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돈

by 징졔

우리의 결혼이 기정사실이 되어갈 때 엄마는 ‘궁합 같은 건 안 볼 거야. 중매도 아니고 연애결혼인데 그런 걸 봐서 뭐 하게’라고 큰소리치셨다. 그런데 정작 결혼날도 잡아야 하고, 결혼식 시간도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는 등, 여자 쪽에서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지자 뭔가 좀 자신이 없어지신 듯했다. 어느 날 할머니와 쑥덕거리시더니 아빠 몰래 어딘가 가서 궁합은 물론이고 심지어 함 들어오는 시간까지 받아오셨다.


엄마가 살짝 방문을 닫고 나에게 속삭이듯 하신 말씀은 ‘너네는 뭐 볼 것도 없이 다 좋단다. 궁합도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그런데 단 하나, 남자가 돈을 벌긴 버는데, 그 돈이 마치 손으로 모래를 쥔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다 빠져나간다고 하더라’였다.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좋다는 말인지 안 좋다는 말인지도 관심이 없었다. ‘엄마는 뭘 그런 걸 물으러 갔어’라고 툴툴거렸을 뿐.


결혼하고 약 반년 정도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가 뭔지 체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분가를 하고 나니 우리는 갑자기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아버님께서 생활비 보조를 해주셨지만, 거의 엥겔 지수 80%가 넘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니 오히려 먹는 즐거움에 집중하게 되고, 출산 후엔 불어난 몸매를 감당하지 못해 한꺼번에 옷을 일곱 벌이나 챙겨 수선집에 맡긴 기억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재미있었고, 가난하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모아둔 돈 한 푼 없이 덜컥 아이를 갖겠다고 계획했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할 정도로 철이 없었다.


신혼 시절 나는 대학 시간강사였지만 박사과정 등록금도 다 내지 않은 학생 신분이었고, 남편은 학생 신분이라 하기도 애매한, 군대도 가지 않은 진로가 불분명한 백수였다. 둘이서 가끔 번역이나 교정, 과외, 기업 강의 등 아르바이트를 해서 경조사비나 책값, 문화비 등을 충당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어른 노릇하느라 감당해야 했던 양가의 경조사비는 또 왜 그렇게 많던지...


한참 학위논문을 쓸 때였는데, 집에서 가까운 지역의 어느 대학에서 교수 초빙 공고를 냈다. 학위 과정을 수료만 해도 지원할 자격이 되었고, 집에서 출퇴근도 가능할 것 같아 지원을 했다. 요행히 면접까지 올라갔는데, 면접관이 물었다. ‘남편은 뭐 하시는 분인지…?’ 교수 채용 면접에 나올 수 없는 너무 뜬금없는 질문이라 어리둥절하며, ‘남편요? 남편…, 학생인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때 그 면접관의 어이없어하는 황당한 표정을 떠올리니 아직도 좀 화가 나려 한다. 교수가 되고자 하는 여자의 남편이 돈도 못 버는 학생이면 안 된다는 건가? 설마 남편의 재력이 아내의 실력이란 말인가? 부모의 학력이 어떻게 되는지, 아빠의 직업이나 직책이 무엇인지, 집에 TV가 있는지, 냉장고가 있는지, 전화가 있는지 조사하던 초등학교 시절의 교실 풍경이 저절로 떠올랐다. 참, 야만의 시대였다.


남편 00 씨가 대학 시간강사를 할 때였는데,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네 살 난 조카(여동생의 아들)가 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는 왜 맨날 회사에 가?’ 당시 제부(여동생의 남편)는 대기업 S사의 기획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아이가 아빠 얼굴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쁜 사람이었다. 여동생은 잠시 고민하다가 ‘응~ 아빠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그럼 왜 이모부는 가정을 안 지켜?’라고 묻더란다. 여기서 이모부는 내 남편 00 씨다. 당황한 내 여동생은 한동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고, 그 말을 전해 들은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지만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당시 00 씨는 시간강사를 하면서 정말 널널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고, 아이가 보기에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눈에 띄는 이모부는 정말 이상한 남자 어른이었던 것이다.


내 남편 00 씨는 원래도 치열하게 싸우며 삶을 사는 유형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가장인 자신이 헌신해야 한다든지, 뭘 해서라도 자기가 꼭 돈을 벌어야 한다든지 하는 생각 자체가 느슨하다. 나 역시 00 씨가 가장이니까 집안에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직장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가장들의 그 터무니없는 당당함과 대의명분 반듯한 찌질함을 00 씨에게서 보는 것은 정말 원치 않는 일이었다.


