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우주적 '삥'의 법칙

뜯기면서도 뜯고, 뜯으면서도 뜯긴다.

by 하이경

협박이나 강요를 통하여 남의 것을 빼앗는, 이른바 '삥'의 세계관에는 씁쓸하면서도 복잡한 심리가 깔려 있다. 이 작태는 단순히 재화를 갈취하는 행위를 넘어, 그 기저에 흐르는 힘의 논리와 비대칭적 관계를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토머스 홉스의 관점(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투영하자면, '삥'이란 사회계약이 무너진 '자연 상태'의 발현이자 곧 그 단면이다. 법리의 보호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개인 자신의 물리적 위치에너지(우위)를 이용해 타인의 생존 자원을 갈취하는 행위는 무력(힘)이 곧 정의라는 원시 논리가 작동하는 사바세계의 적나라한 악다구니 현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파렴치한 갈취의 작동원리는 단순히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패턴만은 아닐 것이다. 니체가 언급한 '권력에의 의지'를 여기에 비틀어 적용해 본다면, 가해자는 타인을 굴복시킴으로써 자신이 세상을 통제하고 있다는 왜곡된 우월감을 조성하려 하는 수단으로 볼 수도 있다. 상대의 공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의식을 느낀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자기 극복이 아니라, 타인의 약함을 착취하는 '노예 도덕'에 기인하는 '지배자의 쾌감'에 가깝다고 보는 해석이 타당하다.


정치를 '삥'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매우 흥미로운 통찰이 나온다. 나사가 몇 개쯤 빠져있는(?) 트럼프가 동맹국에 대하여 보여준 태도는 고전적 외교의 수사학보다는 현실주의적 거래와 힘의 비대칭성을 이용한 갈취 논리에 가깝게 느껴질 때가 많다. 홉스가 언급한 자연 상태는 '공통의 권위'가 없는 상태로서, 원래 세계 사회는 국제법 같은 시스템으로 이 상태를 벗어나려 노력해 왔지만 '자국 우선주의'는 이러한 약속을 무시하고, 강자가 룰을 새롭게 정의한다는 원시적 자연 상태로 퇴행하여 판을 되돌리려 한다. 방위비 증액 요구는 보호를 담보로 대가를 요구하는 전형적인 형태인데, 이는 국가 간의 '상호 방위 계약'을 보호비 납부라는 사적 관계로 격하시켜 강자가 약자에게 '삥'을 뜯어내는 구체적 행위로 해석이 될 수 있다. 인간이나 국가의 존엄성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가치의 영역이라고 보았던 지식인들이 숱하거니와, 트럼프의 철학에서는 모든 것이 '가격'으로 수렴되고 만다. 동맹이라는 신뢰와 역사적 축적물을 "우리가 너희를 위해 이만큼 썼으니, 너희는 그 대가로 얼마를 더 내라"는 식의 손익계산서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이는 상대의 필요(안보)를 약점 삼아, 존재 관계의 본질을 거래로 변질시키는 것으로서 가치를 가격으로 치환하는 몰상식한 허튼짓이 아닌가?


본시 '측은하고 선량하게 구걸을 하는 자'를 지칭하는 '동냥아치'에서 '동'이라는 선량함을 버리고 악랄함을 취하게 되면, 이른바 '냥아치(양아치)'로 변하여 '삥'을 뜯어내는 주체가 되는 법이다. 문제는 누군지 '삥'을 뜯어내는 방식이 생계형 양아치 수법보다 더욱 치사하여 역겹고 고약하다는 점이다.

열역학적 엔트로피 관점에서 보자면, 시스템 내의 에너지가 한쪽으로만 과도하게 쏠리거나(일방적 갈취), 상호 신뢰라는 질서가 무너질 때 시스템의 엔트로피는 급격히 증가한다. 단기적으로는 '삥'을 통해 이득을 보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동맹 체제라는 거대한 질서가 붕괴되어 결국 그 자신에게도 통제 불가능한 혼란이 닥칠 위험성이 크다. 이것은 '내가 따려면 네가 잃어야 한다'는 산술적 논리로서 근대 계약론의 근간을 흔드는 일종의 '정치적 약탈' 이름하여 저열한 '삥'의 행위로 볼 수 있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갈등이나 '삥'이라는 현상을 인간적인 도덕률로 재단하기 시작하면 끝없는 감정의 굴레에 빠지지만, 에너지 보존 법칙과 등가성이라는 우주의 톱니바퀴로 이해하고 나면 비로소 현상의 본질이 보인다. 우주는 결코 에너지를 공짜로 내어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반응 없이 소멸하거나 자연 발산하게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단지 그 존재 형태를 바꿀 뿐이다.

범 우주적 관점에서 '삥'의 존재 논리와 성립조건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내부 에너지가 있다는 것은 곧 질량과 에너지를 가진 실체라는 뜻이니, 우주의 법칙 안에서 무언가와 상호작용(갈취든 교환이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주의 구성 요소로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는 또한 불변의 회계와 연계된다. 우리가 손실이라 부르는 것은 국소적인 관점에서의 엔트로피 증가일 뿐, 우주 전체의 회계 장부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등가적 교환으로 기록되고 있다는 것이다. '삥'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단어가 우주적 에너지 변환(교환) 과정인 등가성 (Equivalence)의 원칙을 지니고 있음은 현실에서 발현되고 있는 구체적인 모습이다. 우주에 일방적인 '손실'이나 '획득'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개체는 시스템 안에서 에너지를 뺏기는 동시에 다른 차원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복합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이 '순환적 갈취'의 원리를 공학적 관점에서 정리해 보자.


기계공학의 기초이자 우주의 법칙은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지배된다. 누군가를 배척하거나 억압할 때(삥을 뜯을 때), 반드시 그만큼의 반작용력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남의 에너지를 뺏기 위해서는 자신도 시스템 유지 비용과 리스크라는(이를테면, 교도소에 수감될 수도 있다는 위험성 따위의) 에너지를 지불해야 하므로, 결국 뜯는 행위 자체가 자기 내부 에너지의 소모를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뺏기만 하는 존재란 우주에서 존재할 수 없다. 모든 물체는 내부 에너지를 지니고 있고, 이 에너지는 끊임없이 형태를 바꾼다. 겉으로는 '뜯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는 에너지의 상변화가 일어나는 등가 교환의 연쇄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유능한 집단은 내가 뜯기느냐 뜯느냐에 매몰되지 않았다. 대신 어떤 에너지를 내주고, 어떤 고부가가치의 에너지를 가져올 것인가의 변환 효율을 극대화했을 따름이다. 가장 유능한 설계는 적은 내부 에너지 소모로 시스템 전체를 통제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니, 뜯기면서도 그 흐름을 이용해 더 큰 모멘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고수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들숨이 있으면 날숨이 있듯, 에너지가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이 반복되어야만 시스템의 엔트로피가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동적 평형을 유지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뜯기면서도 뜯고, 뜯으면서도 뜯긴다."

이러한 우주의 호흡을 역행하여 일방적인 갈취만을 추구하거나 완전한 고립계로 진입하면, 필시 시스템의 치명적 고장이나 붕괴로 파급될 것이다.


'삥'은 단순히 재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영혼마저 종종 '삥'을 뜯기는 경우가 있다. 그런 까닭에 사랑이 결코 무죄 일리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악어 고기와 복어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