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자랑, 농자의 농심기 01
도심 속 열일곱 소녀, 농심의 길을 걷다
1. 도심 속 열일곱 소녀가 농심의 길을 걷기까지
응원의 말보다 쓴소리가 더 컸던 나의 고등학교 입학. 이유는 한 가지였다.
농업계열 고등학교를 진학한다는 이유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농업의 ‘농’자도 모르던 도심 속 학생이 하루 아침에 농업 고등학교 입학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돌아왔으니. 호통이 돌아올 만도 하다. 누군가 나에게 왜 농업 고등학교를 택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궁금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저 농업이 궁금했다. 매일 아침 먹는 쌀밥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서 식탁 위에 오는 건지, 그 과정이 궁금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한없이 재미있었다. 씨앗에서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배우기도 하고, 농기계, 농식품에 관련한 이론과 수업을 통해 평소 차고 넘쳤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 어찌나 두근거리던지, 그 설레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루는 어머니가 농업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 딸, 졸업하면 뭐가 되고 싶어? 농사 지을거야?” 한참을 머뭇거렸다. 나는 내 꿈을 자세히 그려본 적이 없었다. 정녕 나는 농부가 되고 싶어 이 길을 택한 걸까? 당시 고구마 하나 길러본 적 없었던 나는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어머니의 질문을 듣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즐거워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평생의 꿈을 찾기 위해서 내가 택한 것은 ‘경험’이다. 내가 당장 겪을 수 없는 경험은 간접 경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직접 발로 뛰는 진짜 경험으로 나는 꿈을 찾아 나아가기 시작했다.
2. 농업은 빨간색이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내가 쌓을 수 있는 경험은 한정적이었다. 먼저, 내가 당장 할 수 없는 “농사”, “농촌의 생활”에 대한 경험을 쌓기 위해 농업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2017년, 귀농 귀촌이 떠오르던 시대. 도시민들의 농촌 유입률이 점차 높아지기 시작하고 ‘청년 농업인’이라는 말이 생겨나면서 농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귀농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과 미래의 농업 꿈나무들을 모아 시작된 첫 번째 강의의 제목은 ‘농업은 빨간색이다’ 였다.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초록빛으로 가득 물든 농촌을 사랑해서 모인 사람들을 데려다 빨간색 농업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농촌에서의 생생한 이야기이자 하나의 경고로 들려왔다.
첫째, 농업을 만만하게 보지 말 것. 감히 이 세상에 귀중하고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던가. 단지 그 마음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농업을 쉽게 생각하고 뛰어들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로 느껴졌다.
둘째, 농업에 열정을 불태울 것.
빨간색이 부정적인 이미지만은 아니다. 여느 직업이 그렇듯, 언제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오를 때가 있다. 그러나 그때, 포기가 아닌 열정으로 불태울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의 메시지가 강의의 진짜 숨은 뜻이 아니었을까.
3. 농촌과 도심, 도시민과 농업인
나에게는 실전이 필요했다. 농업 고등학교지만 광역시 중심에 있었고, 농업인을 만나려면 차로 한시간 정도 걸려서 도심 외곽으로 나가야 했다. 농업인을 만날 기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적었다.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나보다 더 큰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 내가 할 수 있는 한 농업인을 만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농업 활동과 현장 실무 실습을 병행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연구일지 작성과 활동에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나보다 더 치열한 삶을 살고 계시는 농업인분들을 보며 오히려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나무가 빨갛게, 노랗게 물들여지던 가을. 나는 논산에 있는 한 농가에 배정받아 실습을 하게 되었다. 가을 햇살 같이 따뜻하게 반겨주시던 농가 대표님의 미소는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도심 속 학생이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러 와준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고 늘 말씀하셨다. 자신이 아는 것 이상으로 가르쳐 줄 수 없음을 미안해하시고, 국내 농업 발전을 진심으로 바라며 기여하고 있는 멋진 분이셨다.
이와 동시에 또 다른 농가 실습을 병행했는데, 이 농장 인근 농업인분들은 대다수 도시민에 대한 경계심이 심하셨다. 어린 마음에, 농업인분들의 가시 돋친 말과 행동이 괜스레 서운하기도 했다.
어느 날 농장에 놀러 온 지인분이 말씀하시기를, 한때 이 마을에는 귀농 귀촌을 하러 온 도시민들이 즐비했더랬다. 처음에는 너무 반갑고 기뻐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와줬지만, 한 해, 두 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다시 도심 속으로 떠났다고 했다.
그들이 농촌을 떠난 이유는 단순히 힘들어서였을 거라고 입을 모아 말씀하셨지만, 혹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농촌과 도심, 농업인과 도시민. 그 관계 속에서 도시민이 농촌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농업의 자랑, 농자의 농심기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