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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와 당의정의 충돌

옴니버스 콩트: 후일담을 포함한 에필로그

by 하이경

자서전을 집필하던 도중 극심한 섬망(譫妄) 증세를 보이던 박 교수는 몇 차례 정신과 치료를 마치고 정상으로 회복하였지만, 후유증으로 도회지를 벗어나 요양차 한적한 시골로 내려왔다. 인적이 드물어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박 교수가 칩거하는 통나무 집에는 족보가 의심스러운 강아지 한 마리와 통통하게 살이 찐 집고양이를 비롯하여 버려진 길고양이들이 함께 하였기에 그들과 사이좋게 동거하며 무료하면 책을 읽기도 하고 때로는 산책을 즐기며 그럭저럭 소일하며 지내는 참이다.


동구밖에 위치한 통나무집 근처에는 박 교수가 어릴 적 배웠던 동요처럼 아카시아와 사과나무가 어우러진 울창한 과수원길이 있었다. 읍내의 유일한 의료기관인 보건소 감염내과 정책과장으로 근무하는 간호사 출신 백 씨는 반려견을 앞세워 과수원길을 산책하다 종종 박 교수의 통나무집에 들르곤 하였다. 이 한적한 요양지는 박 교수의 부인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을이었고, 40대 초반인 백 씨는 부인과 먼 친척 사이였으니 서로 스스럼이 없는 사이였다.


보건소 정책과장 백 씨가 박 교수의 거처를 방문하던 날, 박 교수는 뭔가 훔쳐보고 있는 듯 어정쩡한 자세로 돌담 근처를 조심스레 주시하던 참이었다.

"교수님! 저 왔어요..."

"쉬잇! 조. 용. 히..."


검지로 입을 오므린 박 교수에게 다가선 백 씨가 "뭔데 그러세요..?" 라며 소곤거리니, 들릴 듯 말 듯하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지금 고양이가 산비둘기를 사냥하려는 참이야, 우리가 훼방을 놓으면 저 녀석이 사냥질을 그만둘지도 몰라요." 하며 짐짓 긴장되는 순간임을 설명하였다.


상황은 긴박했다. 산비둘기는 마당의 풀씨를 쪼아대며 바삐 종종거렸고, 바위틈에 완벽히 매복한 고양이는 잔뜩 자세를 낮추어 적당한 공격 기회를 노리는 듯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간파한 비둘기가 날개를 펼치고 퍼드득 비상하려는 순간, 고양이는 엄청난 점프력을 발휘하여 공중에 튀어올라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앞발로 산비둘기의 두부를 강타했다. 맥없이 추락한 비둘기는 거듭된 고양이의 난폭한 공격에 속수무책인 듯 보였고 이내 상황은 종료되었다.


"아휴, 취미도 이상하시네, 소름 끼치게 뭐 저런 걸 다 집중해서 관찰하시고 그래요...?"

긴박하고 쫄깃한 상황을 지켜보며 잔뜩 놀란 백 씨가 오싹 몸을 옹크리며 박 교수에게 푸념을 하자, 아직은 숨이 남아 있는지 불규칙하게 파닥거리는 비둘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 박 교수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저 녀석은 힘들게 먹잇감을 사냥하고도 포획물을 전혀 먹질 않아요..."

"...........?."

"그건 오로지 생명을 죽이는 순간적 엑스터시를 맛보려 사냥이라는 취미로 총질을 해대는 악랄한 인간들과 유사한 경우라고 보거든? 아 - 물론, 죽음 직전에서 탈출하려 몸부림치며 파닥이는 물고기의 처절한 몸짓을 손맛으로 즐기며 낚시를 취미로 하는 군상들과도 다를 바 없지 않겠어?"


힘들여 사냥을 해놓고도 포획물을 먹지 않는 고양이의 습성을 두고, 그건 아마 사람들이 고양이 사료를 너무 맛있게 만들었거나 아니면 사료가 풍족하다 보니 취식 본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겠느냐며 혼잣말을 이어가던 박 교수에게 보건소 백 씨가 거들었다.

"에구... 징그럽고 잔혹한 인간의 본성을 빗대어 말씀하시는 거로군요...? 아무리 고상한 척 한들 고양이의 본성을 개조한 장본인은 인간이라고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죠? 그렇죠?"


