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경 Jan 05. 2023

어디로 가야 하나?

길을 다시 찾으려면 악착같이 돈을 버세요

  없으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별 수 없이 서럽고 난감하며 또한 두려운 존재가 돈(money)이다. 이것의 유무는 가난과 연계되어 직접 비례하지만, 얼토당토 아니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는 은유처럼 아무리 먹어도 절대로 배부르지 아니한 마음의 양식과는 사뭇 별개의 것이다. 빈곤의 근본적 요인은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운영체제의 문제가 전부는 아니며, 이념을 벗어나 역사 이래 변함이 없었던 인류 최대의 고민과 최후의 난제였고 지금까지도 답이 없는 문제에 속한다.

  선사시대 원시 인류는 획득한 먹거리를 온전히 균등 분할하던 공동체였다는 학설이 지배적 이건만, 인류가 문자로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사정이 달라지게 되었다. 보유한 재화의 형태를 불문하고 통상 거래의 실질적 객체는 물이 얼음이나 수증기로 바뀌는 상전이 현상처럼 현물에서 화폐라는 변태를 거듭하여 진화하였을 뿐, 속성변함없이 그 모양새만 달리하고 있따름이다.


  알고 있다시피 돈이란 양날의 검과 같아 잘못 다루면 꼬라지 사나운 경우에 처할 수 있고, 통제불가의 욕심에서 오용하게 되명예로운(?) 치명상을 입어 나락의 단초가 되기에 딱히 좋을 것도 없지만, 더 큰 문제는 없어도 너무 없다면 추접해지, 구차하게 불편하며 초라함과 멸시를 감수해야 한다. 너무 가깝게 혹은 멀리해서도 곤란하며, 그 막강한 위력에 대책 없이 고상한 척 딴청을 부리면 처참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버는 목적으로 제아무리 몸뚱이를 혹사하거나 악착을 부린 들 함부로 벌리지도 않을뿐더러, 독한 마음을 품었다 해서 쉽사리 획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쓰는 목적으로 버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이지만, 소위 재력가나 재벌따위를 자처하며 버는 목적에서 미끼삼아 쓰는 부류의 사람도 있다. 소비의 목적이나 형태를 불문하고 보편타당하게 돈이란 정직한 수고와 흘린 땀방울에 비례하는 편이다.

  예외가 없지 않지만 기회의 균등에 따른 획득의 속성에 관해서도 함부로 정의할 수는 없다. 더러는 도박쟁이들의 변명인 운칠기삼(運七技三)을 말하고, 더러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임자는 따로 있다며 좌절하거나, 혹자는 옥황상제의 인사기록 카드를 들먹이며 운명 따위를 핑계대기도 하지만 죄다 허망한 주장들 뿐이다. 

  누구나 풍요로움을 갈망 커니와 풍요한 환경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우처럼 애시당초 척박하고 곤궁한 바탕에서 시작을 해야만 하는 태생적 불리함이나 지정학적 불확정성도 있기 마련이다.


  돈데 보이(Donde voy)는 에스파냐 언어로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뜻의 돈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서러운 사랑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하필 중의적 의미가 있기에 이를 오해하고 비틀어 '돈을 대 달라'는 얘기가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이 노래는 개략 30여 년 전쯤에 발표된 명곡으로 멕시코계 미국인 가수 티시 이노호사(Tish Hinojosa)가 20세기 후반에 발표한 발라드풍의 곡으로 가사의 전부가 에스파냐어이다.

  쪼잔하게 노래가사의 내용을 후벼 파서 살피자면, 돈 때문에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시도하여 팍팍하게 살고 있는 멕시코 여성(또는 남성이)이 사랑하는 연인을 고향에 남겨둔 채 떠나온 그리움을 읊조리는 기실 애달픈 노래이다. 불법이민자를 색출하는 연방의 이민국에 체포되어 어쩌면 졸지에 송환될 수도 있다는 공포와 제 사랑하는 연인을 향하는 그리움에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 불법이민 취업자의 팍팍한 감정이 오롯이 묻어있는 여하튼 서러운 발라드 풍의 명곡이다.

  특히 후렴구에서 목이 멘 듯 읊조리는 나 홀로 외로이 외로이(Solo estoy, solo estoy)라며 흐느끼는 듯한 율조는 누구라도 감정이 북 바쳐 온다. 물론, 이 노래의 주제는 사랑과 연민의 서글픈 서사 이건만 가사에 숨어 있는 이별의 원인을 더듬어 보자면, 이건 순전히 돈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의 전개이다.


  풍요롭지는 아니할 망정 사랑하던 연인과 생활이 가능할 정도였다면, 밥벌이를 목적으로 야밤에 국경을 넘어야 할 이유도 없고, 매사가 불안한 불법취업 이민자로 살아야 할 뾰족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씁쓸하게도 보다 풍요로운 미래를 담보하여 국경의 월담을 시도하였다면 구슬픈 노랫말이 성립할 이유도 없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 노래가 돈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오류의 증거는 가사에도 등장한다. 얼마가 되었건 다소의 돈을 벌 수 있을망정 당신이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절절하고 애달픈 하소연이 있기 때문이다. 처연하고 아름답게 구슬픈 단조의 사랑 노래인 Donde voy를 듣고 싶다면 당장에 컴으로 검색하여 감상해보면 먹먹한 애절함의 깊이와 조우할 수 있다. 어지간한 웹에 구름마냥 떠다니는 가사를 여기에 굳이 옮겨 적을 이유가 없지만, 기왕에 오늘의 에피소드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처량한 가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찾기가 귀찮으면  여기 이 링크를 클릭! 


Madrugada me ve corriendo

(새벽은 내가 달아나는 걸 찾아내고)

Bajo cielo que empieza color

(하늘 아래 색색이 물들이네요)

No me salgas sol a nombrar me

(태양이여 연방이민국의 추적에)

A la fuerza de "la migracion"

(쫓기는 나를 제발 비추지 마세요)

Un dolor que siento en el pecho

(내 가슴속에 느끼고 있는 고통은)

Es mi alma que llere de amor

(사랑에 다친 내 마음이지요)

Pienso en ti y tus brazos que esperan

(나는 생각해요 당신과 당신의 어깨)

Tus besos y tu passion

(당신의 키스와 열정이 날 기다린다고)

Donde voy, donde voy

(어디로 갈까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Esperanza es mi destinacion

(희망은 내 운명이지요)

Solo estoy, solo estoy

나 홀로 외로이 외로이

Por el monte profugo me voy

(사막을 지나 도망쳐 가지요)

Dias semanas y meces

(하루 한주 한 달이 가고)

Pasa muy lejos de ti

(당신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요)

Muy pronto te llega un dinero

(당신이 얼마간의 돈을 받고)

Yo te quiero tener junto a mi

(당신이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El trabajo me llena las horas

(노동은 내 시간을 채우고)

Tu risa no puedo olvidar

(당신의 웃음을 난 잊을 수 없어요)

Vivir sin tu amor no es vida

(당신의 사랑이 없는 삶은 살아있는 게 아니에요)

Vivir de profugo es igual

(도망치며 사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노랫말이 서럽거나 말거나, 칸초네가 취미인 나로서는 요즈음 이 노래를 수시로 입에 달고 산다.

돈데 보이~ 돈데 보오이...

소로 에스토이~ 소오로 에스토이...

(아이고..! 점점 서러워진다.)

작가의 이전글 크리스마스에는 뭐 하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