해에 머무는 동안 이동을 하기 위해 우리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했고 택시는 두세 번, 그리고 중국판 우버인 '디디'를 많이 타게 되었다. 디디는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의 택시에 비해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캐나다 택시에 비해서도 절반이상 저렴해 보였다.

8. 인터넷은 구글과 유튜브가 막혀 있어서 사용이 불편했다. 다행히 노트북컴퓨터에 미리 다운로드하여간 VPN으로 호텔에서 이메일과 유튜브를 볼 수가 있었다.

9. 올해가 중국건국 70주년이라 축하분위기가 많이 느껴졌다. 어디를 가도 축하 베너와 오성홍기가 걸려 있었다. 지하철에 붙어있는'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슬로건의 제일 앞에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부강''wealthy and powerful'이라는 단어였다. 이어서 민주 democracy, 문명 civilization, 자유, liberty, 평등 equality, 공정 fairness, 법치 ruled by the law, 애국 patriotism이라는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는 마치 내가 초, 중고교시절 암송했던 박정희 정부주도의 슬로건이었던 '국민교육헌장'을 떠올리게 했다.

10. 서양에 커피가 있다면 중국에는 티 tea가 있었다. 이 tea는 영국인들이 마시는 홍차 tea가 아니고 다양한 종류의 버블티 bubble tea 등 쉽게 말하면 여러 가지 과일이나 떡등이 재료가 될 수 있는 음료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밴쿠버에 사는 중국인들도 많이 즐겨서 먹는다. 'Heytea' 고가의 고급브랜드 티 체인점이고 'Coco'는 그보다 조금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체인점을 전국에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Heytea는 주문 후 한시 간이상을 기다려야 먹을 수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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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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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억 개의 영혼과 생각을 가진 거대국가 그리고 큰 영토를 쉽게 분류하는 것은 그냥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불가능하다. 그런 나라를 이끌고 다스리는 것은 인구 3600만 명의 캐나다, 그리고 인구 5100만 명의 한국과는 비교가 되질 않을 것이다. 중국이 중국방식으로 살겠다는 말을 여기 와서 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전향적인 생각도 들었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던 좋은 곳, 행복한 곳으로 가는 것이 좋은 길이고 좋은 방법이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2. 중국의 리더인 시진핑은 중국해안 연안의 베이징, 상해, 청도 등 공장이 많고 무역도 활발한 그래서 부유한 바닷가 도시인민보다 많이 가난한 내륙지방의 인민들의 웰빙 well being에 고민이 많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상해는 대한민국 못지않은 국민소득으로 어떠면 더 잘 살지도 모른다. 실제로 도심의 상해는 너무도 서구적인 모습이었다. 뉴욕보다도 더 번화한 느낌조차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해에 살고 있는, 중국상해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아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중국 상해도 고층빌딩 공실률이 매우 높아져서 사상최고라고 한다. 경기가 전보다 많이 안 좋다고 말한다.

3.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4발의 AK소총탄을 맞은 석선장을 살려낸 이국종교수가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사고로 크게 다친 한국인 사업가를 에어 앰뷸런스로 데려오면서 중국변방에 있는 병원에 함께 간 상해 부영사의 말처럼 "중국은 지나간 10여 년간 급속히 부강해져서 예전에 상대하던 중국이 더 이상 아니다"라는 말이 고개가 끄떡여 질만큼 중국은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을 인구는 차치하더라도 자기들보다 앞선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과 한국인을 대하는 자세가 그만큼 거만해졌다는 얘기다. 얼마 전 자국을 방문한 한국의 대통령을 대놓고 박대하고 미국에 대항하는 시주석은 그것을 무언으로 대변한다.

