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 00 씨는 선심성 공약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도 때론 서로 손가락 걸면서 나눌 수 있는 ‘순간의 행복’이라는 것도 있는 것일 텐데, 00 씨는 스스로를 그런 낯간지럽고 간살 맞은 짓은 못하는 사람이라고 규정지었다. ‘행복하게 해 줄게’, ‘내가 잘할게’, ‘너만을 사랑할게’ 이런 흔하디 흔한 사랑의 다짐도 그의 유니버스 안에는 없다.
그런데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00 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지켜질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약속을 했고, 또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아내를 감동하게 했다. 아마 00 씨는 자신이 어떤 약속을 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 너무 뻔하다. 00 씨의 깍쟁이 아내는 남편에게 감동했다거나 고맙다 같은 류의 말은 절대 대놓고 못 하는 성격이기에 이 지면을 빌려본다.
결혼 전 가장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는 ‘어디에서 살 것인가’였다. 우리는 둘 다 생활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양가 어느 쪽에든 빌붙어 살아야 했는데, 며느리가 시집에 들어가 사는 것이 너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우리 집에서도 결혼한 딸을 데리고 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당시 시부모님은 고향으로 내려갈 계획을 구체화하고 계셨고, 집이 정리되지 않아 좀 어정쩡한 상황이었다. 그때 00 씨가 나에게 진지하게 물어왔다. 자기가 살고 있는 옥탑방을 좀 고쳐서 당분간이라도 살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당시 00 씨는 자기 집 옥상에 있는 옥탑방에서 거주했는데, 그 방은 욕실도 주방도 없는 그냥 잠자고 공부하는 공간이었다. 아마 대학시절엔 그의 친구들이 자주 모이는 아지트 비슷한 공간이기도 했던 모양으로, 신혼부부가 살만한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당장 내 머릿속에 떠오른 영상은 그 방을 보고 기겁할 우리 부모님이었다. 그걸로 결혼이 그냥 깨져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너무 딱 잘라 싫다고 하면 00 씨가 무안해할까 봐 엉겁결에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난 매일 아침 샤워해야 하는데, 거기서는 그럴 수 없잖아?’였다. 그러자 00 씨는 너무 호기롭게 ‘걱정 마, 내가 매일 물 따뜻하게 데워서 목욕시켜 줄게’라고 대답했다. ‘아이구, 내가 못살아’하며 흘겨보는 것으로 대화를 끝냈지만, 난 그 말을 ‘결혼하면 황후마마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편하게 살게 해 줄게’. 혹은 ‘내가 해줄 수 있는 호강은 다 시켜줄게’ 같은 약속으로 받아들였다.
결혼을 하고 나니, 맙소사 00 씨는 설거지도 제대로 못하는 남자였다. 하긴 어머님도 젊으셨고, 형수가 두 분이나 계셨으니 00 씨까지 집안일을 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는 환경이었다. 결혼 생활을 책으로만 배운 남편이 어이없을 때마다, ‘뭐야~, 맨날 물 따뜻하게 데워 샤워도 시켜준다더니’하며 째려보았고, 그럴 때마다 내 남편 00 씨는 ‘왜~? 지금 당장이라도 샤워시켜 줄 수 있는데!?’하며 느물거렸다.
세월이 흘러 아이가 다섯 살 무렵, 남편은 본격적으로 학위논문을 쓰겠다 생각하고 두 학기 동안 해외 연수를 가기로 결정했다. 외국어문학을 공부하면서 해당 국가에 한 번쯤 가보는 게 자연스럽기도 한 일이겠지만, 00 씨는 군대 미필자는 해외 유학이 가능하지 않았을 때 석사과정까지 마친 터라 결혼 전 자유롭게 다녀올 시기를 놓친 것이다. 당시 막 취직을 했던 나는 걱정 없이 뒷바라지하겠다고 큰소리치면서 남편의 해외 연수를 종용했다.
그렇게 취직한 지 한 학기 만에 남편을 해외로 보내놓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직장 생활하랴 아이 돌보랴 혼자서 눈물 콧물 흘리며 지옥 훈련하듯 보낸 그 몇 달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나를 진맥 한 한의사는 ‘운동도 절대 안 됩니다. 몸 다 버립니다. 산에 들어가서 새소리도 듣고, 물소리도 듣고 그렇게 쉬세요’라며 보약을 지어주었다.
