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 인터뷰 : 남의집 이탈리아 정통방식 티라미수 심규리님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 진로 고민은 대학 때 졸업할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직장에 들어가서도, 퇴사해도 하는 게 진로 고민이었다.
이탈리아 로마 국립 미술원에서 무대예술을 전공하며 무려 12년간 유학을 한 호스트 심규리님은 취향을 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무대예술 일을 업으로 삼았는가? 아니다. 전공과 관련 없는 티라미수를 업으로 삼았다.
이탈리아에서 12년간 티라미수 덕후로 살다가 귀국 후 티라미수 가게를 차린 성공한 덕후입니다. 요리를 전공한 건 아니고 로마 국립미술원에서 무대예술을 전공했어요. 워낙 먹는 걸 좋아하는데 특별히 티라미수를 너무 사랑해서 어딜 가나 후식으로는 티라미수를 꼭 시킬 정도였어요. 호기심도 많아 이탈리아 현지에서 진행하는 디저트 수업도 받으면서 티라미수에 대한 사랑을 더욱 키웠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티라미수를 업으로 삼게 될지는 꿈에도 알지 못했지만요.
글쎄요, 엄청난 INFP 성향으로(이상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INFP) 뭐든 강단 있고 확실하게 정하는 성격이 못 되는지라… 그때그때 마음이 동하는 것을 택하고 정하는 편이에요. 취향을 업으로 삼기 전엔 인지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취향을 업으로 삼은 후부터 저만의 취향이라는 게 생긴 것 같아요. 취향 속에 인생관이 녹아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취향에 조금 고집스러운 면이 담겼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요리 전공자가 아닌 탓에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한 연구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어요. 티라미수 재료는 단순한 편이지만 이 재료들을 가지고 맛을 내기란 전공자가 아닌 저에겐 어려울 수밖에 없었거든요.
항상 마음에 새기는 모토가 ‘좋은 재료는 절대 배신이 없다.’ 인데, 그런 의미에서 국내에 있는 모든 마스카르포네 치즈 브랜드와 사보이아르디(티라미수 안에 들어가는 쿠키) 브랜드는 다 실험해본 것 같아요.
특히 달걀은 난각번호 1번, 자연 방사 유정란을 고집하는 등 옳은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생산된 재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죠. 티라미수라는 단일 메뉴를 고집하는 것도 ‘이것만큼은 확고한 나의 취향이자 경쟁력이다’라는 생각을 해요.
보통 먼 타국에서 유학하게 되면 외로움도 느끼게 되고 향수도 생기고 그렇잖아요?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지의 디저트인 티라미수가 향수를 달래줬어요. 다른 유학생들이 냉장고에 김치를 쟁이듯, 저는 이탈리아 친구들한테 직접 전수받은 레시피로 티라미수를 만들어 채워놓았어요. 힘들고 고단했던 유학 시절을 견디게 해 준 존재, 이 사실이 티라미수에 빠지게 만든 게 아닐까 해요.
우리나라도 지역마다, 집마다 김장 요리법이 제각각이듯, 이탈리아 음식도 그래요. 특히나 이탈리아는 각 지방색이 서로 뚜렷하게 다르고 방언부터 음식까지 같은 이탈리아인도 다른 지방의 음식을 다 알지 못할 정도죠. 저는 학교는 로마에서, 졸업 후에는 피렌체에 거주하며 12년을 보냈는데 이 두 대 도시의 티라미수 요리법이란 크게 다를 건 없었어요.
다만 티라미수의 중요한 베이스 재료인 에스프레소를 모카 포트로 뽑아 사용하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정말 이탈리아 가정식이잖아요. 특별히 특이한 요리법이 있었다기보다는 현지 가정집의 분위기와 정취 같은 게 더 크게 와닿고 기억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피렌체 거주 당시 디저트 클래스에서 티라미수를 또 배워봤었는데 설탕 비율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서 깜짝 놀란 적은 있어요. 가정에서는 그렇게 달게 하진 않거든요.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탈리아는 식사 요리에 당을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디저트는 더 달콤하게 먹는 문화라고 해요.
