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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Dec 10. 2022

그냥 손만 잡고 잤다.

살아보니 알 수 있는 것들의 가능성

  뽀뽀 말고 키스는 난생처음 해본 적이 없었기에 도무지 키스가 뭔지 모르던 시절,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겁박을 주었다.

"거부하면 안 된다. 만약 거부하면 자살하고 말 거야!"

  당시 그녀와 나는 순수하고 찬연한 시절이던 십 대의 막바지를 지나치던 나이였으니... 그녀가 내 요청을 거부하면 부끄럽고 뻘쭘하게 될 것이 나는 두렵고 두려웠다. 내 협박이 제대로 통했던지 다행히 원하던바 처음으로 여자의 입술을 훔쳤을 때 그토록 달콤하고 향기롭다는 것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나 아 이런 미친 오해 같으니...

  그것이 완벽한 오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듬해 늦가을이자 초겨울이었다. 쌀쌀하고 제법 건조한 일기 탓에 당시 그녀가 장미향의 립크린을 바르고 있었다는 그다지 비밀스럽지 아니한 사실을 일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기상상황에 따라 수시로 연착이 잦다는 허점을 생각하지 못한 섬 여행 끝에 통금에 임박한 시간대에 마지막 배로 육지에 다다른 우리는 난감하고 두려울 따름이었다. 버스 종점이 있던 배다리의 여인숙 앞에서 나는 그녀에게 서슴없이 제안을 하였다

"차도 끊어지고 이 시간엔 서울로 갈 수 없으니 파출소로 가거나 아니면 여기서 자고 새벽에 가자..."

  교교한  아래 한참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는 우두커니 고샅길에 서서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짐작 가능한 상황의 뻔한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그녀는 말없이 나의 뒤를 따랐다.

  형광등을 반으로 갈라 옆방과 조명을 공유하던 게딱지만큼이나 작은 쪽방에서, 둘 다 미성년인 우리는 절차가 복잡한 생산적 행위(?) 없이 아름답게 새벽을 기다렸다. 실로 찝찝하고 공포스러웠건만 천만다행으로 빈대나 벼룩에 물리는 참사는 없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것이 전부다. 이 대목에서 시비를 걸게 되면 피곤해진다!


  현상을 추정하되, 가능성이 다는 표현은 개략의 긍정이 아닌 99% 이상의 부정적 상황이 닥쳐올 수 있음을 뜻한다. 이건 비관과 낙관의 차이라고 판단하기 쉽겠지만, 적어도 정량적 결과치를 신뢰하고 있는 공학자에게 있어서 만큼은 함부로 남용하여 쓰지 는 형용어구나 추상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가능성을 백분율인 퍼센트로 계량하면 불가능성과 다를 바 없고, 필연이건 우연이건 일어날 사건의 전개 추정값에 불과하다.

  그만큼 가능성이란 재현성이 결여되어 검증되지 아니한 현상의 모호함을 에둘러 표현하여 쓰는 말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가능보다 가능성을 선호하는 이유는 인간적 설계결함 때문이 아니라, 듣는 이를 위한 배려로 판단해야 함이 옳다. 얼추 가능성이나 개략 불가능성에 부여된 의미가 선명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부정적 표현인 불가능성을 제시하여 이유없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할 필요없다. 그러므로 '가능성이 있다'라는 표현은 곱씹어 잘 새겨 들어 해석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예측한 가능성을 백분율로 가름하여 실현성이나 재현성의 결과를 판단하는 것은 이유가 분명하고 더없이 타당하건만, 이 산출 값이 검측의 범위를 탈출하여 엉뚱한 매개변수에 오염이 되면 기댓값이 증폭되어 불편한 동상이몽으로 변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가능성 1% = 불가능성 99%

지나친 기댓값에 오염이 되면 불가능성이 50% 이하로 감된다.


가능성 50% = 불가능성 50%

희망적 상황에 오염되면 불가능성은 1% 미만으로 평가되어 거의 사라진다.


  기댓값이 불분명하게 되면, 제나름대로의 엄청난 오해를 하게되는 경우도 있다. 상대에게 한번은 희망을,  한번은 절망을 선물하는 기댓값을 지닌 강력한 여파의 언급이 있다. 남편과 아내의 심하게 우스꽝스러운 다음의 대화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아내: 당신은, 내 일생의 로또야... 나는 횡재한거지.

남편: (황송해하며)고맙지만, 뭐 그정도까지는...

아내: 다만, 일주일에 한번씩 부도를 내서 문제지!

남편:(거듭 황송해하며)그런가...?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 만다는 머피의 법칙은 그 속성이 다분히 과학적 이건만, 이상하게도 가능성 1%의 상황에서 기가 막히게 딱! 들어맞는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 또한 반드시 일어나기도 하는 현상으로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불가능성 99.999%(가능성 0.0001%)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니 이 또한 알 수 없는 현상이지만? 그러나 반드시 벌어지는 기묘한 현상이다.

  살아보니 내가 알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들에 관하여 스스로 터득한 경험을 투사하여 계량해 보니 그나마 확실히 아는 것들은 채 1/10 이 되질 않았고, 이 나이 먹도록 어른으로 산다는 게 정확히 뭔지 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무엇이 어른의 조건인지 그것도 구분이 안되고, 내가 어른스럽게 산다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그른 판단인지도 확실하지 아니한 0도 아니고 1도 아닌, 0과 1사이의 난수처럼 나타나는 순환소수의 결정 불가 정보라는 점이다.

  겪어보니 검지도 희지도 아니한 잿빛의 회색으로 어른스럽게 산다는 것처럼 부담되고 치사한 일도 없다. 세파와 격류로 하여금 아무리 시간이 지나서 늙고 병들어간들 청량한 사고방식으로 우아하고 아름답게 홀홀 떠나고 싶은 소망이란 과한 욕심은 아닐 것이다. 안다는 건 기쁨이지만 모른다는게 혹여 행복은 아닐까?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외박 이후 새벽녘귀가한 그녀는 사건 이 오만가지 추론이 가능한 개연성과 99% 이상의 가능성에 근거한 잔인함으로 가혹한 나날인내해야 했다. 게다가 매우 중증의 가톨릭 환자였던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야훼를 대변하는 본당의 신부님께 고백성사까지 마쳤노라고 다. 그냥 손만 잡고 잤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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