"사냥 본능이 진화하거나 혹은 퇴화가 되면 취미나 운동으로 둔갑하는 법이오. 마치 우리 인간들이 종족유지본능을 퇴화시켜 문화라는 이름의 고상한 쓰레기통에 폐기해 버린 것처럼 말이지..."


"교수님! 이쯤에서 원초적인 강의는 마무리하시고, 커피가 고픈 노처녀 구제하는 샘치고 맛있는 커피나 한잔 주시면 어떨까요? "


"그럴까요? 아하, 그러지 않아도 백 선생이 방문하면 평소 보살핌에 대한 은혜에 보답할 요량으로, 품질이 훌륭한 에티오피아산 모카커피를 지난주 공정가격으로 구매해 두었지요."


"공정가격 으로요...?"


두 사람은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처마 밑 탁자에 마당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았다. 이윽고 박 교수가 백 씨에게,

"그래, 요새도 남자를 사냥하러 다니는데 여념이 없으신가?" 라며 그녀에게 직설로 질문을 하니,


"없어요... 맘에는 안들망정 최소한 눈이라도 맞는 남자는 제 주변에서 이미 멸종을 당했나 봐요. 짚신도 짝은 있고, 하다못해 풍뎅이나 길고양이도 제 짝은 있는데, 유독 나만 없어요. 이러다가 남자에 미쳐서 게거품 물고 쓰러지는 일은 없겠죠..? "


"저번에 우리 안사람이 소개를 했다던, 그 훤칠하게 생겨먹은 투자회사 트레이너 그 양반과는 어찌 되었소? 어지간하면 못 이기는 척 자빠지지 그랬소?"


"제가 기를 쓰고 자빠트리려다가 그만 실패했어요... 미끼가 시들고 시원찮아서 그랬을 까요? 상황판단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사실은 너무 앞서 갔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게 쉽게 쫑날지 몰랐어요."


"상대방이 50% 만 마음에 차면 나머지 반은 살아가며 채워나가도 되는데... 경험상 사람들은 대체로 그 사람의 전부를 알게 되면 결국 헤어지게 되는 법이오."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나는 60% 이상인데, 상대방은 10% 미만이었나 봐요. 그래서 그만 제가 다급하게 서두르는 바람에 파투가... 여학교 시절 저를 좋아했던 남학생을 가차 없이 차버린 업보는 아닐까 하는 막연한 후회가 저를 괴롭히고 있어요."


"에헤... 그 반대는 아니고? 혹시 백 선생의 직업의식이 원인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냥 미친 척 속아 넘어가는 연습을 해보면 어떻겠소? 생물학적 차원에서 여성으로 태어났으니 적어도 씨는 받아야 할 것 아니요?"


"크크... 아무 놈이든 걸리기만 해 봐라! 내 기어코 그놈의 씨를 받고야 말리라, 이런 맘으로 말이지요? 농담이 아니라 이제는 어떤 놈이든 심지어 노숙자라도 대려다 함께 살고 싶은 제 마음을 이해는 하시겠어요?"


"하기는... 만사가 마음먹는다고 뜻대로 되는 법은 없지만, 무능한 노숙자 한 사람이 졸지에 로또를 맞게 생겼소! 아무리 다급해도 총총한 정신만은 단단히 챙기도록 하시오."

"제 스스로 판단해도 남자에 미쳐 몸부림치는 내가 짠하기도 하고, 더구나 이유 없이 점점 늙고 시들어가는 내 인생이 안쓰럽고 가련해요....., 더 늦기 전에 이 시골을 떠나 아무 놈이든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 봐야 할 것 같아요... 도대체 왜? 왜...! 나는 그 흔해빠져 정작 지구상에 50% 이상 분포하고 있다는 얼빠진 남자 하나가 왜 나만 없느냐고요!!"


"백 선생... 미끼가 너무 훌륭해도 고기는 물지 않고, 적당히 초라해야만 이게 먹을 것이구나! 하고 덥석 무는 법이오. 내가 보기에 백 선생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당당하며, 게다가 능력마저 출중하다는 얘기요. 그렇다고 욕심을 억제하여 원하는 것을 추구하라는 허튼 조언은 아니니 오해는 마시오."


