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완성하는 관계의 미학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열 달’을 꽉 채운 완벽함을 정답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남들보다 조금 일찍 세상구경을 나왔다는 이유로 칠뜨기(7개월), 팔푼이(8개월), 구달이(9개월)로 불렸던 이들은 과거 코미디의 단골 소재였다. 그 시절 우리가 그들의 어리숙함에 배를 잡고 웃으면서도 끝내 마음 한구석에 따뜻한 정을 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름 뒤에는 우리가 잊고 사는 ‘비움의 철학’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완벽함은 모자람을 이길 수 없다. 흔히 ‘약삭빠른 10할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늘 손해 보지 않고, 칼같은 논리로 상대를 제압하며, 빈틈없는 자기 관리에 몰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완벽함은 타인이 들어설 자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꽉 찬 잔에는 더 이상 채울 수 없듯, 빈틈없는 사람 곁에서는 긴장과 경계만이 감돌기 마련이다. 반면, 2할 내지 3할이 부족한 ‘팔푼이’나 '칠뜨기'는 그 모자람 덕분에 주변을 무장해제시킨다. 그가 보여주는 허술함은 타인에게 ‘나 역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주며, 그 빈틈으로 비로소 사람이 흐르고 정(情)이 고인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진리는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넘치는 똑똑함보다 슬쩍 모자란 어수룩함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절실한 것은 바로 이러한 ‘팔푼이 정신’이 아닌가 싶다. 이기려 들지 말고 져줄 줄 아는 지혜를 다시 배워야 한다. 바보처럼 보여도 실은 바보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로 상대를 굴복시켜 ‘승리’를 챙기기보다, 웃으며 한 걸음 물러나 사람을 챙기는 넉넉함이다. 문자 그대로 '허허실실'의 진리란 스스로 체험을 해봐야만 터득이 가능하다.
인간관계에서의 핵심은 스스럼없이 도움을 청하는 용기이다. “나 이거 잘 몰라, 좀 도와줘”라고 말하는 8푼의 솔직함은 상대를 주인공으로 대접하는 최고의 배려가 되는, 말하자면 계산기를 던진 진심이다.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다는 삭막한 등가교환 법칙을 깨고, 그냥 좋아서 퍼주는 순수함 이야말로 관계를 숨 쉬게 하는 진정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이해관계든 남녀의 관계든, 결핍은 모자람이 아니라 ‘빈방’이다. 따라서 칠뜨기와 팔푼이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세상을 품으려 했던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남겨둔 2~3할의 공간은 결코 채워지지 못한 결핍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온기가 머물 수 있도록 비워둔 ‘인간적인 여백’이기 때문이다.
똑똑한 머리는 세상을 놀라게 하지만, 어수룩한 가슴은 세상을 정으로 머물게 한다. 오늘 하루, 마음속 계산기를 잠시 내려놓고 ‘팔푼이’처럼 슬쩍 모자란 척 웃어보는 건 어떨까? 그 비워진 2할이나 3할의 틈 사이로 예상치 못한 인연과 진심이 스미듯 스며들지도 모를 일이다.
사족: 영리한 처신은 사람을 놀라게 하지만, 어수룩한 현명함은 사람을 머물게 합니다. 살아보니 아등바등 10을 채우려 애쓰기보다 그냥 2~3 쯤을 비워두는 8푼이 자세, 그것이 진짜 인간적 고수랍니다. 기록에 근거하면, 조선 초기 지략가인 '한명회'는 칠뜨기였고, 세기의 천재 '아이작 뉴턴'은 팔푼이 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