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70점부터 시작했다

by 징졔

해외 연수 중 잠깐 귀국한 틈을 타서 엄마에게 00 씨의 사진을 보여주며 어떠어떠한 남자와 사귀고 있다고 통보했다. 자연스럽게 아빠께 그 소식이 전달될 터였다. 엄마로부터 그 얘기를 전해 들은 아빠는 그날 밤 한숨도 주무시지 못하고 앉은 채로 밤을 새우셨다고 한다. 그런데 아빠는 편지로도 전화로도 정작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고, 내가 연수를 끝내고 돌아온 후에도 일절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는 듯 모르쇠로 일관하셨다. 00 씨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것이라 짐작했고, 어떻게 아빠께 00 씨를 소개할 것인가가 결혼 전 나의 가장 커다란 투쟁 과제였다.


아빠는 내가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화장품 세트를 선물로 사주셨다. 나는 그전까지 메이크업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는 많은 여학생들이 그랬다. 아빠가 나의 배우자감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일가친척들 사이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하던 분이라 누구도 쉽게 내 배우자감을 소개하기 어려워했다.


대학교 3학년 말쯤이었다고 기억된다. 어떤 학교 선배가 나에게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만나자고 제의해온 일이 있었다. 또래들 사이의 풋내 나는 연애 감정이 아니라 좀 당황한 내가 아빠께 그 사실을 털어놓자 아빠는 나 몰래 그 사람 집안 조사까지 하려고 하셨다. 이미 그 선배의 제안을 거절한 터이긴 했지만 마음속으로 너무너무 미안했다. 이후로 나의 그 어떤 연애 이야기도 집 안에 들여놓지 않았다.


00 씨를 부모님께 소개해 드리는 절차를 좀 쉽게 통과하고 싶어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엄마 아빠를 각개격파하기로 작전을 짰다. 아빠라는 난관을 넘기 전에 엄마에게 몰래 먼저 소개해드리기로 한 것이다. 아빠가 지방의 큰댁에 가시느라 집을 비우신 틈을 타서 이미 00 씨와 절친이 되어 있던 여동생과 짜고 엄마를 집 근처 카페로 유인했다. 엄마는 수줍어하는 성격에 자기주장을 강하게 표현하는 분은 아니시지만 사람에 대한 직관력이 매우 뛰어나신 분이다. 엄마는 처음부터 아무런 거리낌 없이 00 씨를 받아들였다. 엄마는 아직도 00 씨를 자기 아들들보다 더 편하게 생각하실 때가 있다.


그날 00 씨는 우리 집에서 동생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큰댁에 가시느라 비어 있던 할머니 방에서 늦잠을 자고, 아침에 샤워하고, 엄마가 꺼내 주신 새 속옷을 입고, 황태 해장국까지 먹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갔다. 아빠는 엄마가 자기 몰래 맏사윗감을 먼저 선봤다는 사실을 돌아가실 때까지 모르셨다. 아빠 죄송해요!


그리고 얼마 후 아빠 생신 날 아빠를 우리 학교로 유인했다. 학교에 협동조합 매장이 생겼는데 거기 있는 안경점에서 아빠 돋보기를 선물하겠다는 핑계였다. 아빠는 자식 가운데 세 명이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우리 학교에 애착이 많으셨고, 간혹 학교에 우리를 보러 오시기도 한 터라 흔쾌히 그러자고 하셨다. 나는 00 씨에게 좀 편하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동생들을 다 학교로 불러 아빠와 같이 점심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교정에서 00 씨를 아빠께 소개해 드렸다. 00 씨는 책가방을 어깨에 맨 도서관 차림이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인사드리러 나온 것 같은 자연스러운 설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는 처음부터 내 꿍꿍이를 다 알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점심을 먹으면서 아빠가 00 씨에게 하신 질문은 정말 우리 세대에게는 기상천외한 것들이었다. 부모님은 어떤 분이신가? 형제는 어떻게 되는가? 정도까지는 그런대로 평이했지만, 증조부께서는 어떤 분이신가? 외가는 어느 곳이고 뭐 하는 집안인가? 큰고모님은 어느 댁으로 출가를 하셨는가? 등등. 00 씨는 원래도 자기 집안의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00 씨의 큰 눈이 당황해서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나나 동생들이나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00 씨는 아빠의 그런 질문에 거의 대답을 못했지만, 그래도 배포 있게 점심은 맛있게 먹는 것 같았다. 헤어져 돌아가는 뒤꼭지가 풀이 죽은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아빠와의 결전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안고 귀가한 나에게 엄마가 귀띔하기로는 ‘아이가 키가 작던데’가 아빠의 첫 심사평이었고, ‘그래도 한 70점은 되겠더라’가 그다음 평이었다는 것이다. 훗날 00 씨는 자기가 70점밖에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자존심 상해했지만, 나는 그때 아빠가 적어도 점수를 매겼다는 것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아빠가 직장에서 신입사원 면접하실 때 70점이 합격선이었다.


