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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Dec 23. 2022

크리스마스에는 뭐 하시나요?

Salvatore! per la mia vita.

  공학자의 견지에서 파악하자면,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할 변수를 찾아내기는 대체로 수월하다. 지간한 술수의 대처에 능하여 현상 파악이 입체적일 뿐만 아니라, 접수한 구를 확실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질문이 바르지 않으면 원하는 답을 얻기 힘들다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질문이 상하거나 야하다필시 유혹을 의심해야 한다. 우습게도 의심을 해소시켜 열처리를 가하면 강한 확신으로 변하듯, 유혹을 약한 불에 데쳐놓으면 매혹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유혹과 매혹은 같은 피를 지닌 매지간 일지도 모른다. (라면먹고 갈래요..? 자고 갈래요..?)


  하지만 라면을 끓일 때 만큼은 전혀 다르다. 이 대목에서는 식당 아줌마건, 학생이건, 선생이건, 과학자건, 공학자건, 거의 모두를 막론하고 유혹도 매혹도 소용이 없다. 말하자면 그 어떤 술수도 통하지 않는 확실한 조리 매뉴얼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만이 알고 있을 법한 방법과 근사한 노하우를 근거로 라면을 개성 있게 끓이는 사람은 미안하게도 철저하게 라면을 맛없고 재미없이 먹는 부류에 속한다.

  아니라고? 비록 편견 일망정 이건 철칙 이거니와, 밥 먹고 하는 일이 어떻게 하면 라면을 맛있게 조리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라면 제조회사 연구소 피나는(?) 연구 결과를 처참하게 짓밟는 행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논리가 의심스럽다면? 지금 메이저급 라면회사 연구원의 머릿수를 직접 헤아려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에헤... 연구원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뭔지 아는 만큼 행복하다는 항간의 얘기가 속임수는 아닐망정 착각 일 수도 있는데, 이건 아는 만큼 불행하다는 또 다른 뜻임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이다. 그대는 과연 특별한 라면 조리법을 아는 만큼 행복할까?


  엉뚱하게도, 거울에 투영된 제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부담스럽고, 사진을 찍는것이 별로 반갑지 아니할 즈음에는 그동안 존재의식으로 지녀왔던 가치관은 물론이고 품고있던 사상마저 뒤바뀌기 마련이다. 그래서 젊은 날의 느낌과는 사뭇 결이 다르게 세밑과 크리스마스가 오는지 가는지 시큰둥하고, 년말 시즌이 시끄럽게 닥친들 별로 즐겁지 않다. 나 역시 그렇거니와 크리스마스는 내 아내의 기념일 일뿐, 나의 명절은 아니기 때문이다.(참고로 내 아내는 지극히 평화주의자이고, 존경하는 기독교 환자이다.)

  본시 부부란 일심동체가 아니다. 닮은듯 하지만 전혀 다른 사상과 가치관은 물론 행동양식마저 같지 아니한 독립된 개체라서 이심이체가 분명 함에도 불구하고, 메스컴의 슬로건 탓에 '세밑은 가족과 함께' 어쩌고 라는 허전한 캠페인이 있다. 부부지간 아이들을 낳아 귀여운 꼬맹이 시기를 거쳐 지금은 성년으로 각각 제 앞가림 하는 처지가 되었기에, 이제는 양말 속에 선물을 챙겨야 할 이유가 없으니 슬로건의 오류에 관하여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생각해보면 우습게도 결혼이란 삶의 무결성을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강요된 혼인의 순결을 추구하는 도덕적 계략이자 문화적 음모 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나는 그 헤픈 계략과 별로 무가치한 음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께서 가라사데,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질문하고 싶은 건 다음과 같아요. 적어도 당신이라면 도대체 크리스마스에는 뭘 하시나요? 이유 없이 계명에 따라 서로 사랑하는 불행(?)을 맛보고 싶지 않다면, 나와 함께 소주 한 잔 하십시다! 그리하여 남이 알고 있는 그의 탄생일을 빙자하여, 당신만이 알고 당신이 이해하고 있는 당신의 인생에 관하여 거룩한 건배를 합시다. 시끄럽지 않은 우아한 와인바에서...


살바토레! 퍼 라미아 비타..!

Salvatore! per la mia v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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