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는 건 공부가 아닌 걸까?
영어 IELTS 공부를 시작했다.
웹 개발자로 일하면서 영어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기술 문서를 읽을 때 90% 이상의 고급 정보들은 모두 영어로 되어있다.
어떤 오류가 발생했을 때, 한글로 검색하면 안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반대로 영어는, 검색되는 정보의 양과 질이 모두 좋다.
게다가 나는 해외에서의 삶을 영위하는 로망을 갖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영어와 가까워져야 한다.
하나 다행인 점은, 내가 과거에 영어를 꽤 좋아했다는 점이다.
잘하진 못했지만 영어가 재미있었고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외국인들과 간단하게나마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마법을 쓴 것처럼 느껴졌다.
고등학생 시절 영어 회화를 잘하는 사람을 보며 동경했다.
한국말로도 저렇게 대화하기 힘들 것 같은데... 싶은 수준의 어휘를 사용하며 외국인과 유창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저렇게 말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 상상하면 그 사람이 더 멋있어 보였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문법 공부는 하기 싫었다.
수능 영어를 풀기 위한 수능식 문법은 자연스러운 영어를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내 머릿속에 담아두고 싶지 않았다.
구, 절, 보어, 동사, 동명사, 부사, 수동태, 능동태... 이런 용어만 들으면 언어를 학문적으로 다가가는 느낌이라 거부감이 심하게 들었다.
문법에 대한 내 생각은 이러했다.
"외국인이랑 대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내가 지금 쓴 단어는 동명사니까 다음 동사에 ing를 붙여야 하고, to부정사를 썼으니 다음 단어는 동사원형이 나와야 하고, 다음 단어는 부사니까 뭐가 들어가야 하고... 영어를 써야 할 때 내 머릿속이 영어 문법을 준수하느라 버벅거리고 문법이 틀릴까 봐 말도 못 트는 상황만은 절대 피해야지. 자고로 언어란 자연스럽게 익히는 거지~"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들은 실제 영어 공인 시험을 볼 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문법을 잘 알아서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한국식 수능 영어 문법 교육이 실제 필요한 영어 문법 자체를 공부하는 것을 꺼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나는 무언가를 외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인위적으로 외우는 것은 대부분 단기 기억에만 남아 있기 때문에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 몸으로 자연스레 터득한 것이 큰 노력 없이 장기 기억으로 남는다고 생각하였다. 이게 시간적으로도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외우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외운다는 것은 그 순간 이해를 동반하지 않는다.
내가 존경하는 뇌과학 분야의 권위자 '박문호' 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이해는 하는 것이 아닌, 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해는 오는 것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작가 본인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머릿속에 무질서로 떠다니던 지식 조각들이 한 번에 맞춰지고, 모든 조각들이 순서에 맞게 끼워 맞춰지는 그 순간.
"그 어려운 용어들이 이런 뜻이었어?"
작가는 이런 경험이 사람마다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박문호 님은 이런 현상을 두고 "이해는 오는 것이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추상적인 느낌을 말로 풀어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 본다면 표현력에 경이로움을 느낄 것이다.
이해가 오기 위해선 자연스레 반복해서 접하든, 의식적으로 반복해서 접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연스레 반복적으로 접하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지식들이 있다. 이를테면 문법이나, 수학 공식 같은 것들이다. 외우는 순간에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뇌가 트이고 익숙해진다. 뇌 에너지를 써야만 사용할 수 있던 문법, 수학 공식 같은 것들이 익숙해지게 되면 뇌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익숙하니까.
외우는 것이 필연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지식들을 머리에 강제로 집어넣는 과정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이다 보니 외우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자.
힘들더라도 나에게 지금 필요한 부분이라면 외우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운다는 행위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건,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나에게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들을 맹목적으로 한 번에 외우게 하려는 시도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용" 인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쓴 글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중용을 적절히 지키는 것"이다.
자기가 그만한 힘(실력)이 없으면서도 커다란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만하다.
또 자기의 가치를 실제보다 적게 생각하는 사람은 비굴하다.
- 아리스토텔레스
몸으로 터득하는 것만 추구해서도 안 되고, 머리로 외우는 것으로만 학문을 통달하려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경험과 지식이 같은 레벨에 위치하게 되었을 때 이해가 오는 것이고, 우리의 뇌가 새로운 지식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짧아진다는 것은 다른 지식을 습득할 준비가 그만큼 더 빨리 되었다는 뜻이다. 즉, 하나의 방식만 추구하는 사람보다 두 가지의 적절한 밸런스를 맞추며 공부하는 사람은 더 빨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