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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유감

모든 텍스트는 유효한 해석이 필요하다

by 하이경

남도 여행의 백미로 꼽히는 전라도 강진은 내 고향 나주에서 그리 멀지 않다. 영산강을 가로질러 영암에 닿으면, 얼마 가지 않아 곧 강진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해 내가 강진에서 고구마 한 자루를 구매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점심을 놓친 터라 간단히 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때울 요량으로 동네에 있는 작은 식당 안으로 들어갔더니만, 나는 그곳에서 치명적인(?) 얘기를 들었다.

"조용필은 말이여 차말로 숭악헌 놈이여...!"


강진 촌구석 동네식당에서 뭔 뜬금없는 조용필은 숭악헌 놈? 조용필은 가수일 뿐 선량하거나 숭악함과는 관계가 없다고? 세상은 공정하거나 더욱이 공평하지 아니하다고? 생존하는 자가 이긴 자이고, 비록 졌을망정 포기하지 않는 자가 그 가치를 아는 법이라고? 그럴듯한 이 모든 얘기들은 더러 옳거나 전부 틀릴 수 있다. 생존의 가치적 관점 역시 그러하다.

무릇 어떤 종류의 주장이라도 온전한 주장이란 없으니 반은 옳을 망정, 나머지 반은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모름지기 모든 인간들의 언어란 완전함이 아니라 보편타당함을 추구하거나 주장한다고 볼 수 있다.

가치상대의 진리는 절대적 기준이나 보편적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 모든 진리나 가치 판단은 개인의 경험, 문화, 도덕기준 등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진다는 사상, 말하자면 가치상대적 진리를 의미한다. 즉,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과 같은 견주어야만 해결되는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이나 맥락 안에서만 의미를 가지며, 그 기준이 달라지면 가치 판단 또한 달라진다는 관점이다. 나는 어떠한 사상이나 관점의 기준이 달라지게 되면, 특정한 가치의 판단도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그때의 동네식당 상황을 스케치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간이 오후 2시 반을 넘긴 시점이었으니, 밭에서 가을걷이를 하다 새참으로 막걸리 한 사발 쥐 알리러 식당을 찾은 동네의 원주민 양반들 같았다. 등을 보이고 앉아있던 늙은 사내는 흰머리가 듬성듬성하고, 더 늙어 보이는 상대편 사내는 검붉은 안색에 벌써 취기가 일 그러 한 듯싶었다. 이미 막걸리를 몇 사발 주고받았는지 모를 일이나 빈병들이 안주로 먹던 풋고추 옆에 네댓 병이 쓰러져 있었다. 식당 주인으로 짐작되는 아줌씨는 파마머리에 50대 중후반쯤으로 보였는데, 파리채를 날렵하게 휘두르며 날것들을 사냥 중이었다. (알고 있다시피, 시골에는 깔따구나 날파리는 물론이고 날아다니는 잡것들이 부지기수다.)


"아까는 김추자가 나쁜 년 이라드니 인자는 또 조용필이여?"

"아 글씨, 그놈의 노래가사가 영판 야하다 이 말이요."

"뭣이 그라고 야한디..?"

"일편단심 민들레야 가사를 한번 뜯어봅시다."

"그 좋은 노래 가사를 왜 물어뜯어? 뜯기를..."

"들어 보랑께, 님이 주신 밤에 씨를 뿌려 부렀다고 안 허요? 그것도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워부렀다 이 말이요!"

"근디 뭣이 어쨌다고...?"

"아니, 씨를 뿌릴라믄 해가 뜬 낮에 뿌려야지, 뭔 지랄 났다고 한밤중에 씨를 뿌린다요? 요새는 도독 놈도 밤중에 뭔 씨를 뿌린답디여? 그랑께 그것이 깊은 뜻이 있어 불제.....?"

"긍께 이녁 야그는 노래가사에 담긴 의도가 솔차니 숭악허고 야브로시 불량하다 이 말 이로구만..."

"암은... 그 여름 어인 광풍(미친바람)..? 낙엽 지듯이 어쩌고 어째? 행복했던 장미 인생이 비바람에 한번 꺾여 부러 갔고, 기왕에 민들레가 돼야 부렀다고? 이런 니기미..."

".......?"

"여브쇼 아짐! 기여 안기여(그래요 안 그래요)...?"

흰머리 사내가 막걸리 사발을 들이켜다 말고 주인 아줌씨 쪽으로 고개를 돌려 은근히 동의를 구하니, 이 아주머니 답변이 또 가관이다.

"아따, 차말로 엔간히 갖다가 붙이쇼! 엔간히! 차라리 실앙골 양반이 그 민들레 가사로 삼류 소설을 쓰지 그러요. 아이고! 차말로 쩝..."

"그건 새발의 피여! 고추잠자리는 어떻고? 일편단심 민들레야 보다 더 야하당께! 긍께 내용이 말이 시 고추가 잠이 드는 자리라 이 말이제...!'


이때 출입문이 다급하게 열리더니, 또 다른 아줌씨가 식당 안으로 들어서며 다급하게 쇳소리를 질렀다.

"오매, 해 다 넘어 가는디. 일은 안 하고 꼬랑지가 길기도 하고만? 아짐! 새참 술값은 달아놓고, 그라고 저 화상이 또 머랍디여? 오가리로 개 패는 소리를 합디여? 송편으로 모가지 쑤시는 얘기를 합디여? 오메! 싸게 인나지 않고 뭣하고 있당가!!"

두 사람 중 누군지의 아내로 짐작되는 아줌씨의 일갈에 사내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고, 밀짚모자를 챙겨 쓰고 구시렁거리며 몇 마디를 덧붙였다.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러 갔다가 걱서 뭔 일이 있었는지 이녁은 알랑가 몰라?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 하이고 차말로..."


나는 그날 오후 강진읍내 촌로의 유행가 해석에 소스라친 감동이 밀려와, 국수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경이로울 뿐만 아니라, 창의적이고 전혀 새로운 해석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시미(?) 눈으로 보자면 무엇이 되었건 삐딱하게 보일 따름이다. 그래서 모든 텍스트란 유효한 해석이 필요한 법이다. 나 역시 내 시선이 혹여 삐딱할 수도 있다는 점을 내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또 배웠다. 견주어 계량이 가능한 어떠한 가치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항시 상대적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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