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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May 01. 2022

술과 장미의 나날

Days of wine and roses

  헐리웃 필름 중에 'Days Of Wine And Roses'는 멀쩡한 부부가 알코올 중독으로 점차 파멸해가는 스토리다. 스크린에서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오래된 흑백영화라서 이 영화의 배경과 플롯만 기억날 뿐 세세한 줄거리는 지금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극중 여주인공이 읊조리던 '술과 장미의 나날은, 오래가지 않는다' 어쩌고 하는 시와 애잔하게 흐르던 주제곡의 리듬은 아직도 기억에 있다.

  마리오 푸조 원작으로 불후의 명화인 '대부'의 주제가에도 와인빛 나날들이(Wine-colored days warmed by the sun) 등장하는데, 어쩌다 우연챦게 이 영화의 OST가 귓전에 들려오면 기관총에 난사당한 사람의 와인빛 선혈이 낭자한 아스팔트 위에 쏟아지던 선명한 햇살이 종종 기억되곤 한다. 핏빛과 와인빛은 본래 가사의 내용과 무관하지만, 이 OST의 선율은 기억의 잔상을 교란시키는 혼돈의 매개물 임은 분명하다.


  에탄올은 화학식으로 CH3CH2OH 표기되는데, 술은 이 에탄올을 음료화 시킨 물건이다. 아울러, 술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마약성 물질로 규정되어 있고 중독성이 있지만, 이슬람 문화권을 제외한 어느 나라에서도 성인일 경우라면 누구에게나 개방된 허가된 마약이다.

  WHO에서 제시한 알코올 적정 섭취 권장량은 1일 기준 남자 40g(소주로 5잔), 여자 20g(소주로 2.5잔)이지만, 이런 권장량을 지키는 바보(?)는 어디에도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아예 술을 입에 안대는 사람들도 수두룩한 판국이니 WHO의 권장량은 그냥 허튼수작일 뿐 전혀 의미가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


  슬리퍼를 끄집고 밖으로 나가면, 집 근처 마트흔히 구할 수 있는 희석식 소주는 순도 99.7% 이상의 주정으로 제조한다. 술 먹고 부리는 행패도 같은 발음의 주정인데 이것과 혼동하면 큰일이다. 이 주정에 물에 섞고, 달착지근한 카린 나트륨이나 향료 따위를 첨가 교반하면 우리가 흔히 즐겨마시는 희석식 소주가 된다. 이것이 도무지 천사의 선물인지 악마의 유혹인지를 구분하는 차이점은 퍼마신 음주량에 직접 비례한다. 어느 정도로 얼만큼 퍼마셨느냐를 측정하는 국제단위의 기준은 혈중알코올농도로 결정된다. 이것을 측정하는 위드마크 공식은 아래의 식에 근거한다.


  C = (A÷10PR) %

  여기에서,

  C = 혈중알코올농도(%)

  A = 음주량(ml)x(도수%÷100)x비중(0.7894)

  P = 음주자 체중(kg)

  R = 음주자 성별 계수 (남자=0.86, 여자=0.64)

  β = 시간당 농도 감소량 (평균 0.015 %/h)

  t = 음주 이후의 경과시간 (단위: h)

  이렇게 위드마크 공식으로 계산한 혈중알코올농도는 사람의 체질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임상시험 결과치로 알려진 평균 신체 반응의 정도는 대체로 아래와 같다.

 0.1% 균형감각의 상실

 0.3% 몸을 가누는 정도

 0.4% 인사불성, 혼수상태

 0.5% 사망


  정도 이상으로 술에 취하면 개가 된다고 해서 생겨난 시중의 우스개 소리가 많다. 에틸알코올의 분자 모델이 마치 강아지처럼 보여 그렇다는 얘기가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CH3CH2OH를 분해하면 다음과 같다.

이게 정말 강아지로 보인다면 당신은 이미 취해 있다.

  내가 아내와 가끔 토닥이는 이유는, 주량을 망각하고 인사불성이 되도록 모질게 퍼마신 결과가 대부분이다. 이럴 경우라면 며칠 동안 코가 빠진 채 벅벅 기어 다녀야만 한다. 아이고 빌어먹을... 치사하고 짠한 노릇이다. 수십 년을 알코올로 몸을 혹사시켜 왔으니, 이제 그만 술을 끊어야 하나...? 소주병만 보면 미치고 환장하는 의지박약 문제는 그렇다 치지만, 낯익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서러울 따름이다. 아이고...! 

  술과 장미의 나날은 그 내용이 제목처럼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이 영화에 삽입된 주제곡을 듣다 보면 공연스레 가슴이 저려온다. (링크 참조 -->) 헨리 맨시니: 술과 장미의 나날


  페스트 이후 찾아온 지상 최대의 전염병 창궐을 핑계로, 분위기 탁한 음식점도 껄끄러운 판국이니 허구한 날 슈퍼마켓에 쌓여있는 소주병의 모가지를 따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술과 장미의 나날이 아니라, 장미는 행방이 묘연하고 술과 담배와 커피의 나날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크억! 오늘도 취해서 인사불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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