그날이 아빠 생신이었기 때문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작은 이모 내외분도 초대해 조촐하게 같이 저녁식사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다소 계면쩍은 표정으로, ‘00군이 시간 되면 와서 같이 저녁 하자고 해라’ 하시는 것이 아닌가? 00 씨는 전화를 받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왔다. 여전히 도서관 복장인 허름한 점퍼에 면바지에, 그래도 나름 신경 쓰느라 검은 비닐봉지에 마주앙 한 병 사서 들고 말이다. 여자 친구 집에 처음으로 정식 초대받은 것인데 적어도 정장 비슷한 차림이나 그럴듯한 과일바구니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참으로 이상했던 것은 그런 00 씨를 바라보는 아빠의 눈에 웃음이 실렸다는 것이다.


훗날 어머님(시어머님)께 들어보니 어머님은 그날 00 씨가 우리 집에 정식으로 인사 오는 것도 몰랐다고 하셨다. 알았으면 옷을 그렇게 입고 가게 했겠느냐고 오히려 답답해하셨다. 00 씨의 해명은 혹시 우리 아빠께 퇴짜 맞는 자리가 아닐까? 그러면 쪽팔릴 것 같아서 자기 집에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00 씨의 해명에 약간의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00 씨는 지금도 옷을 제대로 갖춰 입는 것을 너무너무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그날 나의 작은 이모는 실망감에 저녁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간 나의 신랑감 물색에 가장 신경을 썼던 사람이 작은 이모였고, 어지간한 조건의 남자는 이모의 명단 안에 들지도 못했다. 내가 00 씨를 만나기 전에 억지로 봤던 두 번의 선도 다 이모가 주선한 것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작은 이모와 00 씨는 둘이 서로 별로인 것 같다.


결혼 후 00 씨는 한동안 군대도 가지 않은 백수였고, 아이가 돌이 되기 두 달 전에야 방위병에 소집되어 훈련을 시작했다. 지금도 아이 돌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거의 똑같은 질문을 한다. ‘왜 애기 아빠 머리가 짧아요?’ ㅋㅋ 당시 00 씨는 자신이 대한민국 최고령 방위가 아닐까 농담 아닌 농담도 하고, 자칭 전백련(전국백수연합) 회장이라 으스대기도 했다. 당시 어릴 때부터 친했던 내 친구들은 남편이 판사고 의사였다. 하지만 아빠는 그들과 비교해 단 한 번도 자기 사위한테 듣기 껄끄러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아빠는 00 씨가 그냥 예뻤던 것 같다.


보수적이다 못해 봉건적인 경상도 집안, 나는 우리 집의 그런 가부장적 분위기가 싫었다. 특히 집안의 맏딸인 나에게 유난히 엄하게 가해졌던 족쇄는 자주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대학 졸업 때까지 나의 통금 시간은 우리 집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였다. 평소엔 더할 나위 없이 사이좋은 부녀지간이었지만 한번 부딪히면 아빠와 나 둘 다 눈에서 불이 쏟아지듯 격렬하게 으르렁거렸다. 그때마다 나는 아빠와 완전히 정반대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대학을 졸업하자 아빠는 더 이상 내 귀가 시간을 관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하지만 나는 결혼 후까지도 한동안은 귀가하기 전 집 밖에서 해가 지고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마치 동트는 새벽을 맞이하는 드라큘라처럼 조바심에 가슴이 콩콩거렸다.


