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두 번째 죄는 임신한 아내를 위해 단 한 번도 맛있거나 기념이 될 만한 특별한 음식을 사주거나 해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열 달 내내 단 한 번도 말이다.
내가 관대할 마음이 있다면 이 죄에 대한 면죄부는 쉽게 줄 수도 있다. 왜냐면 내가 거의 입덧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신 초반 살짝 속이 메스꺼운 정도는 있었지만 열 달 내내 무엇이든 잘 먹었다. 그것은 남편의 자랑 아닌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내 아내는 뭐든지 잘 먹어. 전혀 임신한 티가 나지 않아’라며.
생각해 보면 나는 남편에게 임신한 나를 위해 뭔가를 해달라고 드러내놓고 요구한 적이 없다. 나는 내 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기적 같은 일을 전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할 나만의 일로 받아들였으며, 남편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커피와 술은 물론, 앉는 자리조차 조신하게 가려야 하는 임산부 입장에서 혼자만 너무 자유로운 남편에게 가끔은 심술이 나기도 했다.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나는 당시의 한 장면이 있다. 남편과 아파트 단지에서 밤 산책을 하면서 나누었던 대화의 일단락이다. 호르몬의 장난질에 속아 심술이 난 나는 ‘만약 나중에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일이 생기면 지금 뱃속의 아이는 내 아이야. 당신과는 상관없이’라고 뜬금없는 도발을 했다. 잠시 당황하다가 정신을 수습한 남편은 ‘글쎄, 우리가 헤어질 일이 있을까?’라며 두루뭉술 넘어가려 했고, 나는 재삼재사 ‘이 아이는 나만의 아이야. 당신은 이 아이가 내 뱃속에서 크는 동안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잖아’라고 불퉁거렸으며, 남편은 ‘글쎄, 그래도 우리가 헤어질 일은 없을 거야’라고 대답했다. 남편의 핵심은 우리가 헤어진다는 가정이나 상상 자체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남편이야 뭐라 하든 말든 나는 나대로 ‘어쨌든 당신도 내 생각에 동의한 것이라고 알겠어’라며 무지르듯 아무 의미 없는 대화를 끝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에둘러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한테 좀 더 특별한 신경을 써줘’라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나의 많은 단점 가운데 하나이다.
임신 기간 내내 나는 공부도 하고 강의도 했을 뿐 아니라 집안일을 거의 전담했으며, 심지어 도서관 가는 남편의 도시락도 싸주는 억척 아내였다. 나는 내 임신을 티 나지 않게 심상하게 대하고자 했다. 귀한 자식일수록 천한 이름을 지어 세상의 시샘에서 보호하고자 한 조상들의 지혜를 본받고자 나도 내 몸 안에서 자라고 있는 기적과도 같이 귀한 내 아이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표 나지 않게 키워내고 싶었다. 다행히 나는 건강했고, 임신 기간 내내 그럭저럭 별다른 불만 없이 우리는 철없는 소꿉놀이 하듯 알콩달콩 재미있었다.
역시 또 드라마가 화근이었다. 자다 말고 새벽에 일어나 뭐가 먹고 싶다고 남편을 깨우는 아내. 부리나케 뛰어나가 이미 영업을 끝낸 식당 문을 두드려 사정사정하면서 아내가 먹고 싶다는 음식을 구해오는 남편. 맛있게 먹는 아내를 보면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 남편. ‘뱃속의 우리 아기가 먹고 싶다네’라며 콧소리에 눈웃음으로 애교 부리는 아내 등등의 영상을 보면서야 임신 기간 내내 내 남편은 붕어빵 하나 특별히 나를 위해 품고 온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나도 놀랐지만 남편도 놀란 것 같았다. 나도 처음엔 내 남편이 그랬을 리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자신이 임신한 아내를 위해 뭔가 특별한 것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남편은 세상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에이, 내가 그랬다구? 내가 그랬구나.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삼단 자아각성에 들어갔다. 남편은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자아비판을 해야 했다.
내가 그 사실에 본격적으로 서운해 하기 시작한 것은 우습게도 더 이상 임신이 불가능해지기 시작한 갱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직장 일은 나의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번 아웃 시켜버렸고, 나는 일상을 지탱할 체력조차 건사하기 힘들었다. 마음이 힘들고 몸이 힘들면 이치에 닿지도 않는 온갖 투정이라도 부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고, 그 대상은 남편일 수밖에 없었다. 아득히 주름 깊은 내 기억 어느 한 구석을 뒤져서라도 달달한 추억거리를 찾아내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사한 그 기적 같은 일에 제대로 된 달달한 추억거리 하나 없다니, 못내 아쉬웠다.
사랑하는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대견하지 않았나?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일단 뭐라도 몸에 좋고 맛있는 것을 먹여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예상치도 못한 맛 나고 귀한 것을 불쑥 내밀며 아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 같은 게 아예 없었을까? 열 살짜리 철부지 꼬마 신랑도 자기 색시한테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내가 한 겨울에 복숭아가 먹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등등. 내가 남편과 큰 소리 내는 말다툼을 딱 한 번 할 뻔했던 것도 이 기간이었다.