겨울 방학이 되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남편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처음에는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호텔에 머물까도 했는데, 돈도 아낄 겸 남편의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남편의 기숙사는 세 명이 함께 사는 곳으로, 좁은 방 세 칸에 거실 한 칸, 좁은 욕실, 간소하기 이를 데 없는 주방이 갖추어져 있었다. 룸메이트인 미국 화교 형제가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고, 또 그들은 바로 방학을 맞이해 귀국했기 때문에 거실과 욕실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어서 편했다. 남편 방의 좁은 학생침대엔 아이를 재우고, 우리는 바닥을 청소해 이부자리를 펴고 지냈다. 한밤중에 벽에 쌓아놓은 책이 무너지는 바람에 다칠 뻔한 적도 있었고, 여행가방을 수납장으로 삼아야 했던 그 공간을 우리는 ‘우리의 난민 수용소’라 명명했다.
겨울방학 두 달간 남편은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몇 달간 홀로 지낸 외국 생활에서 갈고닦은 기량을 발휘해 남편은 요리도 직접 했으며(물론 거의 매식이었지만), 빨래도 쇼핑도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했고, 청소는 기숙사에서 해주었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나는 연구 자료나 찾고, 강의 준비나 슬슬 하면서, 먹고 자고 산책하고 여행하고 지인들 만나며 그렇게 남편 옆에서 황후마마처럼 두 달을 보냈다.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말이다. 저녁 무렵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남편과 느릿느릿 대학 근처 재래시장을 산책하던 그 평화롭던 순간을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남편이 결혼 전 나에게 했던 그 약속을 한꺼번에 몰아서 그 겨울방학 두 달간 다 했다고 생각하며 만족했다. 그렇게 결산을 마쳤다.
그런데 결혼 생활 20년 정도 되었을 때 남편은 또 아무 대비 없이 누가 들어도 지킬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약속을 해버렸고, 그 약속은 공중파를 타고 전국에 널리 퍼졌다.
하루는 퇴근한 남편이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주며 들어보라 하였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찾아 숨고 싶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한 방송국에서 남편 사무실로 취재를 왔는데, 생각보다 취재가 일찍 끝나자 담당 PD가 남편에게 아침 방송프로에 아내에게 보내는 음성 편지를 녹음하라고 강권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K** 라디오의 아침 프로인 ‘**한 아침’에 아내인 나에게 보내는 음성 편지를 녹음하게 된다. 남편이 방송국으로부터 USB를 받았을 때 이미 방송은 전파를 탄 다음이었다.
공중파로 전국에 전파된 남편의 목소리는 익숙하면서도 생소했다. 까칠하면서도 선량한, 그리고 민망해 어쩔 줄 모르는… 그 프로를 진행하던 여성 MC는 ‘어쩌면 목소리가 이리 안정적이고 좋으실까’라고 호들갑스레 말했지만 말이다.
약간의 기억 오류가 있긴 했지만 남편은 음성 편지에서 아내인 나에게 절절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남편은 결혼 생활 내내 철이 없었던 자신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하더니, 급기야 ‘제 아내가 저를 키웠습니다. 결혼생활 20년간 싸워본 적이 없는 것도 다 아내의 공입니다’라며 나를 온갖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남편 뒷바라지한 조강지처로 만들었다. 방송을 듣는 내내 나는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고, 또 순간순간 울컥하기도 했다. 남녀 MC는 번갈아가며 나와 남편을 칭찬하더니, 입을 모아 ‘점집에 가면 아내 복이 있구먼 할 것 같은 분’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가끔 남편에게 근거 없는 큰소리를 쳤던 것도 그 ‘아내 복’이었다. 어느 한 해,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강 첫날 학생 몇 명이 내 연구실에 안부 인사차 우르르 놀러 왔다. 그 가운데 얼굴이 하얗고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름이 가물가물 생각이 안 난다)이 ‘교수님, 제가 방학 내내 뭘 했는지 아세요?’라고 묻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하루 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역학공부를 했노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교수님과 사부님 사주팔자를 꼭 봐주겠노라고 떼를 썼다. 계속 거절하기도 그렇고 호기심도 발동해서 우리 둘의 생년일시를 알려주었는데, 그 아이의 내 남편 00 씨에 대한 점괘는 ‘사부님은 다른 복은 하나도 없는데 처복만 있네요. 오우~ 사부님 평생에 엄청난 횡재수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처복이네요.’라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나는 마치 00 씨 인생의 호신부처럼 으스대게 되었다.
남편은 방송에서 왜 내가 자기를 키웠다고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겨우 1년 3개월 연상일 뿐인데 남편을 키워내다니… 좀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결혼 초 몇 년간은 나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는 원맨쇼를 한 것 같기도 하다. 가끔 남편 키우기가 아들 키우기보다 더 힘들다는 한탄도 했던 것 같다.