신혼시절 남편이 외출할 때면 꼭 남편한테 확인하던 말이 ‘돈은 있어?’였다. 결혼을 했으니 이제 어른이고, 밖에 나가면 선배들에게 얻어먹기보다는 후배들 챙겨야 할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남편은 단 한 번도 ‘돈 없는데’라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늘 ‘응, 있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남편 지갑을 열어보게 되었는데 딱 돈 천 원이 들어있었다. ‘아이고, 맙소사…’ 뭐라 대답하나 싶어 짐짓 모르는 체, ‘여보, 돈은 있어?’라고 물어보니, 역시 ‘응, 있어’라는 태평스런 대답이었다. 그때는 신용카드를 쓰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최소한의 현금이 지갑에 있어야 했다. 더구나 남편은 결혼 초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적어도 담배 한 갑 살 정도의 돈은 있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지갑을 몰래 봤다는 말은 차마 하기 어려워 ‘정말 돈 있나 함 체크해 봐’했더니, 남편은 지갑을 쓱 열어보고는 마치 ‘돈 있네’하는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답답해진 내가 ‘얼마나 있는데? 함 봐봐’하면서 지갑을 뺏어 열어보며 ‘천 원밖에 없는데, 이게 있는 거야?’했더니, ‘그럼 없는 건가?’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때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커피 한 잔 마시며 남편 지갑 체크하고 돈 채워 넣는 것이었다. 남편은 오래 눈치도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남편은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자신의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액수가 넘어가면 뒤에 동그라미 하나 더 붙고 덜 붙고 하는 것에도 한없이 관대했다.


사실 나라고 특별히 경제관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나는 소비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기 때문에 돈에 대한 욕망도 크지 않다. 쓰는 재미도, 버는 재미도, 모으는 재미도 잘 모르는 것이다. 무엇보다 주변에 쩨쩨한 것을 몹시 싫어한다. 생색나게 큰돈 쓸 여유는 없어도 나 자신만을 위한 소비보다 때론 주변과 함께 쓰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또 남한테 빚지는 것을 세상 그 무엇보다 싫어한다. 심지어 카드 대금 결제일에 미처 돈이 안 빠져나가고 있으면 안절부절 하루에도 몇 번씩 체크를 하다가 돈이 훌렁 빠져나가고 나면 그제야 마음을 놓는다. 은행 돈을 자기 돈처럼 여기고 써야 한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참 존경스럽다.


통장이 비어 있으면 불안하기는 하지만 통장이 채워져 있다고 딱히 행복하지도 않으니, 돈도 나를 소 닭 보듯 하는 것일까?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문구가 참 무례하게도 불편하게도 느껴졌던 걸 보면 부자 될 가능성은 애당초 없었나 보다.


결혼 후 아빠는 나에게 ‘너나 00 서방이나 100원 벌면 120원 쓰는 사람들이라 참 걱정이다’라고 하셨고, 아버님은 나에게 ‘며늘아가, 너는 늘 남과 나누며 사는 사람이다’라고 하셨다. 두 분 아버지께서 나를, 우리를, 우리의 경제 상태를 이미 예언하고 계셨다.


단지 내가 00 씨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에겐 도토리 저장고가 있다는 것이다. 타고 태어나기를 불필요한 걱정이 많은 나는 무엇이든 늘 내 형편에 맞는 대비를 해놓아야 안심이 되는 사람이다. 돈에 대해서도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용돈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늘 조금씩이라도 아껴 나만의 도토리 저장고를 채워놓아야 마음이 놓였다.


결혼 후 의외의 지출이라도 생길 때면 내 도토리 저장고를 열어 충당했고, 남편은 어디서 그 돈이 생겼는지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남편은 돈이 필요하면 하늘에서 그냥 돈이 뚝 떨어지는 줄 알았을까?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도토리 저장고의 내 도토리들이 남편에게 존재를 들키고 나면 바로 얼마 안 가 모두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 혼자 저장고에 간직할 때는 몇 년이고 잘 있다가도 ‘사실 얼마 정도 모아둔 것이 있는데’라고 남편에게 말하고 나면 바로 얼마 안 가 내 도토리들은 자신의 숙명을 자각이라도 한 듯 바로 사라져 버리고 내 저장고는 텅 비게 된다. 그야말로 손에 쥔 모래처럼 스르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점쟁이 용해도 너무 용했다.)


그렇다고 남편이 그 돈을 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남편은 나보다 훨씬 검소한 사람이고, 답답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남편은 돈이 생기면 지갑 속의 먼지까지 탈탈 털어 나에게 주는 것이 즐거움인 남자다.


