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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Jul 17. 2021

과학기술은 진정 깡패인가?(5)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날카로운 양면성을 인정해야 한다.

  전기가 없어지는 세상을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현대의 문명을 말할 수 없다. 전기의 혜택을 마치 공기의 존재처럼 여기고 있는 우리에게 정전사태는 지옥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정전사태가 한 달간만 지속이 되어도, 우리는 상상이 아닌 현실의 지옥을 체험할 수 있다. 채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냉장고에 저장된 음식물은 부패가 시작 될 것이고, 문명의 혜택이던 TV는 물론 컴퓨터나 휴대전화까지 먹통이 될 것이다. 지하철을 위시하여, 모든 교통시설과 통신시설은 물론이고 사회기반 통제시설까지 먹통이 되면, 당신의 출퇴근마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가사, 출근을 한다고 해도 무엇을 할수가 있을까? 그동안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있었겠지만 놀랍게도 전기야말로 과학기술의 총아이다. 전쟁이나 테러에 의하여 잠시나마 이것의 공급이 차단되면 뭘 해야 하며, 뭘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대인은 바보 천치 내지는 죄다 거지꼴을 면치 못하게 될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쯤, 세계 최초로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하여 대량생산을 시작하였던 미국의 헨리 포드는 빈번한 자동차 사고로 인한 참사, 차량 연료인 석유로 야기된 전쟁, 지구온난화 등의 폐해를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이러한 폐해는 작든 크든 친환경을 외치고 있는 지금의 자율주행 전기차량일망정 예외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에너지는 어디서 그냥 뚝딱! 공짜로 얻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TV를 비롯하여 컴퓨터를 만들어낸 과학기술자들은 이로 인한 질병, 비만, 학습저하, 주의력 결핍 장애, 게임중독 살인 따위 등도 역시 예측할 수 없었다. 어설픈 음모론 중의 하나라고 알려진 프레온 가스로 인하여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고, 북극의 빙하 수천억 톤이 녹아내릴 것이라는 사실은 음모가 아니며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었다.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며 기술발전에 따른 피할 수 없는 이면이다. 우리는 결코 과학기술이 가져올 미래의 결과를 함부로 예측할 수 없다. 과학기술의 힘이 강해질수록, 강력함에 직접 비례하여 위험도 또한 더욱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과학기술의 폐해로 우리가 사는 작고 푸르스름한 별인 지구의 생명유지 능력을 우리 스스로 파괴한다면, 지구 탄생 이후 지금껏 일구어온 인간들의 경이로운 문명과 찬란한 업적들은 전부 쓸모없는 쓰레기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흔한 공상과학 소설의 줄거리가 아니라 공포스러운  현실이다.

  폭약(다이너마이트) 장사꾼이던 알프레드 노벨이 알량한 참회의 보상으로 주는 거액의 상금과 현란한 상패를 과감히 거부한 저명한 철학자들(대표적으로는 프랑스의 사르트르)도 있었지만, 라듐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마리 퀴리는 빛이 차단된 어둠 속에서 인디고 불루처럼 은은한 연초록 빛을 발하신비로운 돌멩이 라듐을 항시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그녀에게 노벨상의 영광을 안겨준 돌멩이가 뿜어내는 방사능에 피폭되어 당시에는 원자병으로 알려진 악성종양으로 점차 피부가 괴사하여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던 기막힌 반전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를 지켜주던 충실한 칼 끝이 그만 나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을 때가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미국의 수학자이자 테러리스트이며 반기술주의자이던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16번의 폭탄테러를 통해 3명을 살해했으며, 23명에게 치명적 부상의 고통을 주었는데, 그는 UC 버클리 대학교의 교수로 선임되어 기하학 및 미적분학 역사상 최연소 수학 교수(24세)가 되었지만, 불과 2년 뒤에 교수직을 사임하고 막강한 테러리스트로 전향을 하였다. 그는 사제 폭발물 제조방법을 순전히 독학으로 익혀 기술발전에 책임이 있는 기업가나 과학자들에게 우편물 폭탄을 배달하며 테러 행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가 테러리스트로 변한 이유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 사회화로 하여금 그 반대급부로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박탈당하여, 인류는 결국 가축으로 전락할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조사된 사실에 근거하자면, 당시 카진스키는 조현병에 따른 망상장애 증세가 있었다고 전한다)