왜 없었겠어요. 오랜 시간 공부했는데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귀국 후 관련 분야에서 1년 좀 안 되게 일을 해봤는데, 혼란과 충격 그 자체였죠. 배운 것과는 아예 다른 세계였어요. 나이는 적지 않고, ‘다른 새로운 일을 다시 찾아야 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은 그 당시 저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였어요.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좋아하는 걸 일로 해보자!’, ‘잘 안 되더라도 한 때의 로망으로 평생 남겨놓으면 되니, 엉뚱한 일을 하며 능률도 오르지 않을 퍽퍽한 삶을 최대로 미뤄보자!’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단순하게 ‘티라미수를 좋아한다’ 수준이었지, 이렇게까지 진심이 될 줄은 시작할 땐 몰랐어요. 지금도 여전히 저희 신랑은 돈도 안 되는 일을 언제까지 할 거냐며 이제 그만하고 돈 되는 일을 하는 건 어떠냐고 하기도 해요. 그래도 제일 많이 응원해주는 것도 남편이에요.
연애 2년 후 결혼했는데, 12년이 됐어요. 남편이 정신적으로 지지를 많이 해주었는데요. 처음에는 ‘둘 중 하나는 좀 안정적이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많이 투닥댔던 것 같아요. 그도 그럴게. 남편은 성악가고 저는 자영업자거든요. 둘다 예술쪽을 전공해서 그런지, 분야 특성상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요.
사실 서울에 자리를 잡기 전에 제가 남편과 같이 살던 전주에서 5년간 가게를 했었어요. ‘서울에서도 내 티라미수가 먹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서울 장사는 남편과 1년만 약속하고 혼자 올라온 거예요. 근데 벌써 이곳에서 2년간 머물고 있어요. 올해까지 하고 다시 전주로 내려갈 예정이라 시원섭섭한 마음이 있어요.
다행히 쓸 만큼 수입이 들어오긴 해요. ‘적당히 번다’의 기준이 모두가 다르니까, 말씀드리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지금의 벌이에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서로 행복하고 오손도손 잘 살 정도만 모으자’하는 경향도 강하고, 매출에 상관없이 제 정신상태가 좋게 유지되는 게 중요하니까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정말 인적 드문 곳에 가게가 있다 보니 사람이 정말 없어요. 이 동네 10년 사신 분도 이런 곳이 있었냐면서 방문하시거든요. 그래서 단골손님이 많은 편이고 손님들이 가게를 정말 좋아해주세요. 그럴 때면 제가 좋아했던 걸 다른 손님들도 좋게 봐주셔서 다행이기도 하고 참 재밌는 것 같아요.
티라미수와 제가 이렇게까지 된 게 참 신기해요. 그냥 운이 좋게, 인생의 동반자 같은 취향을 만났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취향을 업으로 삼으면서 듣는 피드백이 취향 유지의 원동력인 것 같아요. 저 혼자만 즐기는 게 아니잖아요. 누군가가 내 티라미수를 먹고, 맛있다고 공감을 해주고, 응원을 해주는 그런 과정에서 더 애착을 갖게 되고, 성장까지 하는 것 같아요. 취향이 오래가려면 저처럼 다른 사람들이랑 계속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좋아 보여요.
맞아요, 근데 지인들의 피드백보다는 혼자 피드백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어요. 옛날엔 티라미수를 대하는 모든 과정이 다 재미있었는데, 창업을 결심한 후부터는 달라져야 했어요. 재미만으로 장사를 할 순 없으니까요. 판매를 할 거면 티라미수의 질이 중요한 건 물론이고 맛도 일정해야 하잖아요. 근데 만들 때마다 크림의 질감도 바뀌고, 맛도 불규칙해서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생기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요식 정통 과정을 밟아와서 식당을 하시는 분들에게 죄송스럽기까지 했거든요.
그래도 무한한 시도 끝에 일정한 맛을 내게 됐어요. 또, ‘좋은 재료를 쓰자’라는 고집도 생기면서 저에 대한 의심을 멈췄던 것 같아요. 이 고집대로 운영하다 보니, 대단한 홍보 없이도 손님들이 맛을 알아주시더라고요.
