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박제된 영광과 위선적 가치의 덫
한때 유럽은 세계의 중심이었고, 파릇하던 시절 내가 꾸던 꿈의 나라와 도시였다. 하지만 지금 유럽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묘한 불일치가 존재한다. 여전히 파리의 거리는 낭만적이고, 독일의 공학 기술은 거창하고 정밀해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100년 전 대전쟁 직후 겪었던 거지 같던 시절의 기시감이 감돌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대전쟁 이후 피어난 유럽이라는 수려한 꽃은 기실 미국의 거대한 온실 속에서 피어난 지극히 정제되고 관리된 시한부 풍요였음을...
100년 전 유럽은 처참했다. 전쟁으로 한 세대의 청년층을 잃었고, 초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는 휴짓조각이 되었으며, 미국에 진 빚을 갚느라 허덕였을 따름이었다. 당시 유럽은 사실상 미국의 겹 살림방에 불과했다. 2026년 현재, 상황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엔 전쟁자본(달러)에 종속되었다면, 이제는 기술(AI·플랫폼)과 안보(NATO)를 미국에 완전히 저당 잡혔다.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믿고 있는 애잔함과 오만함이 남아있을 뿐, 실상은 미국의 전략적 선택에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어설픈 처지에 있다.
그들의 가장 뼈아픈 실책은 실리보다 명분에 집착하는 태도다. 유럽은 에너지 위기와 경제 침체 속에서 페르시아(이란)를 비롯한 유라시아의 거대 세력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었다. 이는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유럽적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명분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변화하는 지정학적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고집이었다. 적과도 장사하며 생존을 도모했던 과거 상인들의 기개는 사라지고, 텅 빈 주머니를 쥐고 귀족 흉내를 내는 몰락한 양반의 모습만 남았다. 유럽이 다시 살아날 길은 명확하다. 스스로 더 이상 세계의 리더가 아님을 뼈저리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대책이 절실하다고 판단한다.
바야흐로 유럽은 그들만의 '가치'라는 상품의 가격을 대폭으로 인하해야 한다. 누구도 인정하지 아니한 도덕적 우월감을 내려놓고, 에너지와 자원 확보를 위해 페르시아를 비롯한 신흥국들과 실질적인 장사를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진입장벽으로 쌓아둔 규제의 늪에서 탈출해야 한다. 남을 가르치려 드는 규제(AI 법, 탄소세 등)로 혁신의 발목을 잡을 게 아니라, 100년 전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섰던 생존 본능을 일깨워야 한다.
마른 꽃이 될 것인가, 다시 잡초가 될 것인가? 유럽은 지금 조상들이 물려준 유산을 파먹고 사는 '박물관 경제'에 갇혀 있다. 박제된 꽃은 아름답지만 생명력이 없다. 유럽이 다시 피어나기 위해서는 과거의 거지 같았던 시절, 그 처절했던 생존 본능을 회복해야 한다. 품격 있는 쇠락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자존심을 버린 생존을 선택할 것인지...? 이것은 그들의 선택이다.
40여 년 전에 내가 경험한 고풍스럽고 찬란했던 유럽의 구석구석은 옛말이 되었다. 대륙 속의 바다라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유럽의 현재 시계는 100년 전의 그 절박한 갈림길 위에 서 있다고 판단한다. 차라리 시베리아 오지를 경험하고 또 가고싶은 여행지로 추가할 망정, 나는 지금 시들어가는 유럽을 갈망하지 않는다. 품위가 있어 본들 더럽고 불편하며, 고상한 잡범들이 우글대는 유럽은 걸레조각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