"물론, 아무 남자든 어떤 남자든 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이도저도 아닌 가능성을 상실하게 되면 가임기간을 놓치기 전에, 까짓 거 어떤 놈의 정자라도 받아서 시험관 시술로 씨를 받을 작정이니..."


한바탕 서러운 하소연을 퍼붓고, 반려견을 앞세워 마을로 돌아가는 노처녀 백 씨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박 교수의 머리 위로 차가운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가을이 저물고 벌써 겨울이 오고 있다는 증거다. 고양이에게 희생을 당한 산비둘기의 사체를 앞마당에 묻어준 박 교수는 처마밑에 둔 고양이 밥그릇이 비어있음을 보고 사료를 챙기러 헛간으로 향했다. / 끝.


에필로그 : 미끼와 당의정의 충돌


쓸쓸하고 황량했던 겨울이 지나고 박 교수의 통나무집 동토의 마당에는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질척하게 변하고 마르기를 몇 차례 반복하더니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창가에 앉아 봄을 맞이하는 길고양이의 소란스러운 구애과정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물병원에서 이미 거세를 당한 집고양이는 현관문 앞에서 골골 졸고 있었다.

그때, 과수원길에 평소 익숙한 실루엣이 그의 통나무집으로 다가왔다. 보건소 정책과장 백 씨였다. 몇 달간 도회지로 나갔던 그녀는 지난가을과 비견되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눈에 띄게 수수한 차림, 화장기 없는 얼굴, 그리고 곁에는 반려견 대신 깡마른 길고양이 한 마리가 그녀의 발치에 따라붙어 있었다.


"교수님! 저 왔어요. 못 본 사이에 뼈만 남았죠?" 백 씨는 경쾌하지만 어딘지 쓸쓸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아이고... 백 선생, 몇 달 만인가! 그래 도시에서의 사냥은 성공적이었던 모양이오?" 박 교수는 읽던 책을 덮으며 물었다. 그의 시선은 백 씨가 데려온 길고양이에게 향했다.


"사냥이요? 아항... 교수님 말씀이 100% 맞았어요. 제 미끼가 너무 현란했나 봐요. 저를 본 남자들은 다들 주저하거나, 아예 덤비질 못하거나, 아니면 제 껍데기만 노리더라고요. 서울의 그 수많은 수컷 중, 제대로 된 놈들은 이미 멸종상태고 남아있는 건 쓰레기통의 잔반뿐이더군요."


백 씨는 처마 밑 탁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박 교수가 끓여 온 따끈한 모카커피를 기다렸다는 듯 허겁지겁 몇 모금 홀짝였다. 지난가을보다 수척해진 얼굴이었으나 표정만큼은 진지하고 자신 있어 보였다.


"그래서 전략을 바꿨어요."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지난번에 교수님이 말씀하셨죠? 적당히 초라해야만 이게 먹을 것이구나 하고 덥석 무는 법이라고? 그래서 그동안 제가 저를 편집하고 과감히 개조를 감행했죠."


"개조라니? 그사이 혁명을 하셨는가...?" 박 교수가 의아해했다.


"그러니까, 제 직업은 '보건소 정책과장' 대신 '읍내 자영업자(카페)'로, 제가 받는 연봉은 정확히 절반만 적었어요. 외모는 뽀샵 같은 필터 없이, 심지어 일부러 지치고 짠한 표정의 사진을 올렸죠. 제가 가진 모든 '미끼'들을 쓰레기통에 처넣고, 그냥 평범하게, 연애에 굶주린 노처녀를 당당히 전시했어요. 딱 50%만 채우는 상대를 찾기 위해서요."


백 씨는 길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세상에나! 그랬더니만 신기하게도, 이전에는 없던 반응들이 오더군요. 마치 허기를 참다 지친 짐승들처럼 저를 덥석 물려고 하는 남자들이 생겨났어요. 이 고양이처럼 말이죠. 배가 부를 땐 산비둘기를 놀이 삼아 죽였지만, 배가 고프니 제 발로 통나무집까지 따라붙잖아요? 본능이란 굶주림 앞에서만 진실이 작동한다는 걸 체험으로 배워가는 중입니다."


박 교수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봄이 내려앉은 마당 끝머리를 찬찬히 응시했다. 새싹이 돋아나는 곳, 지난 늦가을 고양이에게 희생당한 산비둘기를 묻어준 그 장소였다.