단점부터 말씀드려볼게요. 너무 진심이 되다 보니 확고한 취향과 고집이 생겨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지게 돼요. 그래도 장점은 제가 그만큼 티라미수에 진심이다 보니까 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한다는 점이에요. 그러면서 오는 엄청난 성장 에너지가 선순환되는 게 장점이에요. 이건 장단점과는 별개지만, 취향과 전문성은 엄연히 다르니 머물러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항상 인지해야 해요.
옛날엔 좀 그랬는데, 요즘은 이 업에 있어서 더 진지해졌어요. 오래 운영하다 보니 책임감도 생겼고요. 사실 전주에 있었을 땐 지금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가끔은 티라미수에서 멀어지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었어요. 그래서 임시휴무를 하기도 했죠. 갑자기 이탈리아로 떠나서 좀 재충전을 하기도 했고요. 다행히 제 음식을 좋아하는 분들은 이런 소심한 방황을 다 이해해주시더라고요.
근데 서울에 올라오면서 진지하게 변했어요. 진정성에 대한 부분을 많이 배웠기 때문이에요. 마르쉐 시장 아세요? 생산자인 농부님들과 직접 만나서 거래할 수 있는 직거래 장터인데요, 마침 저희 가게 바로 앞에서 열어요. 그곳에서 농부님들과 얘기를 나눴던 게 큰 자극제가 됐던 것 같아요. 이분들은 진짜 업에 진심이시거든요. 그러면서 옛날처럼 조금 힘들다고 툭툭 쉬어버리는 건 아닌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자식은 없지만, 남편을 두고 서울에 올라왔잖아요. 거기서 오는 책임감도 무시할 수 없었어요. 제게 한정된 시간을 잘 써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옛날보다 더 티라미수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리고 남의집에서 티라미수 모임을 하면서도 많이 배웠어요. 남의집 이전에도 메뉴개발, 창업 목적으로 수업한 경험이 있는데요. 그땐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요리법에 엄청나게 집중해서 요리수업처럼 진행했어요. 근데 아무래도 남의집은 호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오는 분들이 많다 보니까, 대화를 많이 하게 돼요. 그러면서 ‘아 나 이런 생각 하는 사람이었지’ 하면서 성찰도 많이 하게 되고요. 그 과정이 재밌어서 늘 모임이 늦게 끝나요. 1시에 끝나야 할 모임이 자꾸 3시에 끝나더라고요.
내 마음이 좋아하는 걸 의심하지 않고 따라가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팔랑귀다운 면이 많아서 우유부단한데요. 남의 말에도 영향을 잘 받아요. 근데 티라미수를 만나고, 이걸 업으로 삼으면서부터는 자문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남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제 목소리를 들어야 하더라고요. 돌이켜 보면 이 과정이 그냥 일반적인 취향에서 머무를 수 있었던 티라미수를 운명적인 취향으로 만들어준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제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더 확실하고 단단하게 알게 됐고요.
주변 현상에 관한 관심이 적고 저처럼 성격 자체가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도 자신만의 호불호는 존재해요. 그걸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해요. 스스로에게 질문도 많이 해야 하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내 마음에 좋게 느껴지는 일에 대해 관대해져 보면 어떨까요? 어떤 것을 좋아함에도, ‘용기가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여건이 안돼서’라는 수많은 이유를 붙이면서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결국 취향을 오롯이 소유하는 것도 내 선택에 관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본인과 아주 친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티라미수가 운명처럼 다가왔다고는 하지만, 심규리 호스트님이 동반자 같은 취향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본인을 잘 알기 위한 숱한 과정을 겪었기 때문일 거다. 나를 잘 알기 위한 노력과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든든한 편이 되어주는 것, 그때 나만의 취향은 시작되고 확고해진다.
*심규리 호스트님 남의집 모임 보기 > https://bit.ly/3EDav5O
*내 취향으로 모임을 열고 싶다면, 호스트가 되어보세요! > https://bit.ly/3VlGP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