남편은 아들만 삼 형제 있는 집안의 막내였고, 그의 집안은 가족끼리 선물을 내밀거나 깜짝 기념일을 챙기는 그런 느끼한(남편의 표현)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결혼 후 남편은 낭만적이고 달달해야 하는 일엔 한없이 서툴렀고 쑥스러워했으며, 그런 분위기를 연출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뻣뻣하게 굳기 일쑤였다. 그러나 내게 그건 핑계가 될 수 없었다. 마음이 있으면 하게 되는 거 아닌가? 당신의 마음은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긴 했던 거야?
한 번씩 토라져서 뽀로통해질 때마다 나는 남편의 마음을 검색해 보고 내 마음을 돌아보았다. 남편은 언제나 아내를 존중하고 성의를 다해 아내를 위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남자이다. 가부장적인 면도 거의 없고, 결혼 생활 내내 공치사하지 않고 남 탓 하지 않는 선량한 남자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자상함이나 다정함이 없다. 나는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자상함이나 다정함은 그냥 화산 분출하듯 마구 솟아나는 것인 줄 알았다. 아빠처럼. 그러나 자상함이나 다정함은 타고 태어나는 천성 같은 것이라서 후천적으로 도야하기 힘든 요소이고, 천성에 없는 것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리한 요구인지 나는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 있을 때 내게 폐경이 찾아왔다. 남들보다 지나치게 늦게 찾아온 폐경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온몸이 이상하게 다 아프기 시작했고, 난 그것이 곧 폐경이 되려는 신호라고 직감했다. 한 번도 내 눈으로 정체를 확인한 바 없는 호르몬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병원을 간다 해도 대체 어떤 병원을 가야 할지 난감했고, 인터넷이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폐경 증후군은 온갖 질병의 인자를 다 포함하고 있었다.
쓰나미에 휩쓸려 호흡조차 곤란하게 여겨지던 시간들이 서서히 지나가면서 고질병으로 남은 것이 류마티스 관절염이다. 처음엔 엄지손가락과 손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무거운 물건, 심지어 책조차도 제대로 들기 힘들었고, 손톱 깎는 것조차도 샤워 후 손톱이 말랑말랑해진 다음이어야 했다. 그러니 주방에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릇을 들어 옮기거나 칼질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주방의 조리기구가 다 그렇게 폭력적으로 무겁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간단하기 그지없는 일품요리 말고는 자신의 힘으로 식탁을 차릴만한 본격적인 요리를 해본 적이 없는 남편이었다. 나의 폐경으로 남편은 주방 보조도 거치지 않고 졸지에 메인 셰프로 승진해 주방을 장악했다. 다행히 남편은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인터넷에서 알려주는 온갖 레시피에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더해 때론 기상천외한 음식을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다 아내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는 자화자찬도 심각하다.
입맛이 그리 까다로운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때론 두 눈 질끈 감아야 하고, ‘음~ 맛있어’라고 한 옥타브 올라간 톤으로 칭찬인지 감탄인지를 연발하면서 꼬리를 흔들기도 하지만, 나날이 지저분해지는 주방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언제나 참기 어려운 고통이다. 남편의 음식이 그럴 듯 해지는 것에 비례해 주방은 더 지저분해지고 있는 것 같다.
신분 격상인지 신분 추락인지 처음엔 주방에서의 지위 변화에 어리둥절했지만, 10여 년 가까이 계속되자 이제는 여왕처럼 가만히 앉아서 해주는 음식 받아먹는 것도 습관이 되었고, 잔소리는 언감생심, 굴욕을 감내하며 주방 보조 역할도 제법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또 다른 갈증이 생기고 있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옛 맛, 정확하게 말하면 내 손맛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가끔 주방이 비어 있을 때 슬쩍 들어가 뭔가를 시도해보기도 하지만 냄비나 프라이팬은 거의 흉기나 마찬가지이고, 칼질하는 손목은 조금만 힘을 주어도 통증이 생긴다. 게다가 오른쪽 무릎에 생기기 시작한 퇴행성관절염으로 오래 서 있기도 힘들다. 이제 내 손맛이 들어간 그 음식들은 영원히 작별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상실감에 가슴이 아프다.
‘여보, 내가 임신했을 때 맛있는 거 한 번도 안 해준 거 다 용서해 줄게. 그 대신 30년 가까이 당신을 즐겁게 해 주던 내 손맛 좀 찾아주면 안 될까?’ 아마 이 말을 입 밖에 내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남편이 인터넷 레시피 너머에 있는 무형의 그것을 익힐 가능성은 거의 제로로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저녁 고사리와 토란대 등 온갖 채소가 고기 국물에 푹 어우러진, 대파가 통째로 나른해져 있고 고추기름 동동 떠 있는 그런 맑은 육개장이 먹고 싶은데... 내일은 달걀 장국에 넣은 바지락이 살짝 씹히기도 하는, 온갖 고명이 올라간 나만의 특제 잔치국수가 먹고 싶을 것 같은데... 히잉~
때론 입덧보다 더한 고통이고 갈증이고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