"결국, 종족유지본능을 문화라는 이름을 빙자하여 폐기처분한 건 맞는데...? 말하자면, 백 선생은 쓰레기통을 뒤집어 본능의 대상을 고른 거다 이 말이지요? 그래서 결과를 얻었소?" 박 교수의 목소리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네, 아주 실질적인 결과를 얻었어요." 백 씨는 희미하게 웃었다. "이번 주말, 제가 살아가며 50%를 만족시킬 만한 남자가 미끼에 낚여 읍내로 옵니다. 평범하고, 다정하고, 심지어 저의 '가짜 스펙'보다도 약간 모자라 보인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어요. 이번엔 넘어가는 척이 아니라, 진심으로 넘어가 볼 생각이에요. 생물학적 종족유지본능의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씨는 받아내야 하니까요."


"아하하... 백 선생! 꼭 무슨 무협지에 등장하는 풍운의 여걸 같소. 아무튼 중대한 결심을 축하합니다."


나이답지 않게 일견 씩씩하고 당당해 보이기까지 한 그녀는, 커피 맛이 정말로 훌륭했다며 박 교수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과수원길을 벗어나 읍내 방향으로 바삐 걸어갔다.

마당에 혼자 남은 박 교수는 쨍한 그러나 싸늘한 냉기를 품은 봄햇살 아래에서 이 역설적 상황을 곱씹었다. 고양이가 사냥을 취미로 삼았듯, 이제 인간은 짝을 찾는 본능마저 '전략적 기만'을 취미로 변질시켜 목적을 수행하는 시대가 된 것일까? 그러한 행위를 응원하고 있는 내 논리구조는 참일까? 그는 갸우뚱 고개를 저으며 다시 책을 펼쳤다. / 끝.


그동안 연작으로 개제해오던 옴니버스 콩트 전개를 여기까지 마감하며, 참고로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박 교수의 논문 한 편을 에필로그로 개제하였다. 인간의 언어란 당초 존재와 언어의 경계에서 만나는 상징적 사유의 결절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며, 또한 언어란 개념적 공명을 지녔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에 힘을 지니고 있다.


< 통합교양학부 역사철학과 교수 박 OO >


『“Mom”과 “몸”: 언어의 경계를 넘는 존재의 기원』

- 역사철학 관점에서 조망한 언어의 상징성에 대한 연구


❖ 초록(Abstract)

본 논문은 영어의 ‘mom’과 한국어의 ‘몸’이 언어적으로 무관한 어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적·존재론적 관점에서 중요한 상징적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루스 이리가레, 모리스 메를로퐁티,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이론을 중심으로, 어머니와 몸이 언어 이전의 기원, 말해지지 않은 존재, 그리고 생명의 장으로 기능함을 고찰한다. 더불어 동양철학의 몸 개념과도 비교하여, ‘mom = body’라는 언표가 단순한 언어유희를 넘어서 언어철학적·존재론적 통찰을 담은 기호임을 논증한다.

주제어: 어머니, 몸, 존재, 루스 이리가레, 메를로퐁티, 크리스테바, 동양철학,


1. 서론

현대 언어철학과 존재론의 경계에서 언뜻 우연처럼 보이는 단어의 조우가 철학적으로 깊은 함의를 지니는 경우가 있다. 영어의 ‘mom(어머니)’과 한국어의 ‘몸(body)’은 발음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어원을 지닌 단어이다. 그러나 이 두 단어는 모두 생명의 근원, 존재의 시작, 언어 이전의 실재라는 의미 층위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철학적 접면을 형성한다.

본 논문은 이 두 단어의 언어철학적 의미 구조를 해체하고, 그 기저에 깔린 상징성과 존재론적 구조를 재구성함으로써, ‘말해지지 않은 기원’으로서의 어머니와 몸의 위상을 조명한다.


2. 어원과 구조: 분리에서 접면으로

‘mom’은 인도유럽조어 méh₂tēr(mother)에서 파생된 단어이며, '엄마'라는 구어적 형태이다. 반면 ‘몸’은 한국어의 고유어로, 알타이계 언어와의 연관이 일부 제기되나 영어와는 어원적으로 무관하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이 두 단어는 모두 존재 이전의 지점, 주체 형성 이전의 공간을 지시한다. 따라서 이들의 관계는 어원적 병렬이 아니라 개념적 공명이라 할 수 있다.