아들이 4살 때 무슨 조립형 로봇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다. 좀 비쌌지만 엄마 학위논문 쓰는 내내 한 번 아프지도 않고 칭얼대지도 않은 아들이 고마워 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응, 아빠랑 의논해 보자’라고 대답했다. 그간 아들의 요구를 즉석에서 거절하기 곤란할 땐 늘 ‘아빠랑 의논해 보자’라는 멘트를 단골로 써먹었고, 때문에 내 대답을 부정적 시그널로 받아들인 아들이 ‘엄마가 그냥 결정하면 안 돼?’라고 물었다. ‘엄마는 뭐든지 아빠하고 의논해서 결정하는 것이 좋은데’라고 교양 있는 척했더니 아들 녀석 ‘엄마가 누난데?’라는 것이 아닌가? 아들 눈엔 내가 무엇이든 마음대로 결정해도 되는 남편의 누나였나 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한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아들이 어릴 적 종종 유치원에서 가족 그림을 그리게 했다. 아들이 그린, 서로 손을 잡고 있는 우리 세 식구 그림에서 내 키가 제일 컸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가 또 그렇게 그린 그림이 눈에 띄길래 조심스럽게 ‘아빠가 엄마보다 키가 큰데 왜 엄마 키를 제일 크게 그렸어?’라고 물어보았다. ‘엄마가 우리 세 식구 중에 나이가 제일 많잖아’라는 확신에 찬 대답이 돌아왔다.
아들의 생각에 억지로 개입하고 싶지 않아 ‘음… 하지만 실제로 키는 아빠가 더 큰데…?’라는 정도의 의문부호만 붙이고 대화를 끝냈지만, 남편에 대한 내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꽤 오래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아들 앞에선 의식적으로 남편에게 꼬박꼬박 존대까지 하면서 말이다. 유치원 선생님이 아들 그림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아무튼 남편은 ‘여보! 이제는 당신이 더 클 수 있게 내가 옆에서 많이 지켜줄게. 사랑해~’로 2분 정도의 음성 편지를 마무리했다. 남편은 나이 50이 코앞인 아내에게 ‘더 클 수 있게 옆에서 많이 지켜줄게’라고 방송을 통해 공개 약속을 해버린 것이다. 그 이후 난 직장 생활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키워 준다며~, 더 클 수 있게 지켜 준다며’라고 남편에게 투정을 부리게 되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아~ 좀 기다려봐. 키워줄게. 확실하게’라며 눙치고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정말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50 중반에 들어선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공부 하겠다고 집안에 콕 들어앉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릴 적부터 역사 이야기를 좋아했고, 국사나 세계사 시험 성적이 좋았고, 대학 때 부전공하겠다고 사학과 수업을 들락거리긴 했어도, 나이 50 중반에 역사 공부를 시작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대학에 학사편입이라도 해서 공부를 새로 시작해야 하나 어쩌나 막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무엇보다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그냥 좋아서, 하고 싶었던 것이니까 무작정 한다는 그 자체가 나의 성정과 맞지 않는 일이기도 해서 때로 몹시 답답하고 부자연스러웠다.
그 모든 고민의 시작부터 남편은 옆에 있어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부하면서 어설프게 엮은 글을 읽어주고, 혼자 글을 쓰면 느슨해진다며 나만의 사이트를 만들어 글을 올리게도 해주고, 내가 출판을 포기하고 계속 공부하면서 블로그를 하겠다 하니 컴맹인 나를 위해 그냥 딱 글만 올리면 되는 모든 환경을 갖추어 주었다. 요즘도 내 모든 글의 첫 독자는 남편이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손봐주기도 한다. 이것이 남은 인생에 내가 커가는 과정이라면, 정말 남편은 내가 더 클 수 있게 단 한 번도 지치지 않고 10여 년이나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공중파를 타고 전국에 퍼진 남편의 공개 약속은 이렇게 지켜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이런 남편이 건강하게 오래 내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나도 남편에게 한 약속이 하나 있다. 나 역시 말보다는 행동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유형이라, 남편에게 한 유일한 약속이기도 하다. 88세가 될 때까지 별 탈 없이 둘이 서로 곁을 지켜주고 있게 된다면, 남편 88세 생일에 소박하게 둘만의 미수연을 열어 한복 다소곳이 차려입고 남편에게 큰 절을 올리겠다고 한 것이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에게 교육을 받아 절은 나붓하게 잘하는 편이라 자신 있게 한 약속이었다.
그런데 정말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어서 몇 년 전부터 생긴 무릎의 퇴행성관절염으로 설혹 내가 그 나이까지 살아 있다 하더라도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될 것 같다. ‘남편, 나 어쩌지? 그 약속 못 지킬 것 같은데… 그냥 허리만 숙여 절하는 것으로 대신하면 안 될까?’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