4. 근대 산업화에 실패해 서구에 짓밟힌 경험이 있는 중국은 이제 IT기술만큼에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진하게 들었다. 온라인 쇼핑인 알리바바는 아마존 보다 훨씬 더 많은 아이템을 팔고 있었고 물건값도 매우 싸고, 중국판 우버인 디디는 우버이상으로 사용이 편리하다고 아들이 말했다. 내가 보기에 상해의 지하철 티켓팅등 오퍼레이팅 시스템 등은 서울이나 동경에 비해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다른 도시로 가는 장거리 기차도 다른 선진국처럼 정시출발을 하고 있었고 인민들도 더 이상 초라한 옷차림을 볼 수 없고 직접 대화는 해보지 못했지만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당당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5. 중국이 자기만의 시스템을 고집하듯이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등 서방의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를 차단해 놓아서 나는 불편했다. 모든 것을 사용하되 복제된 시스템을 사용한다. 우버대신 디디, 카카오톡 대신 위챗, 아마존대신 알리바바와 같이 서방의 시스템을 사용하질 않는다. 13억 인구가 가지는 내수의 힘이다. 좋은 시스템은 외국으로부터 도입하되 일단 자기 것으로 만들고 나면 그다음에는 담벼락을 쌓아 자기가 다 먹는 방식으로 자기만의 부를 쌓는 식이다. 과거 엄청난 돈을 중국에 투자하고 팩을 당하고 있는 현대그룹등 한국이나 일본기업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너무나 큰 시장이라는 유혹의 미끼에 이끌려 먹이가 되고 만 것이다. 한국에 비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땅덩어리이므로 갈라파고스(찰스 다윈이 자기의 진화론의 설명을 위해 사용한 태평양에 있는 고립된 섬) 표현이 부적절할지 모르지만 어쩠던 주변에 있는 섬들과는(윈도즈와 호환성이 없는 Mac OS와 같이) 다른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움직이는 거대한 갈라파고스 섬으로 진화해 가는 중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편,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인류의 미래가 마치 우리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거대 중국의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학창 시절 인해전술이라는 말의 '사람의 바다'를 이번에 중국에서 보았다. 그것도 더 이상 과거와 같이 헐벗고 굶주리지 않고 이제는 특급 백화점 고급식당가에 한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의 바다를 보았다.


돈이 문제다 money matters 2019.10.10

1. 오늘은 월남의 호찌민(구 사이공 Saigon)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더운 중국에서 일주일을 지내다 왔지만 베트남은 위도가 중국 최남부지방인 상하이 보다 훨씬 낮아서 더 덥다. 상하이와 같이 습하다. 호찌민공항은 옛날 대한민국의 김포공항처럼 정감이 가는 모습으로 세계적인 공항에 비해서 비교적 작고 아담하다.

2. 공항을 나와 호텔로 향하면서 이곳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올해가 중국공산당 건국 70주년이고 베트남은 미군을 몰아내고 사이공의 마지막 저항선을 돌파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시내는 중국보다도 훨씬 많은 오토바이들이 압도적으로 도로를 누빈다. 우리도 오토바이 두대를 랜트해서 돌아다니고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국가가 국민들에게 뭔가를 억압적으로 그리고 강하게 밀어붙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적어도 길거리에서 바라보는 외견상으로는 그렇다. 단지 정부는 국민들이 어떻게든 더 잘살게 되기를 바라며 도와주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뿐이다.

3. 부 wealth가 왕이나 귀족등 특정 특권계층에 편중되는 것에 분노하고 미워해서 생긴 사상이나 이념도 결국은 사람들이 고루 잘살게 하려는 이론적 바탕인 것을 생각해 보면 공산주의건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삶을 풍족하게 하는 money돈으로 귀결되는 일일 것이다. 굶주리고 고통받는 사람에게 아무리 아름다운 생각이나 사상, 종교 그리고 음악등이 무슨 소용일까?

4.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의 시내 도로가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며 음식을 만들어 파는 젊은 여자와 Grab택시를 몰면서 돈을 벌려고 땀 흘리고 노력하는 중노년의 남성들의 모습에서 삶과 돈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공동생산 공동배분의 공산주의 이념을 받들어 어느 누구도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서 남에게 나누어 주려고 일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자기를 위해서 자기 가족을 위해 땀을 흘린다. 왜냐하면 내가 우선이고 각각의 개인에게 행복의 기초적인 요건인 돈은 삶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money mat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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