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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팔아 불행을 사다

Unboxing Syndrome

by 하이경

원하는 음식을 주문하면 한 시간이 행복하고, 복권을 사면 며칠이 행복하며, 새 옷이나 구두를 사면 일주일쯤 행복하고, 차를 사면 여섯 달이, 집을 사면 일 년이 행복하다?

웃기는 얘기다. 말의 시점을 불행으로 편집하면 다음과 같다. 원하는 음식을 주문하면 한 시간 이후부터 불행하고, 복권을 사면 며칠 이후 (부도 여부가 드러나) 불행하며, 새 옷이나 구두를 사면 (식상 함에) 그다음 주부터 불행하고, 차를 사면 여섯 달이, 집을 사면 (다듬고 치장해야 하는 귀찮음으로) 일 년 이후부터 불행해진다.

수고 없이 대가를 지불하여 획득한 행복은 다소 짧거나 긴 어느 정도의 유효기간이 지나면 다시 불행의 감옥에 수감된다. 이러한 회귀현상(回歸現像)을 이름하여 Unboxing Syndrome 으로 칭한다. 쇼핑중독 증후군이나 박스개봉 증후군은 둘 다 점유욕과 소유욕에 근거하므로 동질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중독의 근원이 확실하다면 치료수단도 있음 직하지만 아직은 모른다. 이 질병은 세균과 바이러스가 근원이 아니라 허기진 영혼의 결손 벌충효과 (罰充効果)에 기인하므로, 마치 제 자신을 적으로 판단하여 스스로를 공격하고 있는 암과 흡사하다. 원인과 예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품의 전염 원인을 현대의학이 아직껏 밝히지 못한 이유와 박스개봉 증후군의 원인도 아직 오리무중이다. 다만, 무자격 전문가의 판단으로는 자존감 결핍에 따른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지목되어 항간에서는 지름병으로 칭하거나, 정도가 위험수위라면 질환의 종류로 치부되기도 한다. 알려진 치료 방법으로는 명상을 통한 자존감 회복 수련이나 축소지향적 미니멀라이징 (minimalizing) 일상화 수법이 있지만 둘 다 구체적이지 아니한 추상적 해법이기에 치료를 실행한다고 한들 완치가 쉽지 않고 재발이 다반사다.

그러나 지출가능한 자원이 충분하다면 부득이 바로잡아야 할 이유가 없고, 또한 불치의 질병으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점도 암과 흡사하다. 당연하게도, 암의 발병 원인은 병원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닌 진부화 내지는 노후화에 기인한 자연 발생적이자 예측불가의 질병이다. 하지만 현대의학에서 암이란 과거와 달리 100% 치료 불가의 영역은 결코 아니다.


나는 여기에서 거창한 무소유를 주장하거나 궤변을 동원하여 행복의 정의를 제멋대로 뒤집어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고, 더구나 에피쿠로스적 세계관이나 그러한 사상을 지닌 바도 없다. 다만, 암세포가 제 몸을 스스로 공격하듯 현재의 소소한 행복을 팔아 미래의 확실한 불행을 사는 행위는 올바르지 않다고 판단한다. 하기사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지만, 본시 없는 행복이란 추구하면 할수록 더욱 불행해지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소비가 미덕이라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까닭에 불필요한 소비 패턴을 무작정 탓할 수는 없다. 구두쇠나 수전노(守錢奴)가 아닌 다음에야 소박함이나 결핍함을 행복으로 여길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소비는 낭비와 차원이 다르므로, 제 스스로를 공격하여 불행을 자초하지 아니할 만큼만 저질러야 함이 현명하다. '박하지만 실한 복함'은 그래서 중요하다. 부족하나마 지니고 있다는 느낌의 행복이란 함부로 팔아치우는 게 아니다.


그리하여, 인생이 짧다는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살아보니 생각보다 인생은 길기만. 당장 죽어도 상관이 없을 만큼 끝내주게 살지 못하면 세상도, 사상도, 풍요도, 여유도, 모든 것이 짧기만 하고 못다 한 숙제처럼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은 참으로 많다. 이토록 어이없이 죽기에는 여한이 많다는 다른 뜻일 것이다.


인생 참 여한 없이 잘 살았다는 증거는, 아등바등 쪼잔하게 사는 게 아니라 존재의 유한성에 순응하여 있는 듯 없는 듯 가볍게 잘 죽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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