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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진리는 허수로 수렴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는가?

by 하이경

진리를 찾아 평생을 유랑하던 구루(승려)가 난제를 만났다. 그건 시작과 끝에 관한 명제였는데, 변증법을 대입한 해법으로도 어림없을 뿐만 아니라 실존주의자들이 울부짖는 부조리 이론으로도 풀리지 아니한 원초적 난제는 별것이 아니고 아래와 같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는가?

이 문제는 기독교적 이원론으로 정신과 육체를 별도로 구분하는 르네 데카르트의 철학적 사상에서 발원한 지상에서 천국까지 직진성을 고집해 온 구루의 사상을 대변해 왔다. 그러던 그가 암초를 만났는데 인도차이나 반도를 여행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이원론과 완전히 반대편에 서있던 힌두이즘의 생성, 유지, 소멸에 관한 회륜 사상을 접하고부터는 참을 수 없는 괴리감에 시달리게 된다. 정신을 인수분해하여 영과 혼으로 분리하여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혼...

당초, 그가 고뇌하던 그의 사고실험은 완벽하고, 무결하며, 무모순의 현상학적 추론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상황이었건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사상이 균열되어감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고백을거니와, 사고실험에 실패한 그의(구루) 사상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어디에서 왔건 그것은 필연이 아니며, 본시 나의 자유의지는 더욱 아니다. 어쩌다 눈을 떠보니 내가 있었다는 거고,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여태 살아왔다. 세상에 치이고 세월을 거듭하던 순간, 느닷없이 깨달은 사실은 내가 무엇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무엇으로 죽어 간다는 허망함이다. 살아있음이 죽어감과 동일한 직선상에 있으니, 종당에 하루씩 죽어가며 하루씩 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산 것이 죽는 거고 죽는 것이 산 것인가? 죽어야 살고, 살아야 죽는다? 이런 개 짖는 소리와 진배없는 형편없는 말놀이가 어디에 있나? 내가 찾아낸 유일한 자유의지! 자살이라는 정체는 결국 허망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인가?"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그의 사고실험으로 끄집어낸 명제는 자명커니와 그것을 확인하려는 순간, 마치 퀀텀(입자)의 궤적처럼 어디서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는가?라는 명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만 붕괴되고야 말았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향한다고 믿었던 그의 사상은 여지없이 으깨졌다. 시간과 공간은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물리학적 사실을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는 평생 강호를 유랑하며 만났던 모든 현자들의 사변(思辨)을 추슬러 정리하고 살펴보니,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현자들 중에는 모든 생물의 생애란 유전자정보의 시간적 전개과정에 불과하다며 모가지에 핏대를 세우던 이도 있었고, 자아? 아하~ 자살..! 그런 헛소리는 양재기로 강아지 패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며, 작두질 내공을 구사하던 현자도 있었다. 각설하고, 그가 수집한 사변의 기록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현자 1. 흙에서 와 다시 흙으로 간다.(기독교도로 판단하면 무리가 없다)

현자 2. 미토콘드리아에서 단백질로 살다 퀀텀으로 발산한다.(일반생물학 전공자가 확실하다)

현자 3. 무에서 와 유에 머물다 무로 되돌아간다.(노장사상을 숭상했거나 불가의 승려가 맞다)

현자 4. 오줌과 똥사이에서 와 화장터로 간다..(분자생물학자나 산부인과 의사가 맞다)

현자 5. 어둠에서 와 빛에 머물다 어둠으로 간다.(우주 비행사 거나 콩나물 공장의 공장장이다)

현자 6. 먼지로 와 덩어리로 있다 빛으로 흡수된다.(무기재료공학자 이거나 이론물리학자가 맞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구루가 진리를 찾으러 광야로 떠나기 전, 그가 소년시절에는 저 동방에 있는 한반도의 반토막 어디쯤에 동아 거시기라는 라디오 방송국이 있었다. 1964년에 개국을 하였으니 구루가 십 대의 소년시절이었음이 틀림없다. 당시 수도권에서 상당히 유명한 라디오 방송국이었지만, 1980년 당시 파렴치한 군인 전두환을 필두로 한 세력이 12.12 쿠데타로 나라를 장악하며, 소위 방송 통폐합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정책으로 느닷없이 사라진 비운의 라디오 방송국이었다.

당시 구루는 라디오 본체보다 더 웅장한 몸집의 건전지를 차고 있던 개인보물 1호를 사랑하여 노냥 이것을 지니고 다녔으며, 특히 자정 무렵에 시작하는 '0시의 다이얼'이라는 음악방송에 심취해 있었다.

진리를 찾지 못하고 아직도 방황하는 구루의 라디오

밑도 끝도 없이 무작정 진리를 찾겠다며 구루가 강호에 가출한 동기는 바로 이 프로그램의 전주곡인 '서기 2525(In The Year 2525)'이었는데, 이 노래는 충격적 이게도 앞으로 닥쳐올 황당한 미래를 예언한 서글픈 노래였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이전에 발표된 이 노래는 미국의 록커이자 듀오인 제이거와 에반스(Zager and Evans)가 불러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으나, 놀랍게도 이 노래가사 때문에 동방의 쪼끄만 동네에서 곱게 자라던 한 소년의 심장을 움켜쥐고 흔들었으니...

혹여, 구루가 동아방송 '0시의 다이얼' 전주곡이 그저 듣기에 좋았노라고 그것으로 만족하여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개 풀 뜯어먹는 허튼 진리를 찾아 광야로 향하는 미친 짓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본시, 진리란 멀금하게 날이 선 칼날처럼 위험할 뿐만 아니라, 결국에 허수로 수렴 된다는 사실을 그 때는 몰랐다고 증언 하였다.


* 구루의 심장을 움켜쥐고 흔들었던 전주곡(원곡은 아래에 있되, 이곡은 편곡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경음악 연주곡) --> 여기를 클릭하면 재생

* 가엾은 구루의 일생을 망친 바로 그 원수 같은 노래(In The Year 2525) --> 여기를 클릭하면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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