남편이 돈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 애달픈 짝사랑이라는 것이다. 돈은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따라오게 해야 한다는데, 그런 리더십은커녕 무조건 졸라대며 쫓아다니기만 하니 그냥 달아나 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평생 크게 인연이 없는 것 같다가도, 또 돈이라는 것이 요물이어서 가끔은 남편을 향해 화사한 미소와 함께 하트를 날릴 때도 있다. 그럴 때 남편의 그 행복한 모습이란… 걸어가는 뒷모습도 신바람에 덩실덩실 춤을 추는 듯 보인다.


내가 남들보다 좀 일찍 퇴직을 하고 집에 들어앉으니 남편도 슬금슬금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얼마 안 가 거의 바깥일을 접었다. 둘 다 돈을 벌지 않으니 생계를 걱정해야 했으나, 그냥 애써 돈 벌려하지 말고, 안 쓰고 좀 궁하게 살더라도 우리 살고 싶은 대로 살자고 의견을 모으는 데 단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때 남편이 꽂힌 것이 주식 투자였다. 집에 모아둔 얼마간의 돈으로 주식 투자를 해서 모자란 생활비를 충당하겠다는 거였다.


남편은 그간 주식 투자하겠다고 많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두 차례나 집에 있는 현금을 몽땅 가져가 반 이상 날려먹은 화려한 전력이 있었다. 도무지 못 미더워하는 나를 남편은 열심히 설득했다. 예전에는 뭘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 말만 듣고 해서 그런 것이고 이젠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잘해보겠다는 것이다.


남편은 취향은 분명하지만, 별로 원하는 것이 없는 남자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요구하지도 않고, 고집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남편이 뭔가 원하는 것 같은 기색이 있으면 난 언제나 먼저 알아서 들어주는 편이다. 그래도 주식투자는… 아무래도 불안했다.


당시 나눈 부부간의 대화는 이렇다.

나 : 근데 당신이 아무리 노력하고 잘해도 우리가 역사에서 보듯이 개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잘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게 있잖아. IMF사태, 전쟁, 대공황 같은 것들.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어 건물 옥상에서 흩뿌려지는 그런 영상 같은 것들 말야.

남편 : 에이 그러면 다 망하는 건데 뭐.

나 : 아니, 다 망한다고 우리도 망해야 되는 건 아니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 앉거나, 하루 세끼 끼니 걱정하며 살아도 되는 거냐구.

남편 : 그런 건 물론 아니지만.


그러나 남편 얼굴엔 정작 걱정이 없다. 남편의 ‘설마 뭐 그런 일이야 생기려구’하는 태평한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당장 내일이라도 금융위기가 터길 것 같은 가상의 위기감에 스트레스 만 땅이 되어 버린다. 어쩌면 나의 그런 스트레스가 우리 가정을 지켜주는 호신부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같은 건 절대 안 된다는 다짐을 받으면서 남편에게 집안의 곳간을 넘겨주었다. 남편은 주식 관련 책도 읽고 유튜브 강의도 들으면서 자기 평생 가장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것 같다고 신나 했다. 학위논문 쓸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다는 놀림을 받아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동안 남편은 신바람이 났고, 매일 우리의 산책길은 온통 주식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결국 남편의 신바람이 나도 들썩이게 만들었다. 남편의 신바람에 홀려 아예 도토리 저장고를 탈탈 털어 남편에게 맡기며 내 증권 계좌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재미가 있어 매일 체크해보다가 바로 시들해진 나는 남편에게 다 맡겨 놓고 아예 잊어버렸다.


어느 날 문득 남편이 산책길에서 더 이상 주식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나는 뭔가 싸~한 느낌에 내 증권 계좌를 열어보게 된다. 세상에나 내 귀한 도토리들이 65%나 날아가 버린 것을 발견해야 했다. ‘아니 여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내 남편 00 씨는 한순간 흠칫 민망한 표정이더니, ‘주식 투자를 하려면 이런 순간을 잘 넘겨야 하는 거야. 당신은 이제야 주식 투자를 제대로 할 정신적 단련을 겨우 한 단계 마친 거라고 할 수 있는 거지’라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말씀이나 못하시면… 내가 또 한순간 방심하면서 내 도토리 저장고를 다 털어 먹었다. 손에 쥔 모래처럼 스르르 사라져 버린 내 도토리들…


재테크,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는 우리 부부가 때때로 겪는 열패감과 상실감은 이제 서리 내린 날 아침 재채기만큼이나 익숙하다. 그래도, 그래도 언젠가는 남편의 뒷모습에서 신바람 나는 춤사위를 또 볼 수 있게 되길 간절하게 바란다.


그런데… 여보, 주식 투자는 공부로 하는 게 아닌가 봐. 우리 차라리 조왕신이라도 모셔놓고 빌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