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생경(Jātaka)』의 한 대목에는 사막에서 길을 잃은 상단(商團) 이야기가 나온다. 목마름으로 죽어가는 이들 앞에 스승은 거대한 바위를 가리키며 그 아래 물이 있다고 말한다. 모두가 비웃으며 포기할 때, 스승을 신뢰한 한 제자가 망치를 들어 바위를 깨뜨린다. 결국 그 단단한 암반 틈에서 생명수가 솟구쳐 500명의 생명을 구한다.
이처럼 무겁고 단단한 현실의 바위를 깨뜨리려던 이들은 우리 역사 속에도 있었다. 1907년 2월 21일, 대구의 서상돈 선생 등이 시작한 국채보상운동이 그러하다. 나라의 빚을 갚기 위해 부녀자들은 비녀를 뽑고 선비들은 담배를 끊었다. 그것은 단순히 돈을 모으는 행위가 아니라, 무너져가는 나라를 세우고자 한 절박한 '마음의 결사'였다.
순야옹은 그 붉은 열망을 기억하며 양산 통도사 무풍한송길에 섰다. 솔바람이 춤을 춘다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자장매(慈藏梅)라 불리는 홍매화가 붉은 숨을 터뜨리고 있다. 유튜브 속 화려한 사진들보다 직접 마주한 꽃잎의 색은 훨씬 더 깊고 처연하다. 119년 전 오늘, 비녀를 내놓던 어머니들의 마음이 저리 붉었을까 싶다.
산사의 한적한 벤치에 앉아 멀리 들려오는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다. 배낭을 열어 해묵은 수행의 도반들을 꺼낸다. 뜨거운 물이 담긴 스테인리스 보온통, 그리고 거름망이 달린 유리 표일배(瓢逸杯)다. 표일배 안에 잘 갈무리해 온 보이숙차 찻잎을 넣고 보온통의 물을 천천히 붓는다. 찻잎이 뜨거운 물에 몸을 풀며 진한 갈색을 뿜어낸다. 윗부분의 버튼을 누르자 우러난 찻물이 맑은 소리를 내며 아래 공도로 내려간다.
그것을 다시 투명한 유리 찻잔에 옮겨 담는다. 잔 속에서 일렁이는 붉고 진한 보이숙차의 갈색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물 너머로 인당수의 차가운 물속으로 몸을 던진 심청이 보인다. 사람들은 그녀가 죽으러 갔다고 말하지만, 순야옹의 눈에는 그녀가 진정한 '삶'을 찾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심청이 바란 것은 공양미 삼백 석이라는 결과가 아니었다. 아버지를 향한 그 지극한 마음, 그 순수한 일념이 이미 그녀를 구원하고 있었다. 이는 『법구경』 1권의 서문을 여는 눈먼 수행자 '짜꾸빨라'의 이야기와 본질이 같다. 짜꾸빨라는 육신의 눈을 잃었으나 마음의 눈을 떠 성자의 반열에 올랐다. 심청 또한 자신의 육신을 던짐으로써 아버지의 눈을 뜨게 했으니, 결국 세상의 모든 기적은 바깥의 힘이 아니라 안에서 솟구치는 지극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투명한 유리잔 너머로 비치는 갈색 찻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며 쌉싸름한 진리를 전한다. 『법구경』은 말한다.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라고.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림자처럼 따른다고 말이다. 16년 동안 이름 없이 쌀을 날랐던 강릉의 기부자나, 나라를 위해 소중한 것을 내어놓은 119년 전의 민초들이나,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던진 심청이나 그들은 모두 같은 길을 걷는 도반들이다.
홍매화 꽃잎 하나가 바람에 날려 나무 옆 석조(石槽)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수구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이 꽃잎을 실어 나른다. 꽃은 스스로 붉어지려 애쓰지 않는다. 다만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른 생명의 마음을 숨기지 못할 뿐이다. 순야옹은 이제 알 것 같다. 내가 오늘 통도사까지 걸어온 이유도, 결국 내 마음속에 피어 있는 붉은 꽃 한 송이를 마주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홍매화 붉은 꽃잎 속에
심청이 가라앉은 푸른 바다가 있고
나라 빚 갚으려 비녀 뽑던
어머니의 하얀 손길이 머문다.
보이차 식어가는 줄 모르고
바라본 저 꽃 한 송이
결국 내 마음이 피워낸
붉은 눈동자였음을 이제야 알겠다.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
마음은 주인이 되어 모든 일을 시키나니,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른다.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이. (『법구경』 제1장 쌍요품 중)
길 위에서 만난 역사와 지혜의 문장이 당신의 주말을 포근하게 감싸 안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말,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차 한 잔 나누며
행복하고 평온한 시간 보내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