아이가 세 살이 되어갈 무렵 남편은 막 박사과정에 들어간 학생이었고, 나는 가사에, 육아에, 강의에, 학위논문 준비에, 칭찬받는 며느리 역할까지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 아이는 두 돌이 지나면서 놀이방에 보냈지만, 바쁠 때는 가까이에 살던 엄마 아빠가 많이 봐주셨다. 그날도 아이를 데리러 가서 엄마 아빠와 같이 저녁을 먹었고, 피곤한 나는 집에 일찍 가서 쉬고 싶었다. 내가 00 씨에게 ‘우리 이제 가요’했고, 00 씨는 당연히 ‘응, 그래’ 하면서 짐을 챙겼다.


그런데 약간 아쉬운 표정으로 배웅하러 나오시던 아빠가 00 씨에게 대뜸 ‘00 서방, 여자한테는 그렇게 잘해주는 것이 아니네’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세상에 친정 아빠가 사위한테 하실 말씀이신가? 아마 그날 아빠는 우리와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내가 평소보다 일찍 가려고 하는 게 서운했고, 또 냉큼 따라나서는 사위가 못마땅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아빠의 마음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기 딸이 얼마나 고군분투하면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르신단 말인가? 그리고 당시는 00 씨가 나한테 뭘 잘해주고 싶어도 잘해줄 만한 여지가 별로 없던 세월이었다.


아마 아빠는 00 씨가 결혼 생활에서 언제나 아내인 내 의견을 존중하고 내 형편에 맞춰 일상의 모든 것을 조율하는 모습이 생소하고 어색하셨던 것이었을까? 00 씨가 남자 체면을 깎는다고 생각하셨던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내 다짐대로 아빠와 정반대인 남자와 결혼을 한 것이 증명된 것이다. 기고만장해진 나는 속으로 아빠께 ‘메롱’하는 기분이었다.


아빠는 퇴직 후 매달 투자은행에서 나오는 이자로 자기 용돈을 쓰셨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으시면서 이자가 나오는 날은 늘 우리에게 뭔가를 사주고 싶어서 안달을 하셨다. 한 번은 나와 내 여동생을 투자은행 가까이에 있는 백화점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때 우리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약속이나 한 듯 백화점의 여성 속옷매장으로 쑥 들어갔다. 아빠는 점잖은 체면에 여성 속옷매장에 따라 들어갈 수는 없으셔서 우리 가방을 대신 어깨에 메고 방향 잃은 눈길과 민망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면서 매장 밖에서 서성거리고 계셨다. 우리가 속옷을 다 골랐다고 신호를 보내자 그제야 고개를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들어오셔서 계산을 해주셨다. 우리를 바라보던 매장 점원의 부러운 눈길에 ‘우리 아빠세요’하고 좀 철없이 으쓱했던 것 같다.


내 나이 50 중반을 넘긴 어느 날, 책상 서랍에 오래 묵혀 둔 백화점 상품권을 쓰기로 하고 남편과 외출을 했다. 마침 내 생일을 며칠 앞둔 날이어서 오직 나만을 위한 뭔가를 사고 싶었다. 하필 그 백화점이 옛날 아빠가 주 고객으로 자주 가시던 그 백화점이었고, 난 나만을 위한 여성 속옷 매장으로 향했다.


나와 남편 둘 다 백화점이란 공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갈 일이 생겨도 미리 머릿속에 결정해 둔 것만 후딱 사고 나오는 게 대부분이다. 후다닥 쇼핑을 마치고 몸을 돌려 매장 밖으로 나오는데, 내 가방을 어깨에 멘 채 쑥스럽고 민망한 표정으로 서성거리는 그리운 모습, 나는 아빠가 거기 서 계신 줄 알았다. 남편의 모습은 마치 빙의라도 한 듯 아빠와 똑같았다. ‘맘에 드는 것 잘 샀어?’하는, 궁금해하는 그 흐뭇한 눈빛도 말이다.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내 다짐대로 아빠와 전혀 다른 남자를 남편으로 구했노라 으스댔지만, 결국은 아빠와 똑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남자를 남편으로 택한 것이다. 아빠는 첫눈에 00 씨의 그런 면을 꿰뚫어 보셨던 것일까?


아빠, 고마워요. 우리 결혼 반대하지 않아 줘서. 아빠의 70점은 만점이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