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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Dec 12. 2021

뭐가 보이는가? 목젖이 보인다!

과학기술자는 무식한 행동대장인가?

  누군지 내가 표현하고 있는 글의 제목이 더할 나위 없이 꼰대틱 하며, 심지어는 매우 진부하다는 소수의 의견이 있어서 살짝 비틀어 보기로 작정하고 부재를 원제로 채용하는 묘수 아닌 술수를 쓰기로 작정하였다.

  강자의 위선이나 약자의 위악을 보호본능 현상으로 파악하게 되면 퍽 흥미롭다. 악어의 눈물에 해석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조폭의 문신도 선입견을 배제한 미학적 차원의 재해석이 필요하다. 오늘의 에피소드는 오소독스(Orthodox) 스타일의 복서(Boxer)에 관한 아포리즘을 전개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칼럼에서 표현하고자 하는바 주제는 과학과 기술로 그 범주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은 피할 수 없다. 각설하고...


  과학 기술자가 지닌 목표는 사뭇 뚜렷하다. 그것은 발명이거나 혹은 발견에 있으니, 겨냥하고 있는 목표만큼은 매우 선명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과학 기술자들이 비록 목표(Aim)를 지니고 있건만  아쉽게도 목적을 전제하지는 않는다는 서글픈 점에 있다. 모든 행위에 있어서 목적이 올바르면 수단이나 방법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필시 그건 그렇지 않음을 폭넓게 이해해야 한다. 목적의 달성이라는 대전제에는 수많은 단계의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결코 말장난이 아니다. 목표와 목적은 전혀 의미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목표는 임무를 주체로 겨냥하는 타깃이 확실하지만, 올바른 목적은 성취에 있기에 수단이나 방법도 올바른 객체여야 함이 타당하며 소소한 다다름에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웃기는 건 인생의 목적이란 게 참으로 분분하고 또 소소하다는 점에 있거니와 거의 모든 인간들은 이것을 오해하여 엄청나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니컬 하지만 참으로 바퀴벌레가 깔깔 웃을 노릇이다.
   선량한 과학기술자들이 그들의 목표나 목적을 오도 할리 없겠지만, 문제는 과학기술자를 설계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상위 설계자들의 포악한 도덕성에 있다. 현재나 과거의 역사를 막론하고 거의 대부분 과학기술자들의 말로는 비참하거니와, 이들을 도구로 활용하는 설계자들이 마련한 화려한 감언이설에 어리숙하게 곧잘 속아 넘어간다는 점에 있다. 아래에 적나라한 메타포를 동원하여 사례를 소개한다.


  한정자 씨가 있었는데...(There was a semen...) 그는 그의 주인으로부터 무조건 강해야만 존재의식이 뚜렷한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적자생존의 논리를 주입식으로 교육받아, 철저하게 강인한 몸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심지어 강한 체력을 유지하려고 쉬거나 자는 시간마저 반납하고 온종일 헬스클럽에서 운동으로 땀을 흘리 같은 처지의 동료들이 빈둥거릴 망정 꾸준히 몸을 만들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목표를 겨냥하는 중대한 때가 이르렀는데, 바야흐로 경험해 보지 못하던 강력한 지진이 일고 드디어 운명의 문이 열리자마자 목표를 향하여 힘차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평소에 빈둥거리던 동료들이 남모르게 엄청난 힘을 기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사력을 다하여 앞으로 돌진하였지만 이미 그 보다 훨씬 앞선 수십여 명의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컥컥 숨이 목에 차오를 무렵, 앞서 달려가던 동료들의 뜻 모를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으악! 이상하다. 저건 뭐냐? "

"멈춰라! 목젖이 보인다!  으윽..."

"아뿔싸! 저건 목표가 아니라 목젖이다...!"

  그의 앞에는 무시무시한 목젖이 악마처럼 떠억 버티고 있었다.


  독설가 버나드 쇼는 말하기를,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There are two tragedies in life. One is not to get your heart's desire. The other is to get it.)

  욕망에 대한 참으로 씁쓰레한 고찰이다. 차라리 이룩하기 요원하던 까마득한 목표를 추구하던 그 순간이 더 행복한 시절이었을 수 있다.

  과학기술자가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오로지 목표만을 겨냥하다 보면, 느닷없이 목젖을 만날 수 있다. 생각 없이 뛰다 보면 미친개를 만날 확률과 동일하다. 비참하지만 이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벌어지고 있몹시 불편한 진실이다. 그렇다고 한들 이 세상에 결점 없는 완벽한 진리는 없다. 비록 있다한들 완벽한 것이란, 우리의 삶을 더 힘들고 더욱 지치게 만들 뿐이다. 


  결점의 진리에 관하여 석가세존이 열반 직전에 행하였다고 전해지는 마지막 설법은 그야말로 주옥같다.


"다른 어떤 것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를 섬으로 삼아 의지하며 살고, 진리를 섬으로 삼아 그 섬의지하며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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