3. 어머니의 몸: 루스 이리가레의 사유

루스 이리가레는 서구 철학이 남성 중심적 로고스 중심주의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이로 인해 어머니의 몸은 철학적 담론에서 배제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녀는 『거울의 방(197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양 사유는 어머니의 몸을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늘 수용체로 간주되었을 뿐, 목소리를 가진 주체로 여겨진 적이 없다.”¹

어머니의 몸은 생명을 생산하는 기원이자, 동시에 언어와 상징계로부터 배제된 ‘잊힌 장소’다. 'mom'은 바로 이 말해지지 않은 몸을 기호화한 상징이며, ‘몸’과의 접점을 형성한다.


4. 몸의 지각성과 세계의 개방: 메를로퐁티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1945)』에서 몸을 세계와의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지각의 조건으로 해석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나는 몸을 ‘소유’ 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몸이다.”²

어머니의 몸은 태아에게 있어 세계와의 첫 접면이자, 존재가 처음으로 열리는 장소다. ‘mom’은 이러한 몸의 장소성, 세계성과 연결되며, ‘몸’은 이를 구현하는 실제로 자리한다.


5. 크리스테바와 코라(chora): 언어 이전의 공간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시적 언어의 혁명(1974)』에서 플라톤의 코라 개념을 인용하며, 이를 언어 이전의 모태적 공간으로 재구성한다:

“코라는 생명적이고 모성적인 수용체이며, 상징계가 시작되기 전 주체의 기원을 담는 공간이다.”³

코라는 어머니의 자궁이자, 언어가 아직 개입하지 않은 혼돈의 근원지다. ‘mom’은 이 공간의 이름이며, ‘몸’은 그 실체이자 조건이다. 이 둘은 함께 상징계의 바깥에 위치하면서도, 언어와 주체 형성의 근원적 배경을 구성한다.


6. 동양적 사유와 몸의 생명성

동양철학에서의 몸은 기(氣)의 흐름과 더불어 우주적 생명력의 응결체로 이해된다.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몸은 하늘과 땅의 기운이 잠시 모인 임시의 그릇일 뿐이다.”⁴

이러한 사유는 몸을 단지 물질적 실체로 보지 않고, 존재의 흐름을 품은 장소로 본다. 또한 ‘모태(母胎)’라는 개념은 단순한 해부학적 의미를 넘어, 존재론적 기원을 함축한다. 이는 서구의 ‘mom’ 개념과 상징적으로 교차된다.


7. 결론: ‘mom = 몸’이라는 철학적 명제

‘mom’과 ‘몸’은 발음상 우연처럼 보이지만, 철학적으로는 존재론적 상징으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이 둘은 모두 생명의 기원, 말해지지 않은 실재, 존재의 첫 장소를 의미한다.

‘Mom is body’라는 문장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닌, 지워진 기원의 회복을 지향하는 철학적 선언이다. 언어의 표면에서는 분리되었으나, 개념의 심연에서는 하나인 이 두 기호는, 존재와 언어의 경계에서 만나는 상징적 사유의 결절점이 된다.


❖ 주석 (Footnotes)

Irigaray, Luce. Speculum of the Other Woman. Trans. Gillian C. Gill.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85, p. 14.

Merleau-Ponty, Maurice. Phenomenology of Perception. Trans. Colin Smith. London: Routledge, 2002, p. 151.

Kristeva, Julia. Revolution in Poetic Language. Trans. Margaret Waller.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4, p. 94.

『장자』, 「대종사 편」. 번역: 김월회, 『장자,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민음사, 2004, p. 85.


❖ 참고 문헌 (Works Cited)

Irigaray, Luce. Speculum of the Other Woman. Cornell University Press, 1985.

Merleau-Ponty, Maurice. Phenomenology of Perception. Routledge, 2002.

Kristeva, Julia. Revolution in Poetic Language.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4.

장자. 『장자(莊子)』. 김월회 역. 민음사, 2004.

김형효. 『몸과 생명: 동아시아 생명철학의 형성』. 문학과 지성사, 2002.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길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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