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야의 돋보기] 제3화
붉은 여왕의 경주

by 순야 착지

가(假)’의 세계에서 멈춰 서는 용기


월요일 아침, 쏟아지는 이메일과 쉼 없이 울리는 메신저 알림 속에서 우리는 다시 경주로에 선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혹은 제자리라도 지키기 위해 매일 숨이 턱에 닿도록 달린다.

최근 앨리스의 ‘거울 나라’ 서사, 그중에서도 붉은 여왕과의 질주 장면을 다시 보며 나는 섬뜩할 만큼 익숙한 현대인의 초상을 보았다. 그것은 천태 지의 대사가 말한 가제(假諦)를 심리학적 통찰과 함께 비추어 볼 수 있는 아주 선명한 돋보기였다.

인연 따라 성립한 상대적 조건을 절대적 기준으로 붙잡을 때, 우리는 본질을 놓치고 스스로를 소진한다.


달릴수록 제자리인 질주: 붉은 여왕의 역설

앨리스의 거울 나라 장면에서, 붉은 여왕은 앨리스의 손을 붙잡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다. 주변의 나무들과 풍경은 뒤로 밀려나고, 앨리스는 숨이 끊어질 듯 전력 질주한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다음이다. 한참을 달린 뒤 멈춰 서 보니, 앨리스는 여전히 출발했던 자리 근처에 서 있는 게 아닌가. 경악하는 앨리스에게 여왕은 차갑게 쏘아붙인다.


“여기서는 제자리에 머물고 싶어도 온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단다.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그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해.”


이 장면은 현대의 경쟁 사회를 설명하는 비유로 자주 소환되지만, 불교적으로 읽어 보면 끊임없이 변하는 상대적 환경 속에서 자기를 지키려 애쓰는 마음의 피로를 그대로 보여준다. 달리고 있는데 나아가지 못하는 감각, 애쓰고 있는데 더 불안해지는 감각이 바로 그러하다.


왜 우리는 멈추지 못하는가

이 기괴한 경주를 심리학의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우리가 왜 이 질주를 쉽게 멈추지 못하는지가 조금 선명해진다.

윌리엄 제임스의 ‘사회적 자아’와 비교의 굴레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자아 논의를 떠올리면, 인간은 타인의 시선과 인정 속에서 자신을 구성하는 측면이 큰 존재로 읽힌다. 특히 ‘사회적 자아’는 나 혼자만의 기준으로 서는 자아가 아니라, 늘 주변의 평가와 비교 속에서 흔들리는 상대적 지표의 성격을 띤다.

이 관점으로 보면, 우리가 경주에서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한 욕심만이 아니다. 멈추는 순간 내 가치가 사라질 것 같은 불안, 사회적 존재로서의 내가 축소될 것 같은 공포가 함께 작동하기 때문이다. 앨리스가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력 질주해야 했던 장면은, 바로 이 불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칼 융의 ‘페르소나’와 진짜 나의 소외

칼 융의 분석심리학으로 옮겨 보면, 이 비극은 또 다른 각도에서 보인다. 융의 언어로 말하면, 우리는 세상에 보여 주는 가면인 페르소나(Persona)를 유지하기 위해 너무 큰 비용을 치르고 있다.

붉은 여왕의 경주에서 지키려는 직함, 연봉, 평판, 이미지 같은 것들은 페르소나의 확장이다. 문제는 가면이 커질수록 내면의 중심은 오히려 더 비어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융의 관점에서는, 페르소나와 자신을 지나치게 동일시할 때 내면의 불균형과 공허가 깊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주로 위에서 느끼는 설명하기 어려운 갈증은, 단지 더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해서가 아니라, 겉의 가면을 지키는 동안 안의 삶이 메말라 가는 데서 오는 신호일 수 있다.


가(假)를 절대화하지 않는 ‘멈춤’의 지혜

천태 지의 대사는 우리가 목숨 걸고 붙잡는 이 상대적 세계를 가제(假諦)의 차원에서 비추어 본다. 여기서 ‘가(假)’는 단순한 거짓이나 무의미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인연 따라 잠시 성립하여 분명히 작동하지만, 붙잡을 만한 고정된 실체는 없는 현상의 차원을 가리킨다.

문제는 우리가 이 상대적 조건을 ‘실체’로 오인하는 데 있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 뒤처지면 나는 끝난다"는 관념을 절대화할 때, 우리는 가(假)의 세계에 생사를 건다. 앨리스가 느꼈을 존재론적 피로 또한 그와 닮아 있다.

여기서 천태 교학이 제안하는 전환은, 붉은 여왕보다 더 빨리 달리는 기술을 익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경주를 떠받치는 관념 자체가 본래 공(空)함을 직시하는 일이다. 곧,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상대적 기준을 절대적 진리로 붙잡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패배의 주저앉음이 아니라, 한 걸음 물러나 숨을 고르는 멈춤의 용기다. 내가 경주의 손을 잠시 놓는 순간, 미친 듯이 나를 몰아치던 비교의 배경은 힘을 잃기 시작한다. 이것이 가(假)를 실체화하지 않는 공(空)의 눈으로 들어가는 해방의 단초다.

그리고 이 멈춤은 현실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다시 현실로 돌아와 관계와 일을 덜 휘둘리며 살아가기 위한 단단한 디딤돌이다.


나를 항복시키는 월요일의 돋보기

오늘 아침, 당신의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붉은 여왕은 누구인가. 타인의 시선인가. 아니면 스스로 만든 열등감과 조급함의 환영인가.

내가 붙잡고 있는 모든 가(假)의 조건들이 본래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잠시라도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붉은 여왕의 손을 놓고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멈춤은 탈락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 다시 보는 자리다.

이번 한 주, 남보다 앞서가려는 조급함이 올라올 때마다 앨리스가 숨을 고르던 그 자리를 떠올려 보라. 멈춰 선 순간에도, 당신의 존재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연재 알림]

<순야의 돋보기>는 매주 월요일 아침 10시, 바쁜 일상 속 잠시 머리를 식히는 지혜의 스토리를 배달합니다.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이 짧은 글이 여러분의 마음에 투명하고 평온한 돋보기 하나를 놓아드리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