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

by 기림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를 다시 보았다. 제목 그대로 사랑을 뜻하는 이 작품은 노년의 부부가 서로의 마지막을 지켜내는 이야기다. 피아니스트였던 아내 안느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서서히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고, 남편 조르주는 끝까지 그녀를 돌본다. 그러나 그 사랑은 로맨틱하거나 감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버텨내야 하는 삶의 무게다. 영화는 화려한 회상도, 눈부신 낭만도 없이, 병실 같은 집 안에서 두 사람의 고통과 사랑의 풍경을 기록한다. 조르주는 연민이 아닌 존엄을 선택하며 돌이킬 수 없는 결단을 내리고, 남은 것은 빈방의 고요뿐. 그 고요는 관객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오래도록 메아리친다.



영화를 보며 나는 그날을 떠올렸다. 2025년 1월 3일, 시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날.

병원 장례식장 한쪽에는 문상객을 맞느라 지친 가족들이 번갈아 몸을 내려놓는 작은 방이 있다. 반가운 얼굴일지라도 이별을 앞에 두고 마주하는 일은 절대 가볍지 않다. 나는 그 방 안에 들어가 숨을 한 스푼 내쉬고, 열 스푼 들이마시며 아버님의 부재를 가슴 깊이 채워 넣었다. 그때 딸아이가 내게 악뮤의〈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틀어주었다. 사랑은 할 수 있어도 이별까지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직설적인 물음은 장례식장의 적막한 공기 속에서 한층 더 짙어졌다.



영화 <아무르>에는 슈베르트 즉흥곡 3번이 깔린다. 건반 위의 왼손은 시간을 지탱하는 단단한 기둥이 되고, 오른손의 멜로디는 그 위에서 대화하듯 섬세하게 흔들린다. 절제된 아르페지오의 물결은 서로를 바라보는 부부의 침묵과 닮아있다.

악뮤의 노래가 현실을 정직하게 묻는다면 슈베르트의 음악은 그 현실을 담담하게 감싸 안는다. 두 음악은 서로 다른 시대의 언어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하고 있다. 사랑은 이별과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다시 아버님을 되새겼다.



예전에 남편과 싸우고 힘들어할 때가 있었다. 우리는 잠시 떨어져 생각해 보자고 한 후, 남편은 시댁으로 옮겨갔다. 다음 날 시아버지께서 찾아왔다. 아무 말씀도 안 하고 의자에 앉아 조용히 기도만 하고 돌아갔다. 그다음 날도 찾아왔다. 아버님은 기도를 마친 후 어렵게 입을 여셨다.

“미안하다. 얘야”

“아버님이 뭐가 미안해요. 남편과 제 문제죠”

“내가 잘못 키웠다. 내 잘못이야. 아들을 잘못 키워서 미안하다.”

“..........”

“나를 용서해 다오.”

그의 표정에서,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수정보다 맑고 바윗돌처럼 무거웠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찾아왔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친정아버지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사과다. 어른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꺼내는 법이 없다고 믿어왔는데 시아버님은 아무 잘못도 없이, 그것도 아주 많이, 그것도 진심을 담아, 날마다 미안하다고 한다.

내가 심장 수술하고 입원해 있을 때도 아버님은 매일 찾아왔다. 다른 손님이 있을 때는 병실에 들어오지 않고 문밖에서 기도하고 돌아갔다고, 곁에 있는 분이 알려주기도 했다.



영화 속 조르주는 아내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함께 무너져간다. 아버님은 내 곁에서 이유 없는 사과를 반복하고,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서 기도를 남겼다. 한쪽은 영화의 장면이고 다른 한쪽은 내 삶의 기억이지만, 둘 다 같은 진실을 증언한다. 사랑은 화려한 언어가 아니라 끝까지 곁에 머무는 행위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시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아들을 비추는 깊고도 고요한 우물임을. 며느리는 단순한 타인이 아니라 아들의 삶이 투영된 또 다른 얼굴이다. 그 속에는 아들을 향해 흘러온 물줄기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그 깊이는 일시적인 애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품고 어루만진 생명의 샘의 원천이다.

아무르의 사랑은 한 생의 끝자락에서 촛불처럼 타올라 사라졌다면, 시아버지의 사랑은 우물처럼 세대를 이어 번져갔다. 하나는 끝을 밝혔고 다른 하나는 다음을 적셨다. 두 사랑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결국 인간을 지탱하는 사랑의 정수로 남았다.



헤드폰을 끼고 러닝머신에 올라탔다. 발밑의 벨트는 끊임없이 회전하고, 등줄기에는 땀방울이 쉼 없이 흘렀다. 노래는 귀를 가득 채우며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을 불러냈다. 심장 수술의 흔적 때문일까? 박동수는 점점 빨라지고, 호흡은 거칠어지고, 눈에 고인 눈물은 땀방울과 뒤섞여 떨어져 내렸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