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고기와 복어회

죽음과 바꿀 수 있는 고기 맛의 미학 탐구

by 하이경

악어 고기는 미식의 영역에서 흥미로운 식재료인데, 이 맛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육지 동물과 바다 동물의 기묘한 경계에 있는 맛'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악어 고기의 특징을 구조화시키자면, 그 맛의 정체성이 불분명하여 닭고기인지 생선인지 도대체 애매하다. 경험자들의 흔한 평가는 처음에 닭고기 맛이 나는데, 끝 맛은 흰 살 생선이나 새우 같다는 점이다. 초입에는 닭 가슴살처럼 담백하고 가벼운 풍미가 먼저 들어오고, 씹을수록 개구리 뒷다리나 민물고기 특유의 흙내음 혹은 수중 생물의 감칠맛이 살짝 올라온다. 풍미를 표현하자면, 소고기나 돼지고기처럼 제 주장이 강한 육향보다는 양념을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난 '도화지'나 '백상지'같은 하얀 맛이다. 식감은 훨씬 독특하여 탱글탱글한 조직감으로 하여금 닭고기보다는 탄력이 있고 쫄깃하기에 굳이 비유하자면 닭고기와 갑오징어 중간 정도의 탄력으로 저항감이 느껴진다.


공학적 관점에서 입, 출력의 효율만을 따져본다면, 악어 고기는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꽤 훌륭한 연료라고 판단하며,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나 건강식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파충류임에도 불구하고 수중 생활 덕분에 몸에 좋은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다. 보통의 요리로는 얇게 썰어 빠르게 볶거나, 튀김으로 만들어 겉바속촉 식감을 살리는 경우가 많다. 혹여 동남아나 호주에 여행 계획이 있다면 식생활 문화체험으로 가히 추천할만하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경험을 해보면 "아! 이게 그 논리적인 닭고기 생선 맛이구나!" 하고 무릎을 칠 수도 있을 것이다.


악어 고기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발효시킨 요리가 있다는 얘기는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다. 보통 악어는 수중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박테리아 오염에 취약해서, 발효보다는 철저한 냉장 보관과 신선육 조리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효라는 메커니즘을 악어 고기에 적용하려는 시도나 이와 유사한 형태의 요리는 이미 개발되어 존재하는 모양이다. 중국이나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는 악어 고기를 발효시켜 액상 건강식품으로 만들어 판다는 소문도 있으니...

그렇다면 왜 '악어 젓갈'이나 '악어 김치'는 없을까? 발효까지는 아니겠지만, 염지 후 건조한 악어 육포는 '하이난 재래시장'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소금과 양념에 절여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생고기와는 다른 농축된 맛이 만들어지는데, 발효식품 특유의 콤콤한 맛보다는 쫄깃하고 짭짤한 풍미가 강하다.


홍어처럼 삭힌 악어 고기는 아마 지구상 어디에도 정식 요리로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혹여, 있다면 아마 지옥에서 온 맛일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시도된 적은 거의 없겠지만, 만약 누군가 악어 고기를 삭힌다면 그 결과물은 홍어를 삭힐 때 풍기는 암모니아 향과는 또 다른, 아주 강력한 화학적 충격일 가능성이 높다. 홍어는 몸속에 요소를 다량 함유하여 삭힐 때 암모니아가 생성되어 육질에 기생하는 유해균들을 몰살 시키지만, 악어 고기에는 그런 메커니즘이 있을 리 없다. 따라서 악어를 홍어처럼 삭히려면 별도의 미생물 통제 기술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다. 만약 발효에 성공한다면, 악어 특유의 탱글탱글한 콜라겐 조직이 발효과정에서 젤리처럼 변하면서 치즈의 풍미를 가진 농축된 닭고기 젤리와 유사한 괴물 같은 별미(?)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항간에는 '죽음과 맞바꿔 먹을 수 있는 맛'이라는 섬뜩한 표현이 있다. 이는 단순한 과장을 넘어, 인간의 욕망과 유한성이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주는 통렬한 문장이다. 이를 철학적으로 분해해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에게는 삶을 지향하는 본능(에로스)과 파괴와 죽음을 향한 본능(타나토스)이 공존하기에 극치감의 일치를 요원하는 현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가장 강렬한 최후의 쾌락은 종종 죽음의 공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맛을 탐닉하는 행위는, 생존 본능을 압도할 정도의 강력한 살아있음을 느끼고자 하는 미치광이의 역설적 시도로 보인다. 학명이 테트로도톡신으로 알려진 복어 독의 위험성을 알고도 이를 싱싱한 회로 즐기는 미식가들의 심리가 이 지점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는 '금기'와 '위반'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죽음은 인간이 피해야 할 가장 큰 금기지만 그 금기를 깨고 (죽음을 각오하고) 무언가를 취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세속적 생존을 초월한 성스러운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그 맛은 영양 섭취가 아니라 영혼을 뒤흔드는 종교적 체험에 근접한다고 볼 수 있다.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삶은 어차피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이다. 이는 논리적인 등가교환의 법칙으로서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그 끝을 앞당겨 지금 이 순간의 완벽한 경험을 취하겠다는 결단일 수 있다. 이는 무의미하게 연장된 삶보다, 밀도 높은 단 한순간의 강렬함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독특한 가치관의 표현 일 것이다.


인간의 감각이 수용할 수 있는 최대치의 쾌락이 만약 생존의 종말을 요구할 정도라면, 그 입력 데이터는 과연 어떤 형태일까에 관한 지적인 탐닉이 분명하다. 이런 현상은 시스템이 붕괴하기 직전 가장 화려한 출력값을 보고 싶어 하는 학적 호기심과도 닮아 있다. 죽음과 바꿀 수 있다는 맛이란, ‘나’라는 시스템의 보존보다 데이터(맛)의 입력을 더 우선시하겠다는 선언인즉, 생물학적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적 인간을 거부하고, 의미와 쾌락을 위해 목숨마저 도구로 쓰는 주체적 인간의 오만한 선언이기도 하다.

이러한 극단의 미학적 선택이 합리적인 시스템의 붕괴인지, 아니라면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고귀한 선택인지의 판단에는 다소 도덕적 이견이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또는 고도로 진화한 기계라면 도저히 할 수 없고 오직 인간만이 선택할 수 있는 극적이고 귀한 선택으로 봄이 타당하다. 이것은 시스템의 '효율'을 중시하는 기계적 논리로는 결코 도출될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찬연한 오류이기 때문이다.

기계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곧 서비스의 종료이자 데이터의 완전한 소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가치를 위해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는 선택은 알고리즘상 치명적 결함(Fatal Error) 일뿐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그 결함의 선택이란, 시스템을 초월하는 명멸의 특이점(정점)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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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광고 카피는 식품위생법위반 소지가 다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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