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경 Feb 12. 2022

전무후무한 불후의 계책

당신의 퇴각로는 필요조건인가 충분조건인가?

  특이점(特異點, Singularity)이란, 수학적 객체가 정의되지 않는 지점이자 일반 물리학 법칙이 적용될 수 없는 기묘한 지점을 말한다. 이론적인 특이점의 부피는 0이며, 그 밀도는 무한대로 간주된다. 지구 밖 초거시세계인 우주의 어느 성좌에 있는 웜홀이라면 모를까 우리의 일상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현상이지만, 미시세계를 다루고 있양자역학에서 특이점을 정의하지 않고서는 해석이 불가능할 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물리학자 이외에는 아무도 함부로 이해할 수 없는 골치 아픈 양자역학을 배제하고, 일반적 특이점을 제시하고 있는 고대의 문헌을 언급하자면 개략 3,000여 년 전의 고전을 재해석하여 후대 송의 단공이 엮었다고 전해지는 병법 계략서인 36계가 있는데, 여기에는 유독 한 개의 계율이 나머지 35개의 계율과는 완전히 다른 이상한 특이점이 존재한다.

  그 내용인 즉슨, 병법의 최후는 연착륙(탈출)에 있다는 것이다. 전국시대 불후의 명저인 손자병법에서 그 내용 전부를 인용하고 있는 저 유명한 단공의 전쟁 계략서에 등장하는 최후의 전략은, 그저 도망이 상책이다 라고 어설피 알고있는 서른여섯 번째의 주위상 즉, 도주계이다.

  전쟁이나 싸움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 답은 획득이며 자유나 평화가 될 수 없다. 고대의 싸움은 매우 단순하여 ‘식량’과 ‘여자’의 획득이 목적이었으나 (목하, 21세기에 이 따위 언급은 페미니즘 추종자들에게 딱 비난받을 소리건만, 이 사실은 엄연히 역사적 증거가 있으니 껄끄럽지만 취소는 불가하다) 중세에 와서는 단순함의 차원을 벗어나 식욕과 성욕을 포함한 ‘도그마’와 ‘명예’였다. 전쟁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이기에 근세에는 이 모든 것을 소급 적용한 이른바 ‘이데올로기’싸움으로 번져갔던 자명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물론 현대의 싸움판은 일견 문명의 충돌 따위로 해석되거나, 지정학적인 지배구조의 문제나 국가의 경제적 손익의 논리 등등 그 이유가 복잡하고 다양하다.

  생존의 논리를 대입하지 않고서도 크건 작건 싸움은 피할 수 없을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싸워야 할 경우가 생기더라도 승산이 없는 싸움은 하지 않음이 상책이다. 이것은 수천 년 전의 계책서인 36계의 명료한 주제이다. 그러나 피치 못할 싸움에 처하여 기왕에 싸움이 시작되었다면, 정당하건 부당하건 치사하건 말건 원인과 이유를 따지지 말고 무조건 이겨야만 한다. 만약 패배를 하게 되면 처참한 비명횡사로 생을 마감하거나 팔자에 없던 노예로 전락하여 짐승같은 생애를 보내야 한다. 물론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 최선 이건만, 불가피한 국지전이나 선전포고 이후의 전면전일 경우라도 피차간 다소의 희생은 피하기 어렵다.

 

  싸움에 이기는 전략 36계는 고대의 전술과 병서를 망라하여 그 핵심만을 골라 남조 송(宋)의 명장인 단공(檀公)이 엮었다고 전해진다. 이 병서의 내용은 서른다섯 가지의 이기는 계략과 혹여 질 경우를 대비한 최후의 계략 한 개를 합하여 총 36 계책으로 완성되었다. 현존하는 병서중 으뜸으로 알고 있는 문헌은 물론 ‘손자병법’ 이건만, 으뜸의 병서에 지대한 모멘트를 가한 36계야 말로 시대를 뛰어넘어 현세를 살아가는 불후의 싸움 참고서(?)로서 가히 손색이 없기에, 여기에 축약된 해설과 원문을 간략히 소개한다.


