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른다는 거짓말에 대하여
왼쪽으로(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작동하는 시계는 없을까? 우리는 거의 매일 손목 위에서, 혹은 벽 위에서, 아니면 휴대폰 창에서 디지털로 쉼 없이 돌아가는 세 개의 바늘을 보며 산다. 시침, 분침, 그리고 초침. 이 바늘들은 마치 우주의 절대 법칙이라도 되는 양 일정한 속도로 우리의 삶을 '초' 단위로 분해하고 또 조각을 낸다. 하지만 이 정교한 기계 장치가 알려주는 시간이 사실 거대한 사기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가? 바늘 세 개가 만든 질서라는 환상의 기만! 오늘은 시간이 흘러간다는 순정품 거짓말에 대하여 고찰해보자.
시곗바늘이 세 개인 이유는 사실 인간 중심적인 편의에 불과하다. 농경 시대에는 해시계의 시침 하나로 충분했고, 산업화가 진행되며 분침이, 근대 과학이 발달하며 초침이 덧붙여졌다. 즉, 시곗바늘의 개수는 우주의 진리가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더 조밀하게 시간을 착취하고 관리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는 욕망의 그림자이자 곧 지표다. 우리는 이 세 개의 바늘이 만드는 규칙성에 속아,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절대적으로 흐른다는 엉터리 믿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틀렸다. 그건 아인슈타인이 폭로한 시간의 민낯 때문이다. 그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통해 이 믿음을 산산조각 냈다. 시간이란 멈춰 있는 강물이 아니라, 중력과 속도에 따라 출렁이는 고무줄과 같다. 중력이 강한 곳에서의 시간이란 점성이 높은 끈적한 액체처럼 느리게 흐르고, 지상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시간의 속도는 빨라진다.
실제로 당신의 머리는 당신의 발보다 아주 미세하게 더 빨리 늙고 있다. "지금 몇 시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우주에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표준 시계'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흐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우리들의 의식이다. 현대 물리학의 '블록 우주론'은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는 이미 4차원 시공간이라는 거대한 덩어리에 동시에 존재한다. 영화 필름에 모든 장면이 이미 인쇄되어 있듯, 우리의 미래도 어딘가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는 영사기의 빛이 필름을 훑고 지나가듯, 우리의 의식이 그 시공간의 단면들을 차례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곗바늘이 오른쪽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왼쪽으로 돌아가는 시곗바늘은 없는가?) 우리의 인지 능력이 우주라는 거대한 지도 위를 한 방향으로 여행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치사한 결론이건만, 그 결론은 이렇다. 시계를 버리고 우주를 보라...
시곗바늘은 우리에게 효율적인 삶을 선물했지만, 동시에 시간의 본질을 흐리는 장막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착각이라면, 우리가 매달리는 1분 1초의 조급함도 결국은 허상에 불과하다. 가끔은 바늘이 세 개나 달린 정밀한 시계를 벗어던져 보자. 바늘이 하나뿐인 시계를 보며 시간의 여유를 갖거나, 혹은 아예 시계를 지워버리고 오롯이 나만의 시공간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우주는 당신의 시계가 째깍거리는 속도에 전혀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위 사진은 필자가 직접 고안하여 제작한 아날로그 시계로서, 12분에 한번씩 왼쪽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지만 현재의 시와 분을 정확히 나타낸다. 귀엽게도 하루에 몇 분씩 늦거나 혹은 빠르지만 정전이 되지 않는한 시계가 죽은적은 없다. 징그러운 초침과 분침이 없기에 조급함에서 탈출하기 쉽고, 숫자판 대신 물리 상수를 채용하고 있으므로 우주를 조망하기에 적합하다.
이 아날로그 시계를 핸드 메이드로 제작하려면, 초소형 정밀 감속기(1:720)와 릴레이 타이머가 필요하다. 부속 두 개의 가격은100만 원을 훌쩍 호가하지만, 명품의 속성은 본시 불합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