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립건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I Jun 27. 2024

입장(入場): 친애하는 C 작가님께.

2024년 2월 17일 토요일 J소장 올림.

친애하는 C 작가님께.


작가님 안녕하세요. J 소장입니다.


편지 받고 정말 반가웠습니다. 오랜만의 인사도 반가웠지만, 제안해 주신 내용이 너무 매력적이었고 제가 생각하는 부분과 공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지난해에 학생들과 함께 을지로를 연구하면서 이곳의 근간이 되는 건축 공간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작가님과 같이 들여다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라보는 곳이 비슷하면 자연스럽게 만나는 되는 신기함을 또 느낍니다.


편지를 읽어보니 작가님은 의도치는 않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을지로에 스며들게 되신 거 같습니다. 을지로는 그런 매력이 있는 공간인가 봅니다. 저도 그렇게 을지로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떻게 을지로를 만나게 되었고, 이곳의 가치와 저의 관점, 앞으로 함께 진행할 프로젝트의 리서치 방식에 대한 제 생각으로 답장을 써보고자 합니다.


제가 을지로를 처음 방문한 건 199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동대문 시장에 옷과 헌책을 사러 종종 갔었는데, 청계천 고가 도로 하부를 걸으면, 수많은 인파와 운송차량, 노점상 등을 마주쳤고, 이로 인해 정말 다이내믹한 곳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특히, 블록 내부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좀 더 을지로를 들여다본 기회는 2003년 학교 설계 스튜디오에서 청계천 복원을 고려한 도시설계를 하면서부터입니다. 이때 도시 곳곳을 돌아보고, 스케치하고, 조사하면서 을지로는 정말 복합적이구나, 넓구나, 리서치할 때마다 다른 것이 나오는 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이곳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경외감도 들었습니다. 다 이해할 수 없을 거 같았기 때문에 이곳이 쉽게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을지로에서 살아보거나 프로젝트 또는 연구를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의 관심사는 작가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사람들이 같이 만드는 건축과 도시입니다. 조금 더 설명한다면, 사람(들), 사회 구조, 시간이 도시와 건축과 어떤 관계를 맺고 서로 변화시키는지 찾고, 이로 인해 도시 문화의 현대성을 탐색하여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이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보다 지속적으로 다양한 모습의 삶을 포용하는 도시’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으로 저는 서울의 여러 곳을 학생들, 선후배 건축가, 전문가들과 함께 직접 발로 뛰고, 기록하고, 분석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대학 때 졸업작품을 했던 금호동부터, 우사단로, 가리봉동, 암사동, 동화동을 연구하면서 인식한 것은 이곳 중 대부분이 재개발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재개발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의 도시 변형을 꾸준히 제안하였지만, 을지로는 빨리 사라지지 않고 기다려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을지로는 너무 복합적이어서 얽힌 소유권들을 해결하고, 동의를 받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22년, 2 구역에서 포클레인이 기존 도시 조직을 깨끗하게 밀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긴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2023년 2학기부터 3번의 학기 동안 연세대학교 studio-X의 UNIT 2에서 학생들과 함께 을지로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여러 곳이 재개발되고, 2 구역이 사라졌지만, 18개월 동안 꾸준히 이곳의 가치를 기록하고, 재발견하고, 다른 방식의 비전을 제기하는 것은 지금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학기 동안 산림동을 중심으로 현재의 가치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을지로는 한 번에 알아보기 힘든 도시이다. 그래서 보면 볼수록 새로운 공간과 시스템이 보이고, 알아채는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한병철 철학자가 말한 포르노와 같이 투명하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과 다른 잃어버린 ‘에로스의 공간’과 같았습니다. 이 공간과 시간의 적층을 뚫고 연결하는 것은 생산과 삶을 위한 근접한 범위의 네트워크였습니다. 조선시대 도시구조를 기반으로 일제강점기와 1970년대의 고도성장기에 구획되고 만들어진 근대건축물이 삶과 함께 변형하여 자리 잡은 장소로 서울에서 또는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을지로의 적층된 공간과 시간, 그것을 뚫고 연결하는 근접 범위의 네트워크


이런 도시 공간은 다양성의 측면에서 대도시에서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만명 이상의 대도시민들이 다양한 공간에서 (비) 일상을 경험하고, 자극받고, 삶에 에너지를 만드는 것이 자발적인 삶 형성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양성’이 을지로 저층부의 산업 공간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작가님이 기획하신 ‘더 아트프라자’ 전시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한 번씩 우연히 마주친 독특한 갤러리들이 을지로 상층부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고, 단지 갤러리만이 아닌 예술생산, 공유, 향유하는 공간들이 보일 듯 안 보이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건축가인 제 관점에서 이 공간들이 매력적인 것은 자유로운 변형이었습니다. 기능적인 필요에 의한 단순 변형만이 아닌 작가, 기획자들의 삶과 공간에 대한 시각과 개념으로 구축되고 변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불특정적 형태의 라멘조 건물 또는 변형된 마츠야 건물의 가능성을 스스로 발견하고 각자의 삶의 조건과 연동하여 직접 바꾸어 나가는 모습에서 건축가의 작업은 이것을 인식하고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가졌습니다.


올해! 제안해 주신 대로 작가님과 함께 을지로 예술가들의 서사와 공간을 건축가 입장에서 해석하고 정리해서 아카이빙 하고 싶습니다. 이 과정은 아카이빙이기도 하지만 예술 공간들과 산업 공간들을 실줄과 날줄처럼 이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과 다름이 아닐 거 같습니다. 이것들이 쌓이면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을지로의 이야기와 소셜디벨로핑이 만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을지로의 다양성만큼이나 저희도 다양한 의견으로 진행하는 것도 중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씀 주신 바와 같이 이 작업은 작은도시이야기, 에이쿱의 Ja 소장님, 연세대학교 studio-X의 UNIT 2 학생들과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각 공간이 만들어진 이유, 삶과 공간에 대한 시각, 변형 방법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들을 직접 뵙고, 인터뷰하고, 공간을 직접 재는 것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작은 부분이라도 직접 경험하고 질문하는 방식이 우리만의 주체적인 시각을 만들어줄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작가님께서 우선 참여하실 수 있는 공간을 섭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작가님과 얘기하면 늘 즐거운 상상이 떠오르고, 무언가 잡힐 듯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2024년 2월 17일 토요일

 J소장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입장(入場): 친애하는 J 소장님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