제1계는 '만천과해(瞞天過海)'-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 / 제2계는 '위위구조(圍魏救趙)'- 강한 적은 분산시켜 쳐부순다. / 제3계는 '차도살인(借刀殺人)'- 살인을 하려면 남의 칼을 빌려서 한다.  / 제4계는 '이일대로(以逸待勞)'- 지치기를 기다려 기회를 잡는다. / 제5계는 '진화타겁(進火打劫)'- 불난 틈을 이용하여 도적질을 한다. / 제6계는 '성동격서(聲東擊西)' - 동쪽에 소리치고 서쪽을 공략한다. / 제7계는 '무중생유(無中生有)'- 쥐새끼도 모르게 감쪽같이 지나간다. / 제8계는 '암도진창(暗渡陳倉)' - 모르는 사이에 진창을 건너간다.'  / 제9계는 '격안관화(膈岸觀火)'- 기슭을 사이에 두고 불을 쳐다본다. / 제10계는 '소리장도(笑裏藏刀)' - 비수를 품었으되 겉으로는 상냥하게 대하라. / 제11계는 '이대도강(李代逃?)'- 작은 손해를 주고 대신 큰 이익을 노린다. / 제12계는 '순수견양(順手牽羊)'-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면 취하고 본다 / 제13계는 '타초경사(打草驚蛇)'- 막대기로 풀을 쳐 뱀을 놀라게 한다. / 제14계는 '차시환혼(借屍還魂)' - 죽은 시체에 혼을 입혀 부활을 시킨다. / 제15계는 '조호이산(調虎離山)'- 호랑이를 스스로 산에서 떠나게 하라. / 제16계는 '욕금고종(欲擒姑縱)'-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 / 제17계는 '포전인옥(抛? 引玉)'- 벽돌을 던져서 구슬을 얻는다. / 제18계는 '금적금왕(擒賊擒王)'- 도적을 잡으려거든 우두머리를 잡아라.' / 제19계는 '부저추신(釜底抽薪)'- 가마솥의 장작을 치우는 책략 / 제20계는 '혼수모어(混水模漁)'- 물을 휘둘러서 고기를 찾아낸다. / 제21계는 '금선탈각(金禪脫殼)'- 매미가 허물을 벗듯 껍데기는 남긴다. / 제22계는 '관문착적(關門捉賊)'- 도적은 출입문을 전부 닫고 잡는다. / 제23계는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 손잡고 가까운 곳을 공격한다. / 제24계는 '가도벌괵(假道伐?)'- 남의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친다. / 제25계는 '투량환주(偸梁煥柱)'- 대들보를 훔치고 기둥을 바꾼다. / 제26계는 '지상매괴(指桑罵槐)'- 뽕나무를 가리키며 회나무를 꾸짖는다. / 제27계는 '가치부전(假痴不癲)'- 바보인 척하면서 행동을 삼가한다. / 제28계는 '상옥추제(上屋抽梯)'- 지붕 위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운다. / 제29계는 '수상개화(樹上開花)'- 나무 위에 꽃을 피워 상대를 혼란시킨다. / 제30계는 '반객위주(反客爲主)'-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 / 제31계는 '미인계(美人計)'- 미인을 이용하여 적을 교란시킨다. /제32계는 '공성계(空成計)'- 성을 비우고 망루에서 거문고를 뜯는다. / 제33계는 '반문계(反問計)'- 적의 첩자를 역이용하여 역정보를 흘린다. / 제34계는 '고육계(苦肉計)'- 자기 몸을 상처를 내어 동정심을 유발한다. / 제35계는 '연환계(連環計)'- 두 가지 이상의 책략으로 적을 괴멸한다. / 제36계는 '주위상(走爲上)'- 전세가 불리하면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특이점은 최후의 계책인 제36계 '도망이 상책'이라는 주위상이지만, 이 계율이 뜻하는바 진정한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각자 느낌이 서로 다를 수 있으므로, 질문으로 마무리되는 주석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투에서 패배는 병가지상사이니, 항상 이길 수만은 없다. 그러나 국가의 존망이 걸려있는 전쟁은 자잘하고 흔한 전투와는 수위가 다르다. 적과 싸우다 항복을 해버리면 완전히 지는 것이고(100%) 협상으로 화친을 하면 조공을 상납해야 하니 반을 진 것이다.(50%) 끝까지 저항하여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패전이 역력하다면 즉시 도주하여, 적어도 목숨을 부지하면 그건 진 것이 아니다.(0%) 훗날을 도모하여 힘을 기르고 때를 기다려 다시 싸워 이기면 그만이다. 자! 그런데, 그대는 어느 곳으로 도망할 것인가?


  최후의 질문으로 완성된 마지막 계율에는 심오한 싸움 철학(?)을 접할 수 있다. 싸움에 임하려거든 적어도 탈출구는 있어야 한다는 언어도단이다. 난해한 문제는 죽기를 각오하는 배수진의 전략도 무시할 수 없는 최후의 계책 인지라 도망할 탈출구가 없으니, 이건 필요충분조건의 괴리이다.


현상 공개 공모 : 36종의 계략 중 실행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일단 성공을 하게 되면 전쟁 비용을 가장 경제적으로 치를 수 있는 효과적이고 치명적인 계략은?

정답! 미인계(美人計)? 아니면, 공성계(空成計)?

(현상금 및 정답자 발표는 국가기밀에 해당하므로 보안상 비밀에 붙임)

작가의 이전글 명품의 속성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