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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Apr 24. 2022

지앙크(Zinc) 테이블

암묵적 소통과 소주 값의 비밀에 대하여

  아연은 우리 몸이 건강을 유지하는필수 영양소이며, 단백질과 세포 유전물질인 DNA의 생성에 관여하고 바이러스에 대항하여 면역체계를 관장하지만, 지나치게 많이 섭취할 경우 구토와 구취, 식욕저하 등이 생기고 복부 경련이나 설사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물론, 이온화된 아연을 섭취할 경우라면 즉사할 가능성은 99.9% 이다. 문제는 아연이라는 물질 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생명의 원천인 물에도 치사량이 있듯, 현존하는 모든 물질에는 반드시 반수치사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론상 물의 반수치사량은 몸무게 75kg 성인 남성 기준으로 6.75리터 정도인데, 단번에 많은 양의 수분이 체내로 흡수되면 인체공학상 배설기관이 작동하므로 즉사할 이유는 없다.

  지금도 지구촌 어느 구석에서는 상품을 내걸고 벌어지는 엉터리 게임이 있다. 예를들어, 1분 안에 생맥주 많이 마시기 대회나, 입을 때지않고 단번에 물 많이 마시기 대회 등이다. 웃자고 벌어진 게임에서 불행하게도 반수치사량에 발목이 잡혀 귀중한 목숨을 잃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물이건 술이건 졸지에 다량을 섭취할 경우, 체내 염분농도 불균형으로 전해질 쇼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 분야 전문가의 견해가 있다.  


  파르스름한 산란광을 지닌 백색 금속 아연은 고대부터 알려진 금속원소이다. 지금은 흔해빠진 스레인리스 강으로 하여금 용도가 애매한 아연도 강판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유럽에 산재한 유서깊은 식당의 테이블은 아직도 싸구려 이미지의 아연도 강판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왜 그럴까?

  재미있게도, 아연도강판으로 마감된 싸구려 지앙크(이건 영어인 징크의 불어식 발음이다) 테이블이 지닌 의미는 심대하다. 여기에 자리한 고객들에게는 모종의 특권이 부여되는데, 소개를 받지 않거나 소개를 하지 않은 상대방에게는 함부로 말을 건네지 않는 풍습을 지닌 그들에게 지앙크 테이블은 치외 법권 지역으로 통한다. 이 테이블에 착석을 하게 되면, 통성명을 하거나 옆사람 또는 같은 테이블의 누구에게라도 자유롭게 얘기를 건넬 수 있는 묵시적 특권을 지니다. 이는 암묵적인 방어 해제를 의미하기에 이 테이블에 착석을 하게 되면 누구라도 본인에게 함부로 말을 걸어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을지로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선술집에서나 볼만한 아연도강판의 원형탁자가 있는 연탄구이집과 유사한 샘이지만, 왁지껄한 분위기가 서로 다르며 같은 재질의 지앙크 테이블일 망정 두 식당의 서비스 가격에 다소 차이가 있다. 아래에 지앙크 테이블로 유명한 파리의 식당을 소개한다. (이 식당에서 소주값은 비싸지만, 의외로 음식 가격이 그리 비싼 편은 아니고 거의 일률적이다.)

BÔ-ZINC Café 는 파리 모차르트 애비뉴 59번가에 있다.

- 쇠고기 타르타르, 수제 감자튀김 / 11€

- 연어 타르타르, 그린 샐러드 / 11€

- 오리 콩피, 살라다이즈 감자, 그린 샐러드 / 11€

- 로스트 치킨 수제 버터 매쉬 / 11€


  수년 전의 식당 메뉴판 일부이지만, 여기에 소주값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이 식당의 영업비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날마다 혹은 달마다 고무줄처럼 가격이 다르고, 소주가 있을 때보다는 매진으로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적어도 하우스 와인 가격 2배 이상으로 순 바가지요금 수준이다. 유럽에서 소주를 술로 취급하지 않았던 과거 한 때에 비하면 놀라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싸구려 탁자인 지앙크 테이블은 잔술 위주라 아무래도 술값이 헐하다. 바텐더의 행동반경 영역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리가 영 불편하여 죽치고 앉아있을 수 없기 때문일 수 있다. 친구사이라면 굳이 이 자리를 찾거나 비어 있어도 착석할 이유는 없다. 혹여, 혼자라면 여기에 착석하여 모르는 누구와 잡담으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나 홀로 목을 축일 참이면 지앙크 테이블은 추천할만하다. (그러나 분위기를 조심하자! 센 강 주변을 비롯하여 파리시내 알만한 식당들은 인종차별을 밥 먹듯 한다.)


  지앙크 테이블 우측에 착석한 여인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그 테이블 맞은편에 착석한 사람은 더욱더 궁금할 수 있다. 스냅사진의 묘미는 그런 것이다. 인간을 구도의 중심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기 때문이다. 라틴어 만세! 셀라비!(Cel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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