< 전설적인 테러리스트로 알려진 1995년 당시 카진스키 >

  수준 높은 지능과 냉혹한 판단력, 다양하고 복잡한 추진력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던 카진스키는 논문형식을 취한 자필 선언문인 ‘산업사회와 그 미래’ (클릭하면 한글판 원문에 링크)를 대형 언론사를 협박하여 투고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결국 가족의 고발로 몬태나주 숲에서 검거되었지만, 검거 과정보다 더 논란이 된 것은 카진스키의 인생 여정과 폭탄 테러 사이의 상관관계였다. 한때 천재적인 수학자로 대접을 받아온 중산층 출신의 인재가 도무지 어떻게 악질 테러범이 되었느냐에 한 심리학 분야의 논문들이 그의 검거 이후 엄청나게 발표되었다.

  그의 자필 선언문인 ‘산업사회와 그 미래’를 요약해보면 대수롭지 아니한 묵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분석과 독특함이 있다. 그는 우리가 처한 곤경의 원인이 바로 과학기술 그 자체임을 끈질기게 지적하고, 오늘날 우리가 겪는 심각한 문제들이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현대의 기술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 자유에 최대의 가치를 부여하고, 바로 이것이 기술에 의해 심각하게 위협당하고 있는 가치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과거의 어떤 비평가들도 이렇게 지적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혁명은 그저 엉뚱한 희망 사항이 아니라 비평의 핵심이다.

  악랄한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치밀한 연구결과들은 이유가 분명하고 신뢰할만하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은 매우 신중하고 전문적인 방식으로 인용되어 있다. 그는 감정에 호소하지 않았으며, 더구나 과장하지도 않았다. 원고의 내용을 분석 해보면 자신만을 위한 억지 이론을 만들지 않았으며, 과학기술 체제를 파괴하기 위한 치밀하고 구체적인 계획안제시하고 있다. 미시간 대학교 철학 교수인 데이비드 스커비나는 앞선 세대의 철학자들도 이미 카진스키에 앞서 비슷한 우려의 주장을 한 바가 있음을 지적한바 있다.       

우리는 기술에 둘러 쌓여있다. 기술은 온 방향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뒤덮고, 그리고, 숨 막히게 한다. 기술은 우리 일상의 모든 행동을 결정하고, 형성한다. 어떻게 살지, 먹을지, 잠잘지, 출근할지, 그리고 어떻게 일할지, 어떻게 여가를 보낼지, 어떻게 정부를 운영할지, 어떻게 전쟁할지. 기술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심지어 우리가 왜 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기술과 그 결과물은 우리의 공기, 우리의 물, 우리의 경치, 그리고 우리의 신체에 존재한다. 21세기의 선진국들에서, 기술의 영향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데이비드 스커비나(David Skrbina)

 

  어떤 참신한 도구이건 모든 도구에는 피할 수 없는 양면성이 있다. 칼은 요리 도구일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사용해온 유용한 도구이지만, 반면 그동안 인류가 저질러온 전쟁의 역사에서 엄청난 인명을 살상하는 최고의 도구였음이 물론이다. 비근하게도 찬란한 과학기술의 다른 측면이 우리 자신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은 망상이거나 기우가 아니다. 혹여, 우리의 과학기술 체계가 우리들 스스로를 파괴할 단초의 씨앗을 품고 있지 않은지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불행하고 또 불가능한 사실일 수 있거니와, 어쩌면 그 단초를 제거하는것 만이 유일한 대책일 수 있다.


  이 시대에 우리는 과학기깡패를 초월하여 조폭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저 목도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과학기술자들은 휴머니스트라는 점이고, 복구 가능한 대책도 그들에게 해법이 있을 수 있기때문이다. 그리하여 모기소리 만큼이나 힘주어 강조하고 싶다. 과학기술은